[모란봉] 지금이 겨울인가 가을인가

박신호 방송작가 | 기사입력 2022/11/21 [20:31]

[모란봉] 지금이 겨울인가 가을인가

박신호 방송작가 | 입력 : 2022/11/21 [20:31]

<박신호 방송작가>

알 듯 모를 듯한 질문으로 부하 직원을 골탕 먹이는 상사가 있다. 때 없이 불러 놓고는 엉뚱한 질문으로 골탕을 먹이니 직원들은 늘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은 좀 어수룩한 강군이 호출을 받았다. 동료들은 걱정했다. 얼마나 혼이 날까 해서다. 그러지 않아도 늘 뭐엔가 트라우마에 걸려 힘들어하는데 심술궂은 상사의 호출을 받았으니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근래 회사 형편이 좋지 않아 언젠가 감원을 할지 모른다는 소문도 돌고 있는 터였다. 불려간 강군은 집안 형편도 나빴다. 나쁘다기보다 어렵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던 동생까지 얼마 전 직장을 관뒀다는 소리도 들었기 때문이다.

상사 사무실에 불려간 강군이 좀처럼 나오지를 않았다. 동료들은 더 궁금해져 염탐꾼을 상사 비서실에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염탐꾼(?)마저 오지 않자 틀림없이 일이 터진 게 분명하다고 나름대로 짐작하며 일손들을 놓고 있기도 하고 근심 걱정에 앉아 있지 못하고 서성대는 동료들도 있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보냈던 염탐꾼 동료가 돌아왔다. 일제히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입을 바라봤다.

“사무실에 없어”

“사무실에 없다니?”

“미스 김이 그러는데 전무님이 데리고 나가셨데”

“어디로?”

“그건 모른데”

“혹시 사장실에 간 거 아니야?”

“사장실?”

“사표 받으려고”

“직원 사표야 전무님 손에서 끝나지 사장님까지 가니?”

“면직은 최고 결정권자인 사장님까지 올라가야지”

사무실 분위기는 더 무거워졌다. 걱정은 한 동료의 걱정에서 전 사원에게 돌아갔다. 소나기가 아니라 태풍이 불기 전이 됐다.

어수룩한 강군이 불려간 지 족히 한 시간이 넘어서야 돌아왔다. 일제히 그에게 시선이 꽂혔다. 그러나 강군은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아 흰 종이를 꺼내 뭔가 쓰고 있었다. 아~ 드디어 사표를 쓰는구나. 다들 가슴이 철렁했다. 허리가 빠진 동료도 있었다. 모르면 몰라도 다들 눈앞에 가족의 얼굴이 아롱거렸을 것이다. 참다못한 한 친구가 벌떡 일어나 강군 곁으로 갔다.

“어떻게 된 거야? 말을 해 줘야지!”

볼멘소리로 묻자 그는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며,

“무슨 말을?”

“전무님 만나고 왔잖아!”

“근데?”

“무슨 일 없었어?”

“있었지”

“무슨 일이었어?”

“개인적인 일이야”

“뭐?”

“왜?”

“무슨 개인적인 일?”

“개인적인 일이라니까. 그거까지 말해야 하냐?”

“다른 사람은... 아무 일 없는 거야?”

“다른 사람에게...? 없었어”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사무실이 이 한마디에 금방 밝아졌다. 화기가 돌았다. 누군가 소리 지르다시피 말했다.

“이런 날 한 잔 해야지. 오늘 저녁 회식하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 사원들이 환호하듯 호응했다.

이날 회식은 밤늦도록 끝나지 않았다. 2차까지 화기애애했다. 다만 나중에 참석하겠다던 강군이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그게 영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여니 때도 회식 자리에 잘 참석하지 않은 터여서 그냥 넘어갔다.

다음 날 아침. 출근 시간이 훨씬 넘도록 어수룩한 동료 강군은 출근하지 않았다. 그래도 누구 하나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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