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달빛 속에 촉혼은 운다

두견새울음 구슬픈데 산에 달은 나직이 걸렸더라 (273)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18/05/30 [16:48]

[황진이] 달빛 속에 촉혼은 운다

두견새울음 구슬픈데 산에 달은 나직이 걸렸더라 (273)

통일신문 | 입력 : 2018/05/30 [16:48]

아씨께서 주신 권고와 당부의 가불가는 둘째로 치고 저를 한순간에 기쁨과 환희의 절정에 올려 세운 것은 저에게서 꼭 다짐을 받으시려는 아씨의 진실한 눈빛이였고 간절한 기망의 눈길이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동정이나 관심의 빛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의 운명이자 곧 자신의 운명으로 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감히 보일 수 없는 당당한 주장이였고 떳떳한 요구였습니다. 아, 아씨! 과연 이것이 정신을 차리고 나면 곧 산산히 흩어지고 말 허황한 환각은 아닐가요?

사랑에 빠져 정신이 나간 사내가 스스로 머리속에 꾸며낸 허황한 환상은 아닐가요? 사람은 자기가 바라는 것을 굳이 믿고저 한다고요.

모든 것을 단념한 극도의 절망 속에서 받아 안은 행복이야말로 지상의 참된 행복이라고요…그래서 저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로 되었습니다.

아씨, 아씨께서는 제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나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것이 다름 아닌 바로 그 지상의 행복이라고 하면 그 우스운 역설을 그대로 믿으시겠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바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씨께서도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주제넘은 확신과 같지 않은 희열 속에서 정신을 차린 것은 ‘아씨께서 상두도가를 떠나신 직후였습니다. 아씨께서도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 그러니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당황했습니다. 사랑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랑에는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아씨께서 저를 사랑하시는 경우에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결과가 저를 당황하게 만든 것이였습니다.

아씨께서는 저에게 자수와 귀순을 권고하셨습니다. 그것은 아씨쪽에서 놓고 볼 때 응당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될 사랑의 결과입니다. 나라에서 귀순을 받아주면 저는 어질고 착한 량민이 될 것입니다.

아씨께서 임의로 기적을 없애지 못하는 한 저는 또다시 아씨의 선량한 기둥서방 노릇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5년 전에는 소박 받는 기둥 서방이였다면 5년 후인 지금은 사랑을 받고 귀염을 받는 기둥서방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아씨 앞에서도 솔직하게 말씀드렸지만 저는 량반님들의 관대성을 그닥 믿지 않습니다. 또 가령 랑반님들이 관대한 저의 귀순을 받아준다고 해도 저는 다른 사내의 품에 안긴 사랑하는 녀인의 침방을 지키는 선량한 기둥서방 노릇을 두 번 다시 할 만한 아량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니 유일하게 선택 할 수 있는 남은 결과 는 오직 하나, 제가 아씨를 산으로 모셔가는 것인데 아씨처럼 자색이 탁월하신 분이, 아씨처럼 지성과 기예가 남달리 뛰여 난분이, 아씨같이 총명준일한 녀중호걸이 사람들 속을 떠나 십중팔구는 새남터의 치욕이요 잘해야 산속의 고달픈 은둔 생활로 끝나버릴 화적 괴수의 적막한 안방을 즐겨 지켜주실 수 있겠습니까?

진실과 사실은 소태처럼 쓰거운 것이라도 삼켜야 합니다. 저는 아씨와 한 바리에 살릴 수 없는 짝입니다.

모든 것에는 제자리가 있으니 솥은 부엌에 두고 절구는 헛간에 두어야 합니다. 승냥이가 아무리 개와 비슷하게 생겼어도 개는 집에서 살고 승냥이는 산에서 살게 마련입니다. 터밭 벌레는 터밭에서 죽는 것이 운명입니다. 그리고...일단 진실을 깨달았으면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할지라도 주저말고 진실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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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호수 연풍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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