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탈북자 문제 국제적 인권 차원에서 대처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02/06/07 [16:52]

[시론]탈북자 문제 국제적 인권 차원에서 대처

통일신문 | 입력 : 2002/06/07 [16:52]
이서행(한국정신문화연구원교수)

중국의 탈북자 감시망이 부쩍 강화된 가운데 11일 탈북자 두명이 베이징주재 캐나다 대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요청함으로써 재중 해외공관이 새 망명루트로 자리잡은 분위기다. 지난 3월 탈북자 25명이 스페인 대사관에 들어갔다 한국행에 성공한 것을 비롯해 올 들어 일곱건의 공관 진입 시도가 이뤄졌고, 이중 한건만 실패했다. 지난 8일 중국 선양 일본 총영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이 중국 공안에 강제 연행된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줬다. 이번 사건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신들의 정당성만 강조하는 중국의 강변이다. 선양 사건에 대해 중국측은 총영사관과 직원의 안전을 지키려는 순수한 책임감에서 조치를 취했고 이는 영사관의 안전보장 의무를 명시한 빈협약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린아이를 업은 여성을 포함한 망명 희망자들이 영사관에 위험을 주려고 했다는 주장은 강변에 불과하다.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영사관측의 요청이 필요한 일이 아닌가. 중국측은 또 무장경찰관이 총영사관측의 동의를 얻었다고 발표했으나 일본측은 현지조사 결과 동의를 해준 사실이 없고 남녀 5명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도록 요청했으나 무시당했다고 발표했다. 사실관계에 대한 중-일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으나 여기서 인식해야 할 것은 중국측의 태도다. 공산주의 독재국가인 중국에서는 정권이 잘못을 저지르는 일은 없으며 자신들의 주장을 후퇴시키지 않는다. 한편 일본의 대중 외교는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 등을 계기로 '사죄외교'가 주류였다. 이번에는 일 외무성이 의연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일본 국민의 감정도 진정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일 외무성 관리의 인권의식이 희박하다는 사실이 전세계에 알려졌다. 땅바닥에 쓰러진 여성이 끌려 나가지 않기 위해 중국공안에게 저항하고 있고 어린 소녀가 어리둥절하게 서있는 모습이 TV를 통해 전세계에 방송됐다. 그러나 영사관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은 방관만하고 있었다. 경찰관의 모자를 주워들고 여성을 구조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인권이나 난민문제에 대한 일본 외무관리들의 인식은 미국이나 유럽 각국의 그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노출시켰다. 일본이 이런 태도로 접근한다면 미국을 위시한 우방국의 신뢰를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중·일 두 국가간 주권침해와 자존심의 대결이 팽팽하게 펼쳐지고 있으나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양국의 주장 중 어느 쪽이 사실인가의 문제에 앞서 현재 가장 심각하게 고려해야할 것은 생사를 걸고 탈출을 시도했던 사람들을 포함, 수많은 탈북잘들의 근원적이고 인도적인 문제 해결이다.
아나미 고로시게 주중 일본대사가 장길수군 친척 5명의 선양 총영사관 망명좌절 사건이 일어난 8일 오전 대사관 직원들에게 탈북자들이 대사관에 들어오면 수상한 사람으로 간주해 쫓아내라고 지시했다고 교도 통신이 14일 보도했다. 또한 아나미 대사는 8일 오전10시 정례 전체회의에서 "인도적인 면에서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을 진다. 탈북자들이 들어와서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보다는 쫓아 내는게 낫다"며 이같이 지시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그는 같은 취지의 발언을 간부회의에서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인권문제가 야기되자 그 책임을 중국측에게 떠넘기고자 한 일본의 외교적처사가 이해하기 어렵다. 탈북자의 망명사건은 더 이상 중국과 외교당사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탈북자의 동시다발적 공관 진입 시도는 국내외 비정부기구(NG)의 인권활동을 빼놓고 얘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NG의 국제연대는 눈에 띄게 강화되어 스페인 대사관 진입 사건에 관여한 국제적인 인권단체 관계자는 10여개국 3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일 장길수군 친척 다섯명의 일본총영사관 진입 때도 한·일 양국의 NG가 발을 깊숙이 들여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 다섯명의 진입 문제는 일본 쪽에 상당한 정보가 흘러들어 갔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므로 발뺌이나 책임전가를 해서는 안된다. 국제월드컵대회 기간에 대대적인 탈북자들의 망명기도가 있을 것이라는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어 세계뉴스의 초점이 될 수도 있으므로 그때 당황하지 말고 사전에 국제인권차원에서 북한인권상황개선과 지원의 방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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