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세월 19/ 고향사랑의 불빛

장운영 | 기사입력 2004/05/08 [19:17]

은빛세월 19/ 고향사랑의 불빛

장운영 | 입력 : 2004/05/08 [19:17]
룡천의 참사가 가슴에 먹물로 차오르지만 이제 따듯한 손길 내밀어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옳은 일을 할것이다.
룡천의 일이 아니면 요즘 은빛세월은 바쁘고 즐거움이 넘치는 시간들이다.
도민대회를 비롯하여 군,민대회 행사가 계속 이어져 고향친구들과 동향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도 서로 없었고, 이름도 모르지만 모두가 닮은 고향 사람들. 외모도 비슷한 것 같고, 말소리도 귀에 익어 나 자신을 보듯 모두 하나가 된다.
어린시절 아래 윗집에 살았던 아직 건강한 친구를 만나면 그 반가움과 기쁨은 배가되고 옛날 고향 얘기로 하루 해가 짧기만 하다.
이제는 은빛세월도 2차 3차가 낯설지 않다. 시끌벅적하던 행사가 끝나면 몇몇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2차를 향한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억세고 투박한 손을 맞잡고 놓을 줄 모른다.
생전에 고향 선산에 가서 조상님들에게 술한잔 올리고, 이제는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를 고향집 찾아가서 흙냄세라도 맡아 보고, 가뭄도 안타고 윤기있게 잘 자라던 논배미를 밟아 볼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흘렸던 눈물, 외로움, 고통 모두 보상 발을 수 있을 것 같다.
고향마을의 풍경이 50년전 그대로 각인되 있어 어린시절로 여행을 떠난다.무성한 나무와 쏟아지는 햇살, 바람소리,어둠속을 금빛 보석으로 찬란하게 수놓던 별빛무리... 어느 한가지도 남김없이 추억속에 간직하고 있는 고향의 정답고 아름다운 그림은 옛친구를 만나면 살아서 움직인다.
여름날 미역감던 벌거숭이들의 웃음소리, 10리 학교 길에서 바람을 안고, 등지고 달리던 발바닥의 감촉, 풀잎향기, 자지러지던 매미소리, 듣기좋던 새소리, 이따금 들리던 기차의 기적소리는 왠지 모를 흥분을 안겨주었다.
깜부기로 이빨까지 까맣게 물들이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눈물이 나도록 웃던 월남하지 않은 그 친구는 고향을 지금끼지 지키며 건강하게 살아 있을까.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는다. 인간이 희망을 잃으면 그 자리엔 무슨 씨를 뿌려도 싹이 트지 않는다고 했다. 54년전 부모를 잃고 홀몸으로 숱한 고생을 이겨내고 오늘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던가. 반세기 동안 꾸준히 참고 견디어 이젠 어떤 슬품이나 억울함에도 익숙해져 있다.
마음속 깊이 고향을 사랑하고, 친구를 생각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밝은 불빛으로 우리의 소망이 밝혀지지 않겠는가.
은빛세월은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고향사랑하는 불빛이 이렇게 타오르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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