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승리는 사람 사는 얘기다

박신호 방송작가 | 기사입력 2023/10/16 [14:30]

최후의 승리는 사람 사는 얘기다

박신호 방송작가 | 입력 : 2023/10/16 [14:30]

사람 사는 얘기로 시작해서 사람 사는 얘기로 끝나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일 것이다. 따듯한 사람, 푸근한 사람, 정겨운 사람이란 말을 듣는 사람을 보면 결코 모진 말을 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의 말을 차분히 다 듣고 나서야 자신의 의견을 담담하게 말하는 걸 본다.

 

▲ 박신호 방송작가     ©통일신문

열차를 타면 생전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게 된다. 어색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있었던 얘기다. 노신사와 여인이 마주 앉아 가게 됐다. 기차는 오랜 시간을 간다. 긴 시간을 창밖 풍경만 볼 수 없고 눈을 감고만 있을 수도 없다. 자연히 맞은편에 앉은 낯선 사람과 말을 나누게 된다. 노신사가 먼저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 여인은 시종 응답 정도의 말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노신사는 쉼 없이 얘기를 이어갔다. 처녀는 엷은 미소를 보일 듯 말 듯 보이며 계속 듣기만 했다.

 

 

이윽고 내려야 할 역이 다가오자 노신사가 작별의 손을 내밀며 말했다. “오늘 대화 참 즐거웠어요. 덕분에 즐거운 여행이 됐어요여인은 갸우뚱했다. 별로 말하지 않았는데 대화가 즐거웠다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손을 잡았다. 노신사가 생각난 듯 물었다.

 

 

어딜 갔다 오는 길이시오?” “출판사에요” “출판사엔 왜요?” “...소설을 썼는데 출판할 수 있을까 해서요” “소설을요? 성사됐나요?”

여인은 의자 밑에 있는 두툼한 보따리를 가리키며 머리를 저었다. 노신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명함을 건넸다. “시간 있으면 찾아오세요

그 여인의 이름은 마가렛 미첼이었고 보따리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소설 원고였다.

 

말은 의사 표시를 하기 위해 하기도 하지만 듣고 싶을 때도 한다. 글도 마찬가질 것이다. 글에 넌더리를 치는 사람이라도 글의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특히 허구한 날 보고 듣는 똑같은 선전 선동에 넌더리를 치는 사람들이 많다. 북한 동포들이 그렇다. 그들이 듣고 싶고, 보고 싶은 말과 글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갈증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몇 년을 그 말과 그 글을 소통하지 못하게 한 정권이 법으로 막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이다. 늘 보는 가족 얼굴도 한시 빨리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음성이라도 듣고 싶을 때도 있다. 하물며 자기 얼굴도 보고 싶을 때가 있어 거울을 본다. 이리저리 보고 또 본다. 보고 싶어서만 보는 게 아니다. 자기 확인일 것이다.

 

 

전쟁의 무서움을 모르는 사람 없다. 전면전이고 국지전이고 살생이 뒤따르는 짓을 하는 게 전쟁이다. 어떤 포악한 동물도 인간만큼 살생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인간들은 걸핏하면 평화를 외친다. 곪음은 살이 안 된다. 도려낼 건 도려내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가 바로 이해와 설득이다.

 

엊그제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전단을 살포해 북한이 도발하면 장관이 책임질 것인가라고 통일부 장관을 몰아세웠다. 야당이, 민주당이 대북 전단 금지법을 만들 때부터 줄곧 내세운 논리가 북한의 도발을 부추겨 접경지 주민의 안전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전단 살포는 우리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북한에 전단을 뿌려도 된다는 것이다. 헌재는 접경지 주민 안전에 대해 전단 살포를 일률적으로 금지하지 않더라도 경찰의 사전 신고 및 금지 통고 제도 등을 통해 보완하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아직도 멍청한 소리를 하고 있다.

 

 

1945815일 해방의 날 감격을 잊지 못한다. 더불어 미국의 소리방송을 잊지 못한다. 일제의 그 엄혹한 길고 긴 시기를 극복하며 살아가게 한 힘이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6, 25 전쟁 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괴로운 피난살이를 견디게 한 힘은 방송의 역할이 크고 컸다.

 

 

외부 세계와 차단된 세상에서 사는 북녘 동포들에게 희망을 안겨 줄 수 있는 건 미래의 청사진을 보고 듣게 하는 전단과 방송이 절대적이다. 그들에게 고난을 이겨내고 희망을 안겨 줄 수 있는 건 오로지 전단과 방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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