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에 기반 한 인력동원...공사 단기간 끝낼 요인 중 하나

[기획] 북한 초고속 공사의 비밀
이옥정 건축사, 마로안건축사사무소 대표
서울시건축사회 북한개발연구위원회 연구위원

이옥정 건축사 | 기사입력 2023/08/14 [13:50]

속도전에 기반 한 인력동원...공사 단기간 끝낼 요인 중 하나

[기획] 북한 초고속 공사의 비밀
이옥정 건축사, 마로안건축사사무소 대표
서울시건축사회 북한개발연구위원회 연구위원

이옥정 건축사 | 입력 : 2023/08/14 [13:50]

최근 우리나라는 신축아파트에 철근을 누락시킨 일명 순살아파트사태로 연일 메스컴이 뜨겁다. 국내 건설산업은 전후 70여 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그 이면에는 아직도 각종비리와 관행들이 잔존하고 있고, 하나씩 곪아터지고 있다. 그때마다 우리의 법제도는 개선되고, 처벌은 강화되고, 각종 규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새로 생겨나고 있다. 더 나은 건축을 위해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1만 세대 살림집 12개월 만에 완공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되기 까지는 기본적으로 도시계획법, 건축법 이외에도 소방법, 주차장법,장애인관련법, 건축물의 피난, 방화에 관한 규칙, 내진설계 등 수없이 많은 법규를 검토하고 피드백 하는 과정이 있다. 특히 요즘은 본 공사의 안전한 수행을 위한 가시설 안전성검토 및 시공과정 전반에 걸친 관리감독도 강화되고 있다.

 이옥정 건축사



이런 수많은 절차의 이행은 결국 비용과 공기의 증가로 직결된다. 요즘 흔히 말하는 꼬마빌딩을 짓는데도 최소 7,8개월에서 1, 몇 천세대의 아파트는 완공까지 2,3년은 족히 걸린다고 봐야한다. 건축기술은 점차 선진화 되고 건축산업은 체계적으로 매뉴얼 화 되고 있지만, 공사기간은 역설적으로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북한은 대규모 살림집공사를 최단기간에 완공하였다고 선전하며, 체재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20211월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2025년까지 해마다 1만 세대 씩 총5만세대의 주택을 건설하겠다고 선포하고, 그 첫 사업인 송신송화지구 1만세대 살림집을 불과 1년 만에, 연이어 화성지구 1만 세대 살림집을 12개월 만에 완공한다. 각각 80, 40층 초고층이 포함된 대규모 단지이다.

 

마치 전쟁에서 전격전을 하듯이 재빠르게 공사를 마무리하자는 속도전이란 선동구호를 사용하며 공사를 최단기간에 마무리한 것이다. 속도전은 내부결속을 다지며 가시적 성과를 주민들에게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70년대 이후부터 70일 전투, 200일 전투 등 다양한 이름으로 사용되어 왔다.

 

 초고층건물이 포함된 1만 세대 살림집을 1년 만에 완공한다는 것은 국내 건설시장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북한은 가뜩이나 대북제재와 코로나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건물을 척척 완공시키고 있다. 북한이 각종 매체를 통해 선전하고 있는 화려한 야간 준공식 사진만 본다면 수도 평양의 발전상에 대한 긍정적인 잔상이 남을 수 있다. 화려한 준공식사진 뒤에 가려진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평양 대규모 살림집개발을 단기간에 가능케 한 요인들을 살펴보면 아래의 다섯 가지 정도로 귀결될 수 있을 듯하다.

 

철광, 석회석 등 매장량 풍부 공사 가능

 

첫째, 철강, 시멘트의 원료인 철광석 및 석탄, 석회석 등의 지하자원 매장량이 풍부하여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체적인 공사가 가능하다. 철강은 성진제강소,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등을 비롯한 크고 작은 기업들을 통해 국산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시멘트의 경우도 순천시멘트공장을 포함해 연간 800만 톤을 생산해 낸다고 하니 주민용 살림집은 충분히 지을 수 있다고 보여 진다. 유리 및 타일도 남포의 대안친선유리공장, 천리마타일공장 등에서 자체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양에 새로 지은 건물들은 멀리서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외장은 대부분 조악한 타일마감 또는 도장마감에 그친다. 결국 북한에서의 골조공사와 외장공사는 자력으로 충분히 시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 속도전에 기반 한 대규모 인력 동원은 공사를 단기간에 끝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실제 화성지구건설에는 연간 천6백만 명, 하루 평균 45천여 명이 투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부족한 각종 건설기자재를 인해전술로 대체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북한은 자발적지원이라는 형태를 빙자해 다양한 형태의 노동조직을 구성해 노동착취를 자행해왔다. 그중돌격대는 외부에도 잘 알려진 동원조직으로서 국가적 건설사업을 위해 만들어진 군대식 편재의 노동조직을 말한다.

 

문제는 국가에 의해 추진되는 강제적 성격의 노력동원에서 노동권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상지역으로 파견된 노동자는 몇 주에서 몇 개월에 이르는 기간 일해도 임금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파견기간 소요되는 식량이나 비용을 노동자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일하다가 부상을 당해도 이에 대한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외에도 동원기간 발생하는 인권침해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현대판 노예제나 다름없는 것이다.

 

특히 이렇게 동원된 돌격대는 전문성이 전혀 없는 일반인들이라, 구조안전성 및 시공의 품질도 담보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통일 이후 대부분의 건물이 사용 불가한 폐기물덩어리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셋째, 북한의 대부분 건물은 지하 공간을 계획하지 않는 관계로 토목공사 기간이 매우 짧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초고층건물의 경우 지하에 대규모 주차장과 일정 규모 이상의 기계, 전기실 및 부대시설이 계획된다. 지상 층에 버금가는 규모의 지하공사가 수반되기 마련이다. 안전한 지하구조물 공사를 위해서 흙막이가 시설물에 대한 굴토심의, 지하영향평가 등의 절차를 거쳐 흙막이 공사와 터파기 공사를 한다. 지하공사 기간이 전체공사 기간의 절반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초고층 건물도 지하층 없이 바닥 기초만 타설

 

반면 북한의 경우 위성사진으로 유추해 보면 최근 지어지는 초고층 건물도 대부분 지하층 없이 1층 바닥 기초만 타설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지하공사가 없으니 당연히 공사기간은 획기적으로 단축되겠지만, 향후 시장개방이 될 경우 주차공간을 비롯한 건축물의 부대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부분은 건물의 존폐를 논할 만큼의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넷째, MEP(기계, 전기, 배관)공사 및 마감공사의 수준이 매우 떨어진다. 정치적 목적으로 공사기간을 과도하게 줄이다 보니, ·하수도 공사나 가스, 전기공사 등 MEP공사를 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실내 마감공사 없이 골조상태로 입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전력의 경우 특권층이 모여 사는 창전거리나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 등은 그나마 낫지만 나머지는 제한송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집집마다 대부분 태양광 판넬을 설치한다.

 

2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라도 승강기가 없거나 있어도 전력 부족으로 출퇴근시간만 한시적으로 가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고위층이 있는 아파트는 11~12월경 난방용 땔감이나 김장재료 운송용으로 엘리베이터를 연장 운행한다고 한다.

 

상수도 상황도 좋지 않다. 고층으로 물을 공급하는 펌프 등의 장비가 부족하여 최근 지어지는 아파트는 화장실에 물탱크를 만들어 놓고 수돗물을 3~5톤씩 저장한다고 한다. 북한 아파트에서 가장 열악한 요소는 바로 난방이다. 일부 특권층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중앙난방 시스템을 갖춘 아파트는 손에 꼽고, 개별난방도 제대로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연탄 난로 등을 갖췄다 하더라도 연탄 및 땔감 공급조차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아무리 좋은 아파트에 살더라도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도 없는 전력난을 포함한 열악한 설비시스템으로 인해 오히려 저층이 로얄층으로 인식되고, 팬트하우스에 최하층민이 거주한다고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다섯째, 대부분의 가설공사가 생략되거나 부실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건설현장 사진을 보면 사고예방을 위한 가설울타리 및 안전 난간이 설치되어 있지 않고, 나무가설비계가 불안하게 설치되어있는 모습이 목격된다. 가설비계는 재료운반이나 작업자의 통로 및 작업을 위한 발판이 되는 구조물이다. 우리나라는 강관비계 조차도 균일한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아서 시스템비계로 변경되는 추세인데, 나무가설비계로 초고층을 지어 올리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부실한 가설공사는 붕괴 및 추락 등의 안전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작업자의 목숨을 담보로 속도전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살림집건설은 주민 결속의 정치적 수단

 

인민에게 주택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북한에게 대규모 살림집건설은 내부적으로 주민을 결속하는 중요한 정치적 수단이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고강도 대북제재의 무용론과 체제의 건재함을 알리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내용과 같이 그 과정에서 인권이나 안전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며, 사람은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건설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김정은은 2016년 신년사에서 건설은 곧 국력과 문명의 높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척도이다라고 하며 세계적인 도시들이 보여주는 세련됨과 현대화된 양식을 모방하고 따라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기본적인 도시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고, 설비전기 공급대책도 없는 평양에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초고층살림집의 공급은 극장국가의 랜드 마크 만들기 정책의 일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화성지구 1만세대 살림집 야간준공식.


분단국가의 특성상 물리적인 접근이 불가능하고, 정확한 자료를 구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는 군사분계선 너머에서 북한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사람에 집중하고, 나아가 본질을 유추할 수 있는 전문가의 눈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명하고 의견을 제시하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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