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달빛속에 촉혼이 운다

두견새울음 구슬픈데 산에 달은 나직이 걸렸더라<309>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19/02/08 [14:12]

[황진이]달빛속에 촉혼이 운다

두견새울음 구슬픈데 산에 달은 나직이 걸렸더라<309>

통일신문 | 입력 : 2019/02/08 [14:12]

그 두루마기를 놈이의 어깨 우에 걸쳐주고 앞으로 꼼꼼히 여며주었다.

이금이가 손에 들고 온 소반을 놈이 앞에 내려놓고 술방구리와 술반을 그 우에 올려놓았다. 진이는 소반 앞에 꿇어앉아 술을 따랐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잔을 받들어 놈이 앞에 내밀었다.

놈이는 그 잔을 손에 받아 들었으나 입에 가져가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잔 안에서 찰랑거리는 맑은 송화주의 감미로운 향기를 맡았다.

진이는 놈이를 향해 큰절을 했다. 이슬에 젖은 그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제가 당신께 올리는 첫 잔이자 마지막 잔입니다. 우리의 인연이 이렇게 짧은 것을 어떻게 하겠나요? 저는 당신께 올리는 이 한잔 술로 우리 사랑의 즐거운 합환과 우리 사랑의 슬픈 고별을 함께 하고저 합니다. 제가 권주가 삼아 노래를 불러올릴 터이니 이 잔을 들어주세요.”

놈이는 대답이 없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그 술잔이 들려 있었다. 선정삼매의 평온한 표정에 가벼운 물결이 일고 있었다.

홀연 진이의 입에서 신음소리 같은 것이 새여 나왔다. 아니, 그것은 아픔의 신음소리가 아니라 흐느낌처럼 떨리는 노래소리였다.

......

하늘 중천 달 밝은 밤에

촉혼이 외로이 울어

슬픔은 은하에 잠기고

괴로움은 수풀에 서렸네

...

처음에는 마음속으로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속삭임으로 시작된 그 노래소리가 점차 폭이 넓어지는 내물처럼 굽이를 이루고 여울을 이루었다.

...

촉혼아, 내 사랑 네 알리로다

그 사랑 오자 곧 떠나가니

보아라, 무심한 저 바람도

송악산 숲속에 부니며 울어예네

...

달빛 속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는 진이는 지금 지상의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함게 천상의 것이라고나 하여야 할 그지엇는 경건함과 거룩함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

아, 길이여! 님이 가실 길이여!

어쩔 수 없는 고별이라 버들아지를 꺾었지만

어즈버, 길섶 짙은 찬이슬에

그대 옷 젖을가 념려로세

...

진이는 노래의 마지막 구절을 씹어 삼키며 그 자리에 푹 꼬꾸라졌다. 그리고는 마치 끝내지 못한 노래를 마저 이어가듯 호곡을 터뜨렸다. 그 호곡이 오히려 노래보다 더 애절하고 애통스러웠다. 그는 어깨를 떨었다.

할멈과 이금이가 진이를 붙잡아 일으켰다. 진이는 놈이의 몸 대신 그의 온몸을 무겁게 지지누르고 있는 칼을 두 팔로 그러안았다. 눈물을 삼키며 흐느끼며 놈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놈이는 밝게 웃고 있었다. 잠시 마음속의 평온을 깨뜨렸던 격랑은 지나갔다. 도대체 증오와 살기와 악의 이외에는 그 어떤 표정도 담을 수 없게 생겨먹은 그의 갈고리눈에서 어쩌면 저리도 맑은 하늘에 비낀 려명과 같이 순결하고 부드럽게 깨끗한 웃음이 피여날 수 있을가. 그러나 아무리 밝고 깨끗하다고 해도 그 웃음에는 흔히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쓸쓸한 영별의 빛처럼 어두운 그림자가 비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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