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달빛 속에 촉혼은 운다

두견새울음 구슬픈데 산에 달은 나직이 걸렸더라 (296)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18/11/08 [15:54]

[황진이] 달빛 속에 촉혼은 운다

두견새울음 구슬픈데 산에 달은 나직이 걸렸더라 (296)

통일신문 | 입력 : 2018/11/08 [15:54]

더 기다리거나 물러설 자리가 없었다. 괴똥이를 죽이느냐 살리느냐. 이금이를 죽이느냐 살리느냐 하는 경각의 중난한 문제가 오로지 진이, 자신의 손에 달렸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쨌든 송도 부중에서 포도부장의 행동을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류수사또 희열이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진이한테는 희열이라는 존재가 한낱 혐오감을 자아내는 위선자에 결과한 것이지만 아서라, 급할 때는 성긴 바디로도 물을 막는 것이요. 바가지라도 뒤집어쓰고 벼락을 피하는 것이다. 진이는 바싹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 밤은 너무 늦었다. 그러나 래일은 아침 일찍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희열이를 만나야 했다. 만나서...그것은 아직 진이로서도 막연한 것이였으나 분명한 것은 적어도 서울에서 회답이 올 때까지만이라도 괴똥이를 죽이지 않으리라는 담보와 약속을 그한테서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였다.

진이는 한번 터지자 도무지 진정하지 못하고 끝없이 흐느끼는 이금이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조용히 말했다.

“근심 말아, 내가 래일 아침 류수사또를 찾아 뵙구……꼭 좋은 소식을 가지구 나올 테니 너무 상심일랑 말아라.”

실상 이것은 이금이한테 하는 위로의 말이라기보다 진이 자신이 스스로 굳게 다지는 맹세와 같은 것이였다. 방문 밖 툇마루 우에 언제 나와 앉았는지 할멈의 무거운 한숨 소리가 길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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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열은 내아의 침실에 혼자 들었다. 매향이는 달거리 때라 집에 내보내서 없고, 마음만 내키면 자리 안에 끌어들일 얼굴 밴밴한 관비년이 내아에 없는 것은 아니나 오늘 밤은 왜 그런지 그 좋아하는 계집질도 심드렁했다. 그는 초불을 물리고 자리에 누워서 오만가지 잡생각에 뒤척거리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희열이 자신으로서도 외직1년에 자기가 다 닳은 다갈마치처럼 아주 모질고 독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사촌형의 훈수를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리방과 호장을 흔적없이 제껴버리라고도 외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맛있게 밥을 먹고 편안히 잠자는 것을 보면 스스로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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