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달빛 속에 촉혼은 운다

두견새울음 구슬픈데 산에 달은 나직이 걸렸더라 (292)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18/10/11 [13:19]

[황진이] 달빛 속에 촉혼은 운다

두견새울음 구슬픈데 산에 달은 나직이 걸렸더라 (292)

통일신문 | 입력 : 2018/10/11 [13:19]

옥바라지라고 군관청의 높은 담장 안에 갇혀 있는 남편을 얼굴은 보지 못한채 지공하는 것인데 장교들이 군말 않고 음식 그릇을 받아들이니 아직 괴똥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였다.

도리여 평소에는 드살스럽던 할멈이 유약해져서 땅이 꺼지는 한숨을 몰아쉬며 때없이 눈물을 찔끔거렸다. 기거동작이 허둥지둥할 때가 많았고 움직이다가는 목적을 잊고 우두커니 서서 “아이고, 이게 무슨 마른 벼락이람” 하는 한탄 소리를 쉴새없이 중얼거렸다. 일생을 거친 풍파를 헤치며 살아온 다기진 녀인이였지만 종시 나이는 어쩔수 없어 그로서는 이 ‘마른벼락’을 이겨낼 힘이 없었던 것이였다.

진이는 말이 없었다. 돌올한 눈의 정채와 두 뺨의 웃는 빛이 사라졌다.

화석처럼 굳어진 얼굴에 입술은 꼭 다물리고 근엄한 표정에 음울한 두 눈에서는 싸늘한 기운이 풍겼다. 지금 진이의 얼굴은 마치 5년 전 자신의 손으로 자기의 목숨을 끊는 단호한 결심으로 기적에 몸을 내던지던 때의 비장한 모습을 방불케 했다. 아니, 비장하다기보다는 형언하기 어려운 마음속의 고통을 뱉아버리지 못하고 그냥 통째로 묵묵히 씹어 삼키는 결곡한 녀인의 야멸찬 모습에 더 가까웠다.

진이는 횡액을 당하자 곧 희열이가 갑자기 금신사에 행차한 까닭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금신사에서 돌아온 다음에도 그는 고뿔을 앓는다는 핑계로 깊숙이 들어앉아서 그동안 여러 번 배알을 청한 진이를 만나주지 않았다. 이것은 벌써 평소에 알고 있던 희열의 소행이 아니였다.

그런데다가 진이는 며칠 전에 가깝게 다니던 어느 장교를 통해 자기가 놈이의 귀순을 받아달라고 청한 날 밤 수교가 류수의 령을 받고 자기의 뒤를 밟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각만 해도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등골이 오싹하도록 소름이 끼쳤다. 참으로 그날 놈이가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염병골을 떴으니 망정이지 그대로 상두도가에 남아 있었더라면 일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비 방울을 보면 홍수를 짐작할 수 있다. 이떻든 명백한 것이 류수한테 도움을 청해가지고는 괴똥이를 구해낼 수 없으리라는 것이였다.

진이는 어쩔 수 없이 서울의 줄을 당겨 구원을 청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뒤배 노릇을 해주지 못해서 안달을 하고 몸살을 앓는 의정부와 륙조의 모야모야 하는 대감마님들이 수두룩했지만 아직 자기 일로 설렁줄을 당겨본 일은 한번도 없는 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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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호수 연풍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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