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후배들 위한 봉사활동, 평생 가슴 속에 남을 소중한 순간”

[인터뷰] 서울명치과의원 최한별 상담실장 겸 치기공사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07/15 [14:22]

“탈북 후배들 위한 봉사활동, 평생 가슴 속에 남을 소중한 순간”

[인터뷰] 서울명치과의원 최한별 상담실장 겸 치기공사

통일신문 | 입력 : 2020/07/15 [14:22]

 세상 사람들이 의아한 눈길로 보는 북한의 3대 수령(대통령)세습 체제이다. 기이한 그 사회 유지의 비밀은 2천만 인민이 정치조직에 가입되어 평생토록 사상학습 및 정치조직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8살 때에 조선소년단(소년소녀 정치단체), 14살부터는 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 정치단체)에 의무적으로 가입한다.

18살부터 조선노동당에 입당할 수 있으며 100명 중 한 두 명의 비율로 매우 낮으나 나이 제한은 따로 없다. 그나마 17살에서 최대 30살까지 복무하는 인민군대에서는 청년들의 40%가 입당을 한다. 북한주민은 나이 30대 중반이면 직장인은 직맹, 농민은 농근맹, 여성은 여맹 등 정치조직에 가입한다.

어떤 조직에도 가입되지 않는 부류는 7살까지 어린이들과 의식불명의 환자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조직의 최고지도부는 조선노동당’(수령)이며 주민들은 평생토록 조직에 존속되어 생활하고 일한다. 북한사회의 한 정치조직인 직맹을 취재하기 위해 최한별 명치과의원 상담실장을 만났다.

자신을 소개해준다면.

19758월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도보위부 정치학습 강사였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형제는 오빠가 있었다. 19958월 청진예술대학을 졸업하고 도선전대 방송원(5)으로 배치를 받았다. 함경북도에는 도예술단과 도선전대가 있는데 모두 도당위원회 소속 단체이다. 굳이 평한다면 도예술단은 합창, 무용, 성악, 기악 등이 강하고 도선전대는 방송, 화술, 연극, 재담 등이 우세하였다.

방송원이 하는 일은 주로 어떤 것인가.

극장이나 공연장에서 정치행사를 할 때 사회(MC)를 맡는다. 북한의 모든 행사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 ‘김정일 장군의 노래로 시작하고 연설과 토론·발표 등에도 수령충성 용어가 홍수처럼 붙어있다. 마칠 때도 수령충성 가요로 끝낸다.

공장과 기업소 및 건설장과 농촌 등 사회주의 경제건설 현장으로 이동공연을 나갈 때 방송차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동신문 사설이나 강연제강을 낭독해준다. 또한 근로자들의 충성심을 불러일으키는 즉흥연설도 방송원이 한다.

이후 어떤 직무를 맡았는가.

함경북도 선전대 방송원을 1년 정도 하고 이후 아버지의 인사이동으로 평안남도 평성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평성은 인구 28만 명 규모의 도시로 평안남도 소재지이며 북한의 과학연구기관인 국가과학원이 위치한 곳이다. 평안남도 보위부에 근무하는 아버지의 노력으로 평안남도직업동맹 소속 해설(학습)강사가 되었다. 대중 앞에 서는 명예스러운 직무로 나름대로 괜찮은 직업이고 할 수 있다.

조선직업총동맹은 어떤 조직인가.

19511월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와 통합되어 조선직업총동맹(약칭 직맹혹은 직총’)으로 되었다. 직맹의 성격은 그 규약에서 직맹은 조선노동당의 옹호자이며 당의 영도 하에 모든 활동을 전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직맹은 통상 1년에 2차례의 전원회의와 선전일군회의 등 관련회의를 수시로 소집해 중요한 현안을 토의한다. 현재 조선직업총동맹 산하에는 9개의 산업별 직맹조직이 구성되어 있으며 도··군 직맹위원회를 하부조직으로 두고 있다. 맹원수는 약 160만 명으로 추산하며, 중앙본부는 평양시 대동강구역에 있다.

직맹 해설 강사가 하는 일은 뭔가.

도 안에 있는 각 공장·기업소로 직맹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나가는 것이다. 강연제강은 모두 노동당의 비준(승인)을 받고 내려온 것이다. A4용지 5~6장 분량의 원고는 반드시 암송하고 대중 앞에서 원고를 보지 않고 해야 한다.

청중 인원은 현장마다 다른데 적으면 수십 명, 많으면 수천 명이다. 강사는 강연내용에 따라 표정과 제스처도 수시로 바꿔야 한다. 전체적으로 박력과 기백이 있는 어조로 대중에게 정확하고 확실하게 당의 목소리를 전해야 한다.

 

직맹 해설 강사는 직맹원들 대상으로 강연

강연제강은 노동당 비준을 받고 내려온 것

A4용지 5~6장 분량 원고는 반드시 암송하고

대중 앞에서 원고를 보지 않고 해야청중은

현장마다 다른데 수십 명에서 많으면 수천 명

 

강사는 강연내용에 따라 표정과 제스처 바꿔야

전체적으로 박력과 기백 있는 어조로 대중에게

정확하고 확실하게 당의 목소리를 전해야

 

강연 내용은 주로 어떤 것인가.

김일성 사망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원으로 활동을 할 때나 직맹 해설 강사로 활동할 때나 공통적으로 위대한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주제로 각 분야별로 내용을 세부화해 진행했다. 다시 말하면 김일성의 유훈을 받들어 김정일을 높이 받들어 사회주의혁명을 끝까지 완수하자는 내용을 전파했다.

강연 원고는 공산(정치)대학 혹은 당간부학교 출신의 초급당비서 혹은 부비서가 강연원고를 쓰지 않는가? 하고 생각하지만 전혀 아니다. 직맹 뿐 아니라 노동당, 청년동맹 등 어느 정치단체에서 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하던 그것은 전부 노동당에서 내려온 제강을 해당 관계자(당비서)가 승인을 하여 진행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평양(노동당)에서 전국 각 분야별로 강연제강을 만들어 내보내는 것 같다.

해설 강사는 어떤 특혜가 있는가.

다소 인기 직종이라고 할 수 있다. 나처럼 예술대학교 방송학과 졸업생, 사범대학 졸업생들이 많다. 학력과 기량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토대(신분)도 좋아야 한다. 도보위부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둔 내가 평범한 수준이었다.

해설 강사들은 항시적으로 대중 앞에서 당의 목소리(강연제강)를 전하는 사람이기에 외모와 풍모(옷차림)도 단정해야 한다. 또한 그들은 당위원회 선전부 소속이기에 아무래도 입당이나 간부들과의 인맥 쌓기에서 조금 유리하다.

그 부문도 경쟁 혹은 차이가 있나.

가장 선호하는 강사는 혁명사적지 해설 강사이다. 혁명사적지는 수령 일가와 관련된 특별장소인데 이곳은 국가가 최우선으로 관리한다. 방문자들도 대부분 당, 정권기관, 근로단체, 안전 및 보위부분 같이 힘 있는 기관원들이다.

일반 근로자들이 방문하는 것과 간부들이 방문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다르다. 간부들이 며칠간 방문할 때는 후방물자(식료품, 생필품)를 충분히 갖고 오기 때문에 그 덕분에 해설 강사들도 톡톡히 호강을 한다.

집안에 불안한 징조가 있었다면서.

19983월 경 아버지가 노동당의 특별조사에 걸려 도보위부에 수감되었다. 자세한 영문은 몰랐고 아마 특정조직의 반체제 음모에 가담한 사람들 색출에 대한 취조인 것 같았다. 6개월이 지나도 아버지 문제에 관해 최종결정이 없었고 9월 나는 직장서 강제퇴직이 되었다. 아버지의 처지로 어디에도 떳떳이 갈 수 없었다.

퇴직과 동시에 다른 직장을 소개하지 않는가.

원래는 그래야 하는데 아버지의 죄명이 확정되지 않아 그렇다고 나를 계속 대중 앞에 세우는 해설 강사로 쓰기에는 부담스러웠던 것 같았다. 퇴직해서 3개월 안에 다른 직업으로 옮기지 못하면 신분증명서류에 불량분자딱지가 붙는다. 그러면 노동단련대(노역장)에 가서 무보수 노동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해설 강사가 노동단련대에 간다는 것은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것이 탈북동기이겠다.

그렇다. 어느 날, 대학동기 A씨가 사는 함북도 회령으로 가고 싶어졌다. 대학시절 A씨의 집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국경지역 사람들의 생활이 다소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무작정 북행 열차에 몸을 실어 회령으로 갔다.

A씨의 아버지를 만났는데 딸은 수년 전에 중국으로 갔으니 너도 중국으로 가서 살아라며 중국 연길에 있는 친척집의 주소까지 적어주며 나의 등을 떠밀어 주었다. 그렇게 되어 탈북을 하게 되었고 19981222일이었다.

 

대학시절 친구의 집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국경지역 사람들의 생활을 흥미롭게 느껴

친구 아버지는 딸은 수년 전에 중국으로

갔다며 중국 연길에 있는 친척 주소까지

주며 떠밀어 9812월 중국으로 탈북

 

중국에서 어떻게 보냈는가.

연길에 있는 A씨 친척집에서 상해로 가서 연락이 끊긴 A씨를 기다리며 3개월간을 기다렸다. 나도 상해로 가고 싶었으나 탈북자라는 불안한 신분이라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후 A씨의 친척이 소개해주는 하얼빈으로 가서 가정집 보모로 1년간 일했다. 탈북자의 신분으로 중국 땅 어디에 있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여 캄보디아를 경유하여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20014월이었다.

 

연길서 연락이 끊긴 친구를 3개월간 기다려

상해로 가고 싶었으나 탈북자라는 불안한

신분이라 용기가 나지 않아 친척이 소개하는

하얼빈으로 가서 가정집 보모로 1년간 일해

탈북자의 신분으로 중국 땅 어디에든 불안해

캄보디아를 경유 한국으로 20014월 입국

 

남한생활 정착 초기 어떻게 보냈나.

20023월 고려대학교 치과기공학과에 입학하였고 2005년에 졸업하였다. 이어 한신치과에 취업해서 치기공사로 4년간 경력을 쌓았다. 200912월 지금의 명치과의원을 개원하여 운영하고 있다. 직원은 3명을 두었다.

2011년에는 서울시 선정 사회적기업인 진주코스메틱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화장품 관련 업종인데 해마다 탈북민 수십 명에게 뷰티자격 교육을 주었다. 실기, 필기 교육위주로 분기에 한 개 기씩, 2년간 지속적으로 해왔다.

탈북민들의 치아 상태는 어떠한가.

후진국 사람들일수록 치아관리를 잘 안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남한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치아관리를 잘하는데 비하면 탈북민들의 치아는 많이 안 좋은 상태이다. 특히 50대 후반의 탈북민들 80%가 치아 상태가 매우 나쁘다. 이유는 비위생적인 치아관리, 영양부족, 치료시기를 놓친 경우 등으로 보고 있다.

환자치료 중에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십 수 년 전, 북한 함경북도 회령의 두만강 기슭에서 중국에 가서 내 딸과 함께 새로운 세계의 젊음을 살라며 나의 등을 떠밀어 주던 대학동기 A씨 아버지를 만났던 것이다. 그것도 치과에 치료를 받으러 온 손님으로 말이다. 그 분의 말씀에 따르면 중국에서 북송된 A씨와 어머니는 노동교화소에 들어가 잘못되었고 아들과 함께 탈북하여 한국으로 왔다고 했다. 서로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친아버지로 생각하며 가끔 안부전화도 드린다.

하나원 봉사 활동도 하였던데.

열린치과의사회 회원들로 구성된 봉사자 일원으로 1년간 주말마다 안성하나원을 방문하여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봉사 활동을 펼치었다. 선배로 남한에 와서 대학공부를 마치고 치기공사가 되어 후배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일생동안 가슴 속 깊이 간직할 만한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탈북민들에게 보철, 임플란트, 브릿지, 틀니 등의 서비스를 받는 것이 좋다고 권고했다.

 

2002년 고려대학교 치과기공학과에 입학

2005년 졸업이어 한신치과에 취업해

치기공사로 4년간 경력 쌓고 200912

명치과의원개원 운영하며 직원은 현재 3

서울시 선정 사회적기업 진주코스메틱설립

 

현재 또 다른 업무도 하던데.

최근 인풀루언서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더믹 2020~2023년의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바이러스와 괴질이 현실경제를 위축시켜 나아가기에 비대면도구인 VR, AR, MR을 이용한 EBP(구매 전 체험쇼핑) 커머스와 같은 새로운 유통질서 모델이 패권을 잡는 시대가 본격화 될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해준다면.

인풀루언서(influencer)는 유통마케팅 회사들의 관심대상이다. 아마존, 네이버가 하는 인풀루언서 마케팅모델과 내가 생각하는 인풀루언서의 방향의 차이는 한마디로 기업형 중심이 아닌 개인과 그룹인풀루언서 성장방향이란 점이다.

개인과 그룹인풀루언서 교육 커리큘럼을 통해 자신감의 증진을 확대하는 것이다. 또한 시대적으로 요구되는 인간 본연의 의식고취를 통해 부(금전적 이익)의 재분배라는 사회적 현상의 행복한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북한에서는 전체 인민들이 당에서 강제 배치해주는 직업에 종신토록 복종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니 창의적 정신이 부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 폐쇄적 사회에서 살던 탈북민들이 남한에 와서 우선 가져야 할 것은 바로 다양한 직업에 대한 과감한 도전정신이라고 본다. 실패했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전혀 없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과 시련도 겪으며 그 과정에서 경험을 쌓고 발전하며 성장하는 법이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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