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 가던 길을 멈추고 물어본다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05/20 [16:10]

[모란봉] 가던 길을 멈추고 물어본다

통일신문 | 입력 : 2020/05/20 [16:10]

<박신호 방송작가>

어쩌다 코로나 19’라는 날벼락 같은 병균 강습으로 올봄을 다 날려 보내고 생고생을 겪고 있다. 100일이 훌쩍 지났건만 아직도 민낯으로 안심하고 심호흡하며 살 수 없으니 세상에 이런 변이 있을까 싶다.

그동안 문명 이기가 문명 흉기로 변해 지구환경이 나빠져 미세먼지와 황사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더니 이번에는 코로나로 마스크 없이 문밖만 나서도 마음대로 숨을 쉴 수 없는 세상이 됐으니 질겁을 안 할 수가 없다.

의료진을 비롯해 여러분들의 헌신으로 한결 진정이 돼서 다행이긴 한데 그러나 가을이나 겨울이 닥쳐봐야 확실히 알 수 있다니 걱정은 여전하다. 특히 65세가 넘은 노인들은 더 조심해야 한다니 심신이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나저나 긴 시간을 집이라는 폐쇄 공간에서 지내야 하는 분들은 공황장애라는 또 다른 병이라도 걸리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러지 않아도 이런 일 저런 일로 공황장애로 고생하는 친구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코로나까지 덮치니 심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코로나에 밀려 살 수만 없어 혹시 탈출구가 없을까 이리저리 찾아봤다. 하지만 구멍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폐쇄 공황에 빠질 것만 같았다. 겁이 더럭 났다. 이러다가 안 되겠다 싶어 마음을 추수를 수 있는 책을 찾다가 갑자기 한 큰스님의 미소가 떠올랐다.

매년 조계종 총무원의 후의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들이 전국 유명 사찰에서 불교 세미나를 가 질수 있었다. 어느 해인가 해인사에서 세미나를 마치고 귀경길에 올랐다가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게 됐다.

마침 총무원 원장님과 동석하게 돼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조금은 심술기가 있는 질문을 했다. “원장님, 스님들은 고기를 자시지 않는데 지금 원장님께서 드시는 냉면은 고기로 만든 육수입니다. 드셔도 됩니까?’ 그러자 원장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맨 물로 여기고 먹고 있습니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 원장님은 면벽 좌선을 5년이나 하신 큰스님이셨다. 불교에서 면벽 좌선이란, 잡념을 막기 위해 벽을 마주하고 앉아 수행하는 것을 일컫는데, 참선하는 이유는 도를 닦기 위한 것이다.

도는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하는 것이고, 도리란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길을 말하는 것이다.

면벽 좌선도, ‘무문관(無門關) 수행을 할 때는 하루 한 끼의 식사나 물만 마시기도 하며 방에는 요강이 있어 문밖 출입할 필요가 없으며, 잠을 안자거나 눕지 않고 수행하기도 한다. 그러니 면벽 좌선을 한다는 건 보통 수행이 아닐 것이다. 그런 면벽 좌선한 큰스님께 육수 따위를 들먹였으니 아무리 젊었을 적이었지만 속물은 속물이었다.

그때 큰스님 생각하니 코로나로 100여 일이나 허송세월한 게 후회스럽다. ‘면벽을 할 주제는 못 된다고 해도 반반한 책이라도 몇 권 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고 지나온 세월을 성찰하는 글이라도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나 싶어서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게 인간이라 해도 이 나이가 들도록 깨달음의 근처에 가기에도 이렇게 늦되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자책만 하고 있을 수 없으니 자성의 수행이라도 해야 할까 보다.

우문현답이 생각난다.

강물에 빠진 사람이 죽는 것은 이유가 있다. 물에서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가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배는 항해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많은 사람이 물에 빠져 죽고 해난사고를 당하고 있다. 어찌 어리석다 안 할 수 있을 건가.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난다. 100세 시대에 기세 있게 물살을 가르며 항해하고 싶다. 딴생각일랑 말고 앞만 바라보고 굽히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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