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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들, 고향에 함께 갈 동지...목숨 걸고 대한민국 지킬 애국자들”
[인터뷰] 더불어민주당 북한이탈주민특별위원회 전주명 위원
 
통일신문 기사입력  2020/03/05 [17:18]

대부분 보수성향을 보이던 탈북민사회가 둘로 나뉜 시기는 20175월에 있은 제19대 대통령선거 때이다. 과거 보수정권시절 언론에 얼굴을 자주 보이던 탈북민출신 오피니언리더들이 진보정당의 대선 후보를 지지했던 것이다.

 

당시 탈북민사회서는 무엇을 바라고 철새처럼 정치성향을 바꾼다는 풍문이 자자했다. 반대로 차분하게 현실을 직시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았고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우리 탈북민을 위한 당이면 된다는 소리도 분명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된 탈북민들은 유권자로써 각종 선거 때 자기 성향에 따라 여당 혹은 야당을 지지하면 된다. 여당을 지지했다가 야당으로 바꿀 수 있고 반대로 야당에서 여당으로 바꿀 수도 있다. 선거에 불참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된다.

이런 현실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기까지 탈북민들은 대략적으로 선거 두 세 번은 해봐야 조금은 익숙하게 된다. 선거철이 곧 다가온다. 서울 양천구에서 더불어민주당 북한이탈주민특별위원회 전주명 위원을 만났다.

 

- 탈북민사회 대표적인 진보정당 지지자이다.

정확히 말하면 진보정당 활동가이기도 하다. 나는 과거 보수정권 시절에도 진보정당에서 공개적으로 탈북민 관련 다양한 활동을 했으며 지금도 하고 있다.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똑같은 대한민국의 정치정당이다.

일부 탈북민들이 정치가 밥 먹여 주냐? 관심 없다!”고 하는데 한심한 소리다. 북한주민들은 정치를 모르기에 수령 독재정권의 노예로 산다. 탈북민들이 누리는 이 자유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피 흘려서 정치를 바꿨기에 생긴 것이다.

 

- 탈북민으로 본 진보정당의 이미지는.

진보정당 집권 시절에 대한민국으로 입국해서인지 호의적인 생각을 가졌다. 과거 탈북민 정착금을 일시적으로 상향시켜 준 것도, 탈북민들에 대한 단수여권을 복수여권으로 바꿔준 정책도 김대중 정부에서 있었다. 또한 전세기를 띄워 탈북자 400~500명을 해외에서 한국으로 안전하게 데려온 노무현 정부이다.

 

북한주민들은 정치를 모르기에 수령

독재정권의 노예로 살아...탈북민들이

누리는 이 자유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피를 흘려서 정치를 바꿨기에 생긴 것

 

 

- 진보성향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는가.

흔히 정치권에서 대북문제를 다룰 때 채찍과 당근이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제재대화라는 소리인데 둘 다 필요한 것이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치권에서는 이것이 보수진보로 갈려있다. 솔직한 말로 제재와 압박만으로 북한 문제를 풀 것 같으면 누구보다 내가 앞장서겠다. 허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화와 교류도 분명 필요하며 개인적으로 내 정치성향이 진보정당과 유사했다고 본다.

 

- 과거 진보정당에서 어떤 활동을 하였나.

지난 2015713,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로부터 당의 새터민위원회 부위원장 임명장을 받으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였다. 보통 당 내 기구는 한 번 조직되면 한 기가 2년씩 간다. 올해는 3기째이다.

이름이 과거 새터민위원회에서 현재 북한이탈주민특별위원회로 바뀌었다. 나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부위원장, 위원 등의 직책을 가졌다. 이것은 어쩌면 더불어민주당이 우리 탈북민들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정치민주연합 새터민위원회 부위원장

임명장을 받으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활동

현재 북한이탈주민특별위원회로 바뀌어

초기부터 부위원장, 위원 등 직책 맡아

 

 

-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2015년 가을, 새터민위원회 1차 세미나가 대명리조트에서 있었고 탈북민 20여명이 참석했다. 이후 분기에 한 차례씩 세미나를 열어 탈북민들의 애로점을 파악하고 대책마련을 당 차원에서 하였다. 그 결과 탈북민가족 중에 포함된 중국출생자에게도 1인당 400만원의 정착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 또 어떤 성과가 있었는가.

도시철도공사, 시설관리공단, 도로공사 등 공공기관에 탈북민 우선 채용을 지속적으로 촉구하는 요구사항을 우리 위원회가 만들어 그것을 국회에서 법안으로 만들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에 대한 실효성도 분명하게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탈북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이를테면 사회주의 사회에서 게으르게 살던 사람들로 말이다. 심히 잘못된 인식이다. 공공기관부터 탈북민 채용의 모범을 보여야 민간 기업도 따라 할 수 있다.

 

분기 한 차례씩 세미나 열어 애로점 파악

당 차원에서 대책마련...탈북민가족 중에

포함된 중국출생자에게도 1인당 400만원

정착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만드는데 기여

 

 

- 최근 공약 하나를 소개해준다면.

탈북민 생산품 우선구매제도 활성화 방안을 2020년 중점공약으로 채택했다. 우선 구매는 해당기업의 매출 증대와 장애인,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 일자리창출에 기여한다. 현재 물품으로 제한된 생산품의 범위를 용역(서비스), 공사로 확대, 탈북민이 대표인 기업도 포함, 공공조달이 가능토록 제도개선을 권고할 예정이다. 탈북민 업무 역량강화를 통한 신규고용, 고용유지 확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 탈북어르신 노래교실을 운영하던데.

20165월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하는 업무 중의 하나다. 탈북어르신들 70~80%가 혼자 사는 노인이다. 북에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상심이 크다.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며 질병보다 무서운 것이 외로움이다.

탈북어르신 40여 명이 매주 한 차례씩 노래교실에 나와 3~4시간 노래도 배우고 장기와 윷놀이 등을 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재는 20평 규모의 방을 이용하는데 후원금이 모아지면 좀 더 큰 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2016년 지속적으로 하는 업무 중의 하나는

탈북어르신 40명이 매주 한 차례 노래교실에

나와 3~4시간 노래도 배우고 장기·윷놀이 등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래방 운영

 

탈북어르신들 70~80%가 혼자 사는 노인들

북한의 가족에 대한 죄책감으로 상심이 커

질병보다 더 무서운 것이 외로움일 것

 

 

- 어르신들 반응이 어떠한가.

탈북어르신들은 북한 사투리로 인해 주거지역 노인정등에 가면 다소 외면을 받기도 한다. 그들이 50~60년간 평생을 써온 북한사투리를 고치기는 정말 힘들다. 우리 단체가 운영하는 노래교실에서는 100% 탈북어르신들이니 사투리로 인한 따가운 눈초리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어르신들이 너무나 편안해하고 좋아한다.

 

- 탈북학생들 장학금 지급은 언제부터 했나.

2014년부터이다. 여러 회사 및 기관 등과 우리 단체와의 북한이탈주민 후원 및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체결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협약에는 교육, 취업, 의료 등 탈북민들의 복지 취약분야를 적극 지원한다고 적시되어 있다.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장학금 지급사업에서 해마다 20명의 탈북학생에게 모두 1,0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한 200명의 탈북학생들에게 1인당 72만원 상당의 외국어수강권을 증정하였다.

 

회사 및 기관과 단체와의 업무협약 체결

북한이탈주민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체결

협약에는 교육, 취업, 의료 등 탈북민들의

복지취약분야를 지원한다고 적시되어 있어

 

부모 없이 혼자 남한 온 친구도 적지 않아

그들은 대부분 대안학교 기숙사에 거처하며

인근학교에서 일반 남한학생들처럼 공부해

 

 

- 학생들이 무척 좋아하겠다.

탈북학생들 중에는 부모 없이 혼자 남한에 온 친구도 적지 않다. 그들은 대부분 대안학교 기숙사에 거처하며 인근학교에서 일반 남한학생들처럼 공부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방과후교실에서 보충수업을 하고 있다. 탈북민장학생 선발은 아무래도 혼자 사는 학생들을 위주로 하고 있다. 누가 뭐라도 학생들은 우리의 미래이다.

 

- 계속하는 일 중에 또 다른 것이 있다면.

해마다 김치 만들기이다. 북한에서도 매해 김치를 하지만 여기 남한처럼 맛있게 하지 못한다. 김치는 오래 두고 먹는 사랑의 음식이다. 해마다 5~10kg김치가 들은 박스를 500~600개를 만들어 탈북어르신, 청소년, 다문화가정, 장애인 등 주변의 이웃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고 있다. 이 일도 벌써 10년째이다.

 

- 통일을준비하는탈북자협회는 어떤 단체인가.

199811월에 설립된 통일을준비하는탈북자협회는 탈북민 단체로써는 최초로 사단법인으로 등록되었다. 올해로 그 역사가 자그마치 23년이며 탈북민사회에서는 가장 역사가 깊은 단체이다. 현재 탈북민 단체는 70~80개가 있다.

그동안 탈북민들이 제일 많이 거주하고 있는 서울과 경기를 중심으로 광명, 인천, 충청, 전라, 경상지부를 꾸리고 각 지부가 진행할 구체적인 활동계획을 세워왔다. 전국 15개 광역시·도에 우리 단체 지부가 모두 꾸려져있다.

 

통일을준비하는탈북자협회는 탈북민 단체

최초로 사단법인으로 등록...올해로 역사가

23년이며 탈북사회에서 역사가 가장 깊어

현재 탈북 단체 70~80개가 지원 사업 진행

 

 

- 단체의 주요 사업은 뭔가?

탈북민들의 일자리 창출사업이다. 또한 탈북민을 포함한 우리 사회 취약계층에 희망과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들에 대한 후원단체의 지원을 지속적으로 연계 및 실현하는 것이다. 모든 탈북민들이 남한에 잘 정착하여 통일을 위한 선구자가 되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도 큰 희망이 될 것이다. 3국과 북한에서 고생하는 우리 형제들을 돕는 것도 본 단체의 사명 중의 하나이다.

 

- 자신을 소개해준다면.

19664월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1982년 인민군에 입대, 전연군단(최전방부대)1군단 13사단에서 군사복무를 했다. 8년간 인민군에 복무하였다. 참고로 군()에서 대학추천 받는 사람은 10년을 다 안채우고 제대한다.

1994년 평성공업대학을 졸업하고 국가계획위원회 평안남도위원회에 배치를 받았다. 이듬해 평안남도 청년동맹위원회 지도원, 부장 등의 직무를 거쳐 2002년부터 수로해안관측소(국가해양기관) 유급 당일군으로 자리를 옮겼다.

 

 

1982년 인민군 입대, 전연군단인 1군단

13사단에서 군사복무... 8년간 전방서 복무

군에서 대학추천 받으면 10년 안채우고 제대

 

 

- 청년동맹은 어떤 기관인가.

정확한 명칭은 김일성-김정일사회주의청년동맹으로 북한의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조선노동당의 핵심외곽단체이다. 본부(중앙위원회)는 평양에 있다. 김일성에 의해 19461월에 설립되었다. 각 도··군 등 행정단위, 경제부문, 각급학교, () 단위로 산하조직이 있다. 북한의 14~30세 청소년은 의무적으로 가입하며 맹원수는 대략 500만 명이다. 인원수로 보면 조선노동당보다 훨씬 크다.

 

- 직책의 특성상 긍지감도 있었겠다.

당 간부나 청년동맹 간부는 사회정치적 권한으로 인민대중 위에 군림하는 특수 직업이다. 인민들로부터 인사를 받고 짭짤한 대접을 받는 것은 분명 있다. 청년동맹 고위간부들은 대략 40살까지 한다. 그 이후에는 중앙의 당 간부양성기관 재 교육반을 수료하고 도당과 시당, 혹은 그 급 기관의 당 간부로 승진하게 된다.

 

- 탈북을 결심한 이유는.

길지 않았던 인생의 한 시점에서 돌이켜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태어난 북한사회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20045월 무산으로 이동해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 했다. 3일 뒤 베트남으로 이동하였으며 여기서 7개월을 보내고 200411월 남한에 입국했다. 당시 한국정부에서 전세기를 보내어 468명이 집단입국 한 그 속에 있었다. 진보정당이 집권했던 노무현 정권 시절이었다.

 

북한사회에 미래에 대한 희망 없다고 판단

20045월 무산으로 이동해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해...베트남으로 이동하였으며

여기서 7개월 보내고 200411월남한 입국

 

 

- 서울생활 초기 어떻게 보냈나.

지난 2005년 봄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에 탈북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만드는 종합정보지 정착인신문을 창간하여 4년간 운영했다. 8~2만부 가량 발행한 신문인데 재정사정으로 더 이상 운영하지 못했다.

이후 중국과 광물질수입을 기본으로 하는 주식회사 세양을 설립하고 현재 경영 중에 있다. 거기서 나오는 수입의 대부분을 사회활동에 쓴다. 2013년부터 통일부등록 사단법인 통일을준비하는탈북자협회’ 5대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 탈북민 정당 출범을 어떻게 보나.

잘한 것이라고 본다. 한 해에 1000명씩 입국하는 본격적인 탈북민 시대가 열린지도 20년이 된다. 35천이라는 숫자는 보기에 따라 클 수도 작을 수도 있으나 2천만 북한주민을 대표하는 상징성은 분명 있다. 탈북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탈북민 정당 탄생과 향후 활동에 탈북민 참여는 철저히 자발적이어야 한다.

 

 

탈북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자신들의

권익 대변할 수 있는 정당 가질 수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탈북민 정당 탄생과 향후

활동에 탈북민 참여는 철저히 자발적이어야

 

 

자유 민주국가에서 개개인의 정치성향도 달라

같은 점은 통일이 되면 고향으로 함께 갈 동지

목숨 걸고 자유대한을 지킬 애국자들이라는 것

정치성향 달라도 상대방을 응원하고 지지해주길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35천 탈북민은 서로 다른 북한의 지역에서 왔기에 그 성향이 다르다. 또 자유 민주국가에서 개개인의 정치성향도 보수 아니면 진보로 분명 다르다. 같은 점은 통일이 되면 고향으로 함께 갈 동지들이며, 목숨 걸고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애국자들이라는 것이다. 정치성향은 서로 달라도 상대방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면 좋겠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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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3/05 [17:18]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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