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와 ‘원서 접수’의 잘못 사용

[이재봉의 우리말 바로 쓰기]

이재봉 원광대 정치외교학, 평화학 명예교수 | 기사입력 2026/08/28 [17:59]

‘분리수거’와 ‘원서 접수’의 잘못 사용

[이재봉의 우리말 바로 쓰기]

이재봉 원광대 정치외교학, 평화학 명예교수 | 입력 : 2026/08/28 [17:59]

우리는 30년 전 1990년대 중반부터 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하면서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따로 분리해 버리고 있다. 쓰레기를 ‘분리해 버리는 것’은 ‘분리배출’인데 ‘분리수거’로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

 

‘배출(排出)’은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고, ‘수거(收去)’는 ‘거두어 가는 것’이다. 주민들이 쓰레기를 분리해 배출하면, 청소업체, 환경미화원들이 종류별로 수거한다. 그런데 아파트나 숙박시설 등의 쓰레기장에 ‘분리배출’이 아니라 ‘분리수거’라고 써놓은 곳이 적지 않다. 주민이나 투숙객이 아니라 청소업체, 환경미화원을 대상으로 쓰레기장을 안내하는 셈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쓰레기 버리는 것을 ‘분리배출’한다고 하지 않고 ‘분리수거’한다고 말하는 걸까. 큰 잘못이다.

 

건강검진을 받고 약을 사 왔다. 약병에서 복용 방법, 저장 방법 등을 읽어보다 깜짝 놀랐다. “빈 포장재는 분리수거하여 주십시오”라는 안내 문구 때문이었다. 조그만 약병의 깨알 같은 안내문이 환자, 복용자를 위한 걸까, 청소업체, 환경미화원을 위한 걸까. 아주 크고 유명한 제약회사가 배출과 수거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제약회사에 전화했다. 관계자와 통화하기 어려워 홈페이지에 접속해 배출과 수거를 설명하며 바로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제안을 접수했다는 이메일만 다음날 받았다.

 

학생, 수험생들이 진학하거나 취업하려면 꼭 거치는 과정이 ‘원서 접수’다. 여기서 ‘접수(接受)’는 신청이나 신고 등을 ‘받는 것’이다. 지원자는 원서를 제출하고 학교나 회사는 받는 것인데, 학생, 지원자들이 원서, 신청서를 ‘냈다’거나 ‘제출했다’고 하지 않고 ‘접수했다’고 말하기 십상이다.

 

‘원서 접수’뿐만 아니라 ‘고발장 접수’도 많이 잘못 사용된다. 요즘 세상살이가 삭막해지면서 웬만한 갈등이나 분쟁을 법적으로 풀려고 경찰이나 검찰에 고발하는 경우가 많다. 신고자, 고발인이 고발장을 제출하면 수사기관이 접수하는데, 신고자, 고발인이 고발장을 ‘접수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참 잘못됐다.

 

요즘은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불편한 일이 생기면 소극적으로 참지 않고 적극적으로 행정기관에 민원을 제기하는데 이때는 민원을 ‘접수했다’고 하지 않고 ‘신청했다’고 제대로 쓰는 것 같다.

 

참고로, 학위를 ‘취득했다’고 하지 않고 ‘수여받았다’고 표현하고, 쓰레기를 버리면서 ‘수거’라는 말을 쓰며, 원서나 신청서 또는 고발장 등을 내면서 ‘접수’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 ‘군관민’의 잔재 탓이 아닐까.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30년 군사정권 때는 군대와 관청, 기관이 민간보다 우선이거나 중심이었다. 민간은 꼴찌였고 행정의 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 대상이 되기 쉬웠다. 1993년 김영삼이 집권하며 ‘문민정부’를 내세우고 ‘군관민’을 ‘민관군’으로 바꾸며, 민간이 관청, 기관과 군대보다 앞서게 됐다. 이제 군대는 맨 뒤로 밀렸지만, 민간은 여전히 관청, 기관을 주체, 중심으로 삼는 ‘수여받음’, ‘분리수거’, ‘원서, 고발장 접수’ 등의 표현을 그대로 쓰는 게 아닐까. 무리한 억측일 수 있지만 함께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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