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련 강령에서의 통일 조항 삭제 의미

조주호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6/07/23 [11:35]

조총련 강령에서의 통일 조항 삭제 의미

조주호 칼럼니스트 | 입력 : 2026/07/23 [11:35]

통일은 지난 20여 년간 조총련이라는 조직의 존재 이유이자 정체성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번 전체대회에서 이 문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동포 권익옹호, 민족교육 강화 및 새 세대 육성, 동포사회 민족성 고수라는 세 가지 사업목표였다.

 

  조주호 칼럼니스트

과거 강조해 온 민단과의 협력이나 남북화해·통일운동에 대한 언급도 이번 대회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통일'이라는 단어 자체가 조총련의 미래 청사진에서 완전히 지워진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변화가 평양 내부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두 국가론은 북한의 헌법을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바다 건너 일본에서 80년 가까이 활동해 온 재일동포 조직의 정체성까지 재설계했다. 실제로 이 조치가 하부 조직에 전달되는 과정에서는 상당한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총련 산하 조선학교에는 '자주통일', '우리민족' 같은 표현의 사용을 금지하는 지침이 하달됐고, 오랫동안 '자주적 평화통일'을 근거로 민족과 역사를 가르쳐온 교육현장은 크게 술렁였다.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자녀를 일본학교로 보내겠다는 반응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이라는 서사를 조직의 존재 근거이자 교육이념으로 삼아온 조선학교가, 평양의 지침 한 장으로 하루아침에 그 언어를 지워야 했던 셈이다.

 

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이념적 선언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조총련은 최근 몇 년간 북한의 경제난 심화로 물적 지원이 크게 줄었고, 이는 조직의 구심력 약화로 이어져 왔다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재일동포 사회의 지지 기반이 얇아지면서 노동당의 전위대이자 대남 공작기구로서의 기능도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통일 조항 삭제는, 조총련이 더 이상 '통일 운동의 해외 거점'이라는 존재 이유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평양의 판단을 반영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북한대학원대학교의 한 북한 전문가는 이번 강령 개정에 대해 조총련이 북한의 대남정책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해외조직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한 바 있다. 평양의 노선이 바뀌면 가장 먼저, 가장 충실하게 그 노선을 이식받는 조직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흐름 앞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은 어떠한가. 현 정부는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을 내걸고 북한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불추진이라는 3대 원칙 아래 남북관계를 재정립하고 있다. 대북 확성기 방송중단과 전단 살포자제 요청 등 긴장 완화조치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노력이다.

 

통일부는 이러한 기조 아래 남북 간 평화공존 제도화, 한반도 공동성장 기반 구축, 전쟁과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을 3대 목표로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자칫 통일 자체를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어내는 신호로 읽힐 위험도 있다.

 

북한이 헌법과 산하조직의 강령에서 '통일'을 지우는 동안, 우리마저 '평화공존'이라는 이름 아래 통일논의를 뒤로 미룬다면, 결과적으로 두 체제의 항구적 분리를 서로가 용인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평화적 공존과 통일지향이 반드시 상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지금보다 훨씬 더 활발해져야 한다.

 

평화공존은 통일로 가는 과정이어야지, 통일을 대체하는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두 국가론이 헌법에서 해외동포 조직의 강령으로, 다시 학교현장의 언어로까지 착실히 제도화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우리 정부와 국민이 통일을 향한 의지를 다시 확고히 해야 할 때다. 조총련의 사례가 보여주듯 통일이라는 단어는 한번 지워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재일동포 사회에서 통일이라는 말이 사라지는 것을 그저 먼 나라의 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서 통일담론 자체가 축소되고 있다는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의 위기의식이 무뎌지기 전에, 통일을 향한 구체적이고 지속가능한 접근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통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남겨진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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