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채택된 남북화해·불가침·교류협력 부속합의서 이행체계 마련

[기획] 57년 통일부 역사...수장들의 발자취를 보다⑯/ 17대 부총리 겸 통일원 최영철 장관

윤현중 기자 | 기사입력 2026/07/03 [12:16]

’92년 채택된 남북화해·불가침·교류협력 부속합의서 이행체계 마련

[기획] 57년 통일부 역사...수장들의 발자취를 보다⑯/ 17대 부총리 겸 통일원 최영철 장관

윤현중 기자 | 입력 : 2026/07/03 [12:16]

  최영철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


최영철 전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은 19926월부터 19932월까지 노태우 정부 마지막시기에 재임하며 남북관계의 제도화와 정책적 기반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재임 기간은 남북기본합의서가 실제 이행단계로 접어들던 시기이다. 미소 간 냉전 종식 이후 조성된 화해 분위기 속에서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차기 정부에 넘겨주는 과제를 맡았다.

 

4개 공동위원회 출범을 준비하고

운영방안 정비... 남북관계 실질적

협력 단계 발전시키는 기반 구축

 

그의 재임 중 가장 큰 성과는 19929월 채택된 남북화해·불가침·교류협력 부속합의서의 이행체계를 마련한 것이다.

 

화해공동위원회, 군사공동위원회, 경제교류협력공동위원회, 사회문화교류협력공동위원회 등 4개 공동위원회 출범을 준비하고 운영방안을 정비함으로써, 남북관계를 실질적 협력 단계로 발전시키는 기반을 구축했다.

 

또한 통일관계 장관회의를 정례화해 외교·국방·경제·사회문화 분야를 아우르는 범정부적 대북정책 조정체계를 마련했다.

 

대북 경제협력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북한 김달현 정무원 부총리의 서울 방문 당시 공식접촉을 주관하며 남북경제협력 확대 분위기 조성에 기여했고, 남포공단 조사단 파견과 기업인 교류 추진 등 초기 남북경협의 초석을 깔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3년 초 발표한 통일원 업무계획에는 직교역 확대 임가공 사업 추진 투자사절단 교환 문화·체육·관광 교류 활성화 남북공동위 가동 등 훗날 남북교류협력 정책의 밑그림이 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최 장관은 대화와 원칙을 병행하는 현실주의적 대북정책을 추구했다.

 

대화와 원칙 병행... 현실적 대북정책 추구

핵문제 해결 없이 실질적 남북관계 진전

어렵다는 원칙 세우고, 남북 상호사찰과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단호하게 강조해

 

1992남한조선노동당 간첩단 사건이 발생하자 북한에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남북대화 유지라는 기본 기조는 변함이 없다고 밝혀 대화 채널을 열어두었다.

 

또한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본격적인 현안으로 부상했을 때는 핵문제 해결 없이는 실질적인 남북관계 진전이 어렵다는 원칙을 세우고, 단호하게 남북 상호사찰과 국제사회의 공조를 강조했다. 이러한 입장은 이후 김영삼 정부 대북정책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통일정책 연구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독일과 예멘을 방문해 통일경험을 직접 조사하고, 예멘 통일 관계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반도 통일에 적용할 수 있는 시사점을 모색했다.

 

특히 상호신뢰구축과 인적왕래 확대가 통일과정의 핵심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남북 간 교류확대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최 장관 재임기의 또 다른 의미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남북관계 법리의 틀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는 국회 답변에서 남북관계를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잠정적 특수 관계임을 명확히 했다. 이는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정부와 법원이 유지하고 있는 남북관계 해석의 중요한 근거로 평가된다.

 

‘93년 국회서 북한 기관지 노동신문

국내공개 판매 문제에 대한 질문 받자

노동신문의 가두판매시기상조 답변

 

흥미로운 일화도 남겼다. 1993년 국회에서 북한 기관지인 노동신문의 국내 공개 판매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노동신문의 가두판매는 시기상조라고 답했다.

 

교류확대 자체에는 찬성했지만,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상호 신뢰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현실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또한 퇴임 직전에는 북한이 대남 담당 비서를 교체한 사실을 공개하며 이를 남북 화해를 위한 신호로 해석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짧은 재임 기간이었지만, 최영철 장관은 남북기본합의서 체제를 정착시키고, 교류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대화와 안보를 병행하는 균형 잡힌 대북정책을 추진한 통일행정가로 평가받고 있다.

 

[인물 약력]

19351219일 전남 목포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한국일보 등 신문 기자(10), 동아일보 정치부장(196871)

국회의원(1973부터 4, 1988년 낙선), 국회부의장(198587)

노태우정부의 체신부장관(1988), 노동부장관(1989), 대통령 정치특보(199092)

통일원장관 퇴임 후 1994년 통일번영연구원 설립, 2001년 서경대학교 석좌교수로 취임.

서경대학교 총장(20082023)

20252 27일 향년 90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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