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후회가 없습니다”...세상을 품은 그의 삶과 꿈은 아직 진행형

[인터뷰] 나이 아흔에도 꿈을 꾸는 큰 지도자 박청수 교무

윤현중 기자 | 기사입력 2026/07/01 [19:54]

“나는 후회가 없습니다”...세상을 품은 그의 삶과 꿈은 아직 진행형

[인터뷰] 나이 아흔에도 꿈을 꾸는 큰 지도자 박청수 교무

윤현중 기자 | 입력 : 2026/07/01 [19:54]

남원 시골 마을 소녀는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는 홀로 자녀를 키우며 늘 말했다. “너는 교무가 되어라그 말은 한 아이의 인생을 바꾸었다. 열아홉 살에 출가한 그는 평생 독신 수도자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절간과 법당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전남 영광의 학교 설립에서부터 탈북청소년 교육, 인도 히말라야의 학교와 병원 건립, 캄보디아의 지뢰 제거와 우물 파기, 북한 지원과 통일운동에 이르기까지 그의 발걸음은 국경을 넘었다.

박청수 전 원불교 교무

 그가 세운 학교만 아홉 곳, 도움 받은 사람들은 셀 수 없을 정도다. 90세가 된 지금, 그는 화려한 명예나 권력을 가진 인물이 아니다. 작은 숙소에서 검소하게 살아가며 여전히 탈북민을 걱정하고, 청소년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통일의 꿈을 놓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이룬 업적보다 함께했던 사람들과 도움을 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꺼냈다후회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으니까

 

박청수 교무의 올 곧은 말에 주목한다. “진정한 감동은 사람을 변화시킨다젊은이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큰 꿈을 품어야 한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사랑하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이 절대 필요하다.

 나는 평생 청소년과 대학생들을 만나며 살아왔다. 그들이 성장해 사회의 주역이 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젊은 세대가 자기만을 위해 살지 말고, 더 넓은 세상과 이웃을 생각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또한 감동을 받았다면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박청수 교무(敎務), 법명은 청수(淸秀), 출가 전 속명은 희숙(姬淑), “나는 후회가 없습니다열아홉에 출가해 아흔까지세상을 품은 그녀의 삶 북한 김정은도 만나면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요학교 아홉 개, 55개국,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그의 꿈은 무엇일까.

 

 이러한 그가 지금 17년 거주하던 '삶이 있는 집'을 쫒기듯 떠나와 10여평의 원룸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다. 그러나 창 밖으로  마주 보이는 삶이 있는 집과 전 생애가 담겨있는 박물관을  보면서 새로운 꿈을 실천하고 있다.

얼마전 탈북민단체인 '남북하나재단'에 천만원을 기부했으며 탈북민 2명을 초대해 각 백만원씩 지원했다. 내가 해야할 일을 한다는 그의 꿈은 남김없이 내게 있는 것을 나누는 삶이다.  

 

현대 사회는 지식 교육은 발전했지만

인성교육, 가정교육, 삶의 모범을 통한

교육 약해져...어머니 무릎에서 들은 것

보고 배운 것 중요 그것이 진짜 참교육

 

-외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사회의 강점과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55개국을 다니고, 북한도 가 보고, 탈북민도 만나고, 평생 봉사활동을 한 박청수 교무가 바라본 대한민국은 교육 수준이 높고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른 나라라는 말로 국민, 사회에 대한 언급을 시작했다. 전쟁 이후 짧은 시간 안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했고, 국민들의 열정과 학구열도 매우 높다. 또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하는 기부 문화와 시민 의식 역시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대 사회는 지식 교육은 발전했지만, 인성교육, 가정교육, 삶의 모범을 통한 교육은 약해졌다. 어머니 무릎에서 들은 것, 보고 배운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진짜 참교육이다. 그런데 요즘 그런 참교육이 없어졌다.

 

90세의 원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지도자가 지적한 한국 사회의 보완점은 가정과 사회의 인성교육·참교육 회복 탈북민과 청소년에 대한 관심 확대 지역사회의 배타성과 님비 현상 극복 지속적인 기부·봉사 문화 확산 남북관계에서 대화와 포용의 자세 강화라고 강조한다.

 

-긴 생애에서 전환점 같은 시기 혹은 결정적 순간은 언제인가.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였다. 어린 시절부터 교무에 대한 동경이 있었지만, 실제로 평생의 길을 결정한 것은 어머니의 가르침과 권유였다. 어머니는 늘 교무의 삶을 존귀하게 여기셨고,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성장했다. 돌이켜보면 특별한 사건 하나보다 어머니의 삶과 가르침이 오랜 시간 쌓여 결정적인 영향을 준 셈이다.

 

-원불교 교무로서 중요하게 생각한 사명과 가치관은 무엇인가.

 

원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들에게 힘과 희망을 주고 함께 성장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교무 생활 동안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사람을 존중하고 돕는 일이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려 했다.

또한 어떤 사업을 하던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설립과 복지사업, 해외 지원사업 모두 교도들과 후원자들이 함께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사람들의 신뢰와 참여가 곧 나의 힘이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진정성과 실천

말만 해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을 것

자신이 먼저 행동하고 꾸준히 실천해야

사람은 진심과 실천 앞에서 마음 열어

 

- 평생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터득하게 된 사람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은 어디서 나오나.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진정성과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말만 해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 자신이 먼저 행동하고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강연을 많이 다녔는데, 청중들이 감동을 받은 이유는 내가 실제로 학교를 세우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해외 봉사활동을 계속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진심과 실천 앞에서 마음을 열었다.

 

  희말라야 라다크 마하보디 불겨기숙학교 학생들과 함께

-탈북청소년 교육과 학교 설립에 힘쓰게 된 계기와 보람, 그리고 역경은.

 

북한 평양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현실을 알았고, 국내에서 탈북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직접 접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탈북 청소년들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운명 때문에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부 장관과 통일부 장관 등의 권유도 있었지만, 기존에 학교운영 경험이 있었기에 탈북 청소년을 위한 학교 설립에 참여하게 됐다. 학교를 설립하고 이후 해외 자선활동을 하는데 홍라희 여사(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가 후원자로서 물심양면 지원을 해주었다.

 

그러나 학교를 세우는 과정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 심지어 산속에 학교를 지어도 반대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가 너무 어려웠다. 수년간 설득과 대화를 반복한 끝에 학교를 운영할 수 있었다. 고난을 겪었지만, 이후 탈북 청소년들이 좋은 시설에서 편안하게 공부하고 사회에 적응하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꼈다.

 

-기억에 남는 제자·학생·탈북청소년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기억에 남는 학생은 인도 히말라야 지역에서 만난 아진타(Ajita)라는 학생이다. 그 학생은 원불교 활동을 접한 뒤 큰 감동을 받았고, 이후 한국과 인연을 맺으며 성장했다. 결국 원불교 교무가 되었고, 현재는 인도 델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학생의 성장과정은 교육과 사랑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탈북여성이 중국에서 낳은 자녀들, 이른바 탈북 청소년들이 국적과 교육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현실에 대해 "내 생전에 했던 일 중에 가장 걱정되는 일 가운데 하나"라이다. 우리 사회는 탈북민은 물론, 아동·청소년에 대한 지원 체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수많은 기업인·정치인·후원자들과 교류하며 느낀 점이 궁금하다.

 

많은 기업인과 정치인,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만났지만, 결국 사람의 진심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꼈다.

학교를 세우고 해외 사업을 할 때도 단순히 돈을 부탁한 것이 아니라, 왜 필요한지, 어떤 일을 하려는지 진솔하게 설명했다. 그러면 많은 사람이 뜻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었다. 중요한 것은 직위나 권력이 아니라 신뢰였다.

후원과 기부는 일회성 관심보다 꾸준히 돕는 후원자나 기부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을 돕고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는 데는 지속적인 후원이 필요하다.

 

55개국 이상 방문... 인도, 유럽, 캄보디아 등

세계 곳곳을 다녀, 아프리카에서 의료지원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수술을 통해 새 삶을

얻는 모습 보며 큰 감동 받아 결심 굳히기도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받았던 감동과 깨달움이 듣고 싶다.

 

55개국 이상을 방문했다. 인도, 유럽, 캄보디아, 네팔,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을 다녔다.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의료지원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수술을 통해 새 삶을 얻는 모습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은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서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사랑과 교육, 도움을 필요로 한다.

 

-남북통일을 위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통일은 대립과 비난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북한 지도자도 결국 같은 민족이며 대화와 신뢰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과 친하게 지내며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 적대감을 키우기보다 인간적인 교류와 이해를 넓혀야 한다. 작은 신뢰가 쌓여야 통일의 기반도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과 탈북민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과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인가.

 

우리 사회는 탈북민들을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교육과 정착지원이 중요하다. 탈북 청소년과 북한 배경 아동들이 차별 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탈북민들도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배우고 노력해야 하며,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청수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

-살아온 한 평생을 평가한다면 가장 잘한 일과 가장 아쉬운 일

 

가장 잘한 일은 교육 사업과 학교를 설립한 일이다. 국내뿐 아니라 인도, 캄보디아, 히말라야 지역 등에서 모두 아홉 개의 학교설립에 참여했다. 또한 탈북 청소년 교육에도 힘썼다.

후회는 없다.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 상황 변화로 인해 더 많은 탈북 청소년을 돕지 못하게 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는 교무님은 6월 남북하나재단에 천만원을 기부했으며, 73일 탈북민 2명에게 각 백만원을 지원했다.

 

후회는 없어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갈 것이라고 순전한 미소 보이면서 강조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에 박물관이 있다. 전 생애가 기록되어 있는 박물관(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내동로 헌산중학교 교정 뒤쪽 산자락)은 박청수 교무가 세계 55개국의 무지, 빈곤,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여 봉사한 행적을 생생한 사진 등으로 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얼마 전까지 박 교무의 생활 거처였다.

박 교무는 그 자료들은 개인의 삶을 넘어 원불교와 교육, 통일운동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말했다. 살아온 한 평생을 평가한다면 가장 잘한 일은 교육 사업과 학교를 설립한 일이다. 국내뿐 아니라 인도, 캄보디아, 히말라야 지역 등에서 모두 아홉 개의 학교설립에 참여했다. 또한 탈북 청소년 교육에도 힘썼다.

후회는 없다.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갈 것이라고 순전한 미소를 보이면서 말한다. 다만 북한 상황 변화로 인해 더 많은 탈북 청소년을 돕지 못하게 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박청수 교무님의 표정이 구름에 비낀 달처럼 고고하다.

 

[박물관]   박청수 교무의 생애 연대기적으로 소개

 

박물관의 입구에는 남원 출신인 박 교무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전주여고에 진학한 뒤 195619세의 나이로 출가했던 때의 사진과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이후 원광대학교와 동국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불교철학을 연구하여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훗날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과정도 소개된다.

평생 독신 수도자로 살면서 사용했던 물건들과 국내외 순방 중 받은 기념품, 불상과 코끼리 조각상 등 해외 선물들도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 한편에는 강남교당 교무 시절의 자료들이 있다. 작은 가정집에서 시작한 교당에서 현재의 크기로 성장하는 과정, 여러 후원자와의 인연, 그리고 교단 발전에 기여한 기록들이 사진과 문서로 남아 있다. 박물관 전시물에 "박청수 교무는 강남교당 재직 시절 홍라희 여사(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친정 어머니 김윤남 여사가 독실한 원불교 신자)와 인연을 맺었으며, 홍 여사는 양재동 강남교당 건립을 위해 당시 21천만 원을 희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교무는 이를 계기로 해외 구호사업을 본격 확대했다고 회고했다."

해외 구호 활동 관련 전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인도 히말라야 라다크 지역에서는 현지 스님의 요청으로 지원을 시작했다.

해발 3,600m의 척박한 환경에서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과 열악한 의료 환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의류·신발·이불 등을 담은 6개의 컨테이너를 보냈다. 이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건립한 과정이 사진과 기록으로 전시되어 있다. 당시 현지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병원 건립 현장, 게스트하우스 운영 모습 등을 소개하고 있다.

캄보디아 전시관에는 우물과 저수지 건설, 지뢰 제거 사업, 병원과 학교 건립, 고아와 저소득층 아동 지원 활동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지뢰 피해자들과 함께한 사진, 의수·의족 지원사업 기록, 병원 운영 자료 등이 눈에 띈다.

중국 연변 지역에서는 특수학교 지원, 도서관 건립과 도서 기증 활동을 펼쳤으며, 러시아 고려인 지원사업과 관련된 자료들도 전시되어 있다. 고려인 강제이주 역사와 함께 후원 활동 기록을 소개하고 있다.

북한 지원 관련 전시도 중요한 부분이다.

1990년대부터 식량, 비료, 의약품, 생필품을 지원한 기록과 평양 방문 사진, 평양교구 활동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여성들을 위해 생리대 20만 장을 제작해 보낸 일, 간장과 생활필수품을 컨테이너 단위로 지원한 자료들이 소개되어 있다.

국내 교육사업 관련 전시도 풍부하다. 송학중학교, 헌산중학교, 한겨레중고등학교 설립 과정과 주민 반대를 극복한 과정, 탈북청소년 교육사업 관련 사진과 신문 기사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에는 대통령 표창과 각종 감사패도 다수 전시되어 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받은 표창과 종교계, 교육계, 복지기관들로부터 받은 감사패들이 남아 있다. 또한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관련 자료와 수필문학상 등 여러 수상 기록도 볼 수 있다.

한쪽 벽면에는 평생 집필한 저서들과 원고가 전시되어 있다. 수필집과 봉사활동 기록, 해외 활동기, 사진집 등이 있으며, 직접 작성한 육필 원고도 남아 있다.

해설사는 말미에 "이 많은 사진과 기록은 30여 년 동안 곁에서 활동을 도왔던 한 후원자가 꾸준히 모아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박물관은 단순한 개인 기념관이 아니라 교육, 통일, 복지, 국제구호 활동의 역사를 보여주는 아카이브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이 박물관은 '출가와 수행 교무 활동 교육사업 해외 구호사업 북한 지원 통일운동 저술 활동'으로 이어지는 박청수 교무의 삶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해설사 설명의 핵심이었다.

 

 [박청수 원불교 교무의 약력]

 

1937년 전북 남원에서 출생 (현재 89)

1945년 원불교 입교

1956년 전주여고 졸업, 열아홉 살의 나이에 원불교 교무가 되기 위해 출가(出家)

1963년 원광대 원불교학과 졸업

1969년 동국대 대학원 불교철학과 석사학위 취득

1981년 원불교 강남교당(서울시 강남구 자곡로) 초대 교무로 부임한 후 2007.1월까지 26년간 봉직한 후 정년퇴임

2003년 홍익대학교 명예철학박사 학위 받음.

9개 학교 설립

전남 영광 성지송학중학교(대안학교)

경기도 용인 헌산중학교(대안학교)

경기도 안성 한겨레중고등학교(탈북청소년 대안학교)

북인도 히말라야 설산 라다크 초중고 마하보디 불교기숙학교

중국 길림성 훈춘시 특수교육학교

캄보디아 바탐방 오인환교육센터 한글학교

2개 병원 설립

캄보디아 바탐방 무료 구제병원

히말라야 라다크 마더 박청수 카루나 종합병원(50 병상)

2009년 호암상 사회봉사상, 전 세계 55개국을 돌며 빈곤 퇴치, 교육 지원, 지뢰 제거 등 헌신적인 구호 활동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했다.

2016년 만해대상 평화대상, '한국의 마더 테레사'로 불리며 지구촌의 소외된 이웃과 평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공로로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 자격으로 수상했다.

저서를 대표작은 50여 년간 55개국을 누비며 펼친 구호·봉사·교육 활동을 정리한 자서전이자 평전인 박청수- 원불교 박청수 교무의 세상 받든 이야기 - (2015, 열화당). 그 외에도 어머니가 가르쳐준 길(2011, 한길사), 박청수, 세상 나든 이야기- 원불교 박청수 교무의 기행 수상록 - (2016, 열화당)도 읽어볼 만하다.

()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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