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포로 2명 우크라에서 구하기 위한 투쟁 멈추지 않을 것"

[인터뷰] 겨레얼통일연대 양시연 사무국장

림일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6/06/15 [16:31]

"북한군포로 2명 우크라에서 구하기 위한 투쟁 멈추지 않을 것"

[인터뷰] 겨레얼통일연대 양시연 사무국장

림일 객원기자 | 입력 : 2026/06/15 [16:31]

러시아의 일반적 침공으로 발발한 러-우전쟁은 4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참혹한 그 전쟁에 러시아의 동맹 북한이 조선인민군을 참전시켰다. 대략 2~3만 명으로 추정한다. 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에 포로가 된 러시아군은 약 수천 명(추정), 북한군은 고작 2명이다. 이는 북한이 참전군인 정신교육을 너무나 완벽하고 철저하게 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2명의 포로는 초기부터 분명히 한국으로 가겠다고 밝혔다.

3만 탈북민사회가 여기에 관심이 높다. 작년(2025) 추석에 즈음하여 우크라이나 북한군포로 2명은 확실한 한국행을 결심,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탈북민의 따뜻한 격려편지와 응원의 영상메시지 등이 우편과 SNS 등으로 공개됐다. 지난 5월 초순 우크라이나에 억류된 북한군포로 2명 문제관련 키이우 행사에 다녀온 양시연 겨레얼통일연대사무국장을 광명시 모처에서 만났다.

 

- 우크라이나 방문 목적은 무엇인가.

-우전쟁에서 포로가 된 북한군청년들의 자유의사와 인권이 국제법에 따라 보호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우크라이나 시민단체들과 이 문제를 적극 협력하기 위해서였다. 대표단은 탈북민 4명 포함해 6명이었다. 사단법인 겨레얼통일연대’(대표 장세율)1년 전부터 우크라이나 시민단체와 꾸준한 연계를 가져왔다.

 

- 현지에서 벌린 활동을 소개해 달라.

지난 55일 인천을 출발하여 폴란드 바르샤바와 프셰미실을 거쳐 국제열차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들어갔다. 서울에서 키이우까지 비행기, 열차, 대기, 환승시간 모두 포함하여 40시간, 왕복 80시간이 소요되는 그야말로 강행군노정이었다. 키이우에 도착해 국제적십자위원회 키이우사무소, 우크라이나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처우조정본부, 우크라이나의회 관계자, 현지 인권시민시회단체들을 만났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포로 2명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지 않도록 국제법절차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들은 제네바 제3협약에 따라 전쟁포로로 보호받아야 한다. 동시에 북한으로 돌아갈 경우 박해, 고문, 처형위험이 있다면 국제법상 비()강제송환 원칙도 적용돼야 한다. 포로본인의 자유의사를 국제기구에 전달하고 공식기록으로 남기는 절차다.

 

- 크게 애로가 되는 점은 없었는가.

처음 우리들의 북한군포로 2명 자유송환을 위한 국제사회 인권운동에 우크라이나 시민단체는 몹시 의아해했다. 자기네 입장에서 보면 북한은 침략국인데, 그리고 키이우에 떨어진 미사일 3발 중 1발은 북한제다. 그런 범죄나라의 포로들을 두둔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포로문제에 관해 냉정하게 북한정권과 인민을 분리해서 보라는 조언을 계속했다.

 

북한군포로 2명 자유송환을 우크라이나

시민단체는 이해 못해...자기네 입장에서

북한은 침략국 키이우에 떨어진 미사일

3발 중 1발은 북한제.... 그런 범죄나라의

포로를 두둔하는 것을 모르겠다는 표정들

 

포로문제 관해 냉정하게 북정권과 인민을

분리해서 보라는 조언을 끊임없이 설득해

 

- 어떻게 응했는가.

아무래도 끈질긴 노력의 덕분이라고 본다. 우리단체 책임자 겸 북한군자유송환비상대책위원회사무총장인 장세율 대표가 정말이지 애를 많이 썼다. 국제법률 공부를 독학으로 하며 국제적십자사 제출서류, 우크라이나 당국 제출자료 등을 준비하느라 몇 달간 하루도 쉬지 않고 행사준비에 철저한 만전을 기해왔던 것이다.

그에 대해 자세하게 얘기하면 처음에는 아주 복잡하고 난감했다. 우크라이나 시민단체는 러시아의 침략전쟁 범죄에 대한 조사협력은 다소 가능하지만 북한군포로의 인권문제에는 곤란한 모습을 보였다.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환경을 바꿔보면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김정은이 포악한 전범자이고 분명한 적이 아닌가. 그래서 장세율 대표가 전쟁범죄와 인권범죄가 동시에 해결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 강조했던 것이다.

 

- 키이우에서 체험한 느낌은.

현지 시민사회는 평온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전쟁으로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럼에도 많은 시민들은 북한군포로 청년들의 자유와 생명문제를 함께 고민해주었다. 우리는 그 모습에서 전쟁의 공포와 증오보다 인간의 존엄과 평범한 일상을 먼저 선택하려는 우크라이나 시민사회의 저력을 엿보았다.

 

- 또 다른 감정이 있었다면.

현재 2년째 고달프게 우크라이나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는 북한군포로 청년 2명이다. 그들이 말했듯이 만에 하나 북한으로 송환되면 죽어야하는 운명이다. 하여 2명의 포로가 온 넋을 바쳐 몸부림치며 가고파하는 대한민국이다. 우리 34천 탈북민들이 자유로운 일상을 보내는 서울로 말이다. 고마운 대한민국 정부에 항상 감사의 마음을 한 순간도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 전쟁으로 가족과 삶의

터전 잃어...그럼에도 시민들은 북한군포로

청년들의 자유와 생명문제 함께 고민해줘

그 모습에서 전쟁 공포와 증오보다 인간의

존엄과 일상 선택하는 시민사회 저력 느껴

 

- ‘겨레얼통일연대는 어떤 단체인가.

지난 201111월 통일부 북한인권과 소속으로 등록된 사단법인체이다. 북한민주화 및 인권개선을 목표로 취약 탈북민 사회정착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겨레얼통일연대는 올바른 대북관 및 통일정책수립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통일을 앞당기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 언제부터 여기서 활동을 했나.

한국에 와서부터이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대표가 살아있을 때, 어느 해인가 서울에서 북한자유주간행사가 있었다. 미국에 있는 지인의 소개로 이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 처음 장세율 겨레얼통일연대대표를 알게 되었다. 장 대표가 손을 내밀며 고향의 우리 인민들을 위해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했고 주저 없이 동의했다. 처음에 청년부장 직함을 받고 활동했고 사무국장은 3년 전부터 맡았다.

 

- 그동안 어떤 일을 하였는가.

우선 북한자유민주화투쟁 희생자추모식이 있다. 2017년부터 매해 격년으로 서울과 워싱턴에서 열리는 국제인권행사인 북한자유주간에 맞춰 진행되고 있다. 2019년 탈북모자 아사 규탄 전국탈북민성토대회, 2022년 탈북어부 강제북송을 단행한 문재인 정부성토 등 탈북민사회 굵직한 행사에는 항상 우리단체가 있었다.

 

- 가장 인상적인 행사는.

작년 10월에 있은 ‘2025 서울북한인권세계대회일환으로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침묵집회였다. 이날 겨레얼통일연대 임·회원 100여명은 북한에서 정치(사상)범으로 죽임을 당한 피해자 124명의 사진을 들고 시내거리로 행진했다. 서울시청을 떠나 광화문정부청사 앞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북한감옥사망자 124명의 이름을 한 명씩 불렀다. 북한인권을 외면하는 규탄성명서를 통일부 관계자에게 제출했다.

 

‘2025 서울북한인권세계대회일환으로

서울시청 광장서 열린 침묵집회 기억해

겨레얼통일연대 임·회원 100명은 북한서

정치범으로 죽임을 당한 피해자 124명의

사진을 들고 시내거리로 행진...서울시청

광화문정부청사 앞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감옥사망자 124명의 이름 한 명씩 소환

 

- 고향이 어디인가.

1984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림업건설사업소 초급당비서였고 모친은 부양(주부)이었다. 형제는 여동생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재직 중인 사업소에 기계운전공으로 배치를 받았다. 참고로 북한의 1급 기업소, 공장 안에는 일용품직장이 있는데 그것은 100% 군수품 관련 일터이다.

 

  양시연 겨레얼통일연대 사무국장

-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고등학교 졸업 연도에 친구 셋이서 몰래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갔다. 그게 인신매매의 덫인 줄 몰랐다. 두 명은 그걸 알면서도 중국 내륙 쪽으로 들어갔고 나는 아니다! 그럴 수 없다!’며 거절했다. 결국은 중국공안에 단속이 되어 북송되어 왔다. 무산군 보위부와 안전부에서 2주간 조사를 받고 군() 청년동맹 사상투쟁무대까지 올라가 대중의 강한 비판을 받았다.

 

- 그 정도면 경한 처벌이 아닌가.

아버지가 당일군이어서 관대하게 용서를 받았다. 보위원, 안전원들이 조사과정에 너희 아버지는 법 없이도 노동당에 충실하며 사는 분인데 딸년은 왜 이 모양이냐?” 하며 나를 꾸짖었다. 또한 미성년자이었고. 그때 중국에 갔다가 북송되어 온 어른들을 봤는데 모두 노동단련대에서 최소 수개월간 강제노동을 하였다.

 

- 탈북 동기는 무엇인가.

처녀시절 직장생활을 하면서 남몰래 알판(CD)을 구입하여 그 속에 있는 한국의 영화, 드라마 등에 중독이 될 정도로 보았다. 물론 청년동맹 조직에서 엄격히 경고 단속하지만 그 맛에 빠지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한국영화 파리의 연인남주인공 배우인 박신양이 그렇게 멋있게 보였다. 한국에 가면 한국영화는 마음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2007년도에 탈북했다.

 

- 중국에서의 생활은 어떠하였나.

북한에 비해서는 천국이 분명했다. 우선 내가 보고 싶었던 한국의 모든 영상물은 아무런 제한 없이 실컷 접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한국이 중국보다 더 잘살고 심지어 중국 사람들도 부러워하는 나라임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나는 탈북자다. 언젠가 공안에 단속되어 당장 북송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처녀시절 직장생활 하면서 알판(CD)을 구입

한국 영화, 드라마에 중독 될 정도로 보기도

청년동맹 조직에서 엄격히 경고 단속하지만

그 맛에 빠지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쉽지 않아

 

영화 파리의 연인남주인공 배우 박신양이

너무 멋있게 보여... 탈북하면 한국영화는

마음껏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 갖고 탈북

 

- 언제 한국으로 왔는가.

그동안 중국에서 회사 일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충분한 브로커비용을 선불로 지불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동료 2명과 의기투합하여 탈중 시도에 도전했다. 만약 공안에 단속이 되면 북송까지 각오해야 한다. 어렵사리 중국국경을 넘어 라오스 주재 한국대사관으로 들어갔다. 201112월이었고 서울로 안전하게 왔다. 이듬해 3월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을 수료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 사회생활 초기 어떻게 보냈나.

기업은행 영업마케팅센터서 1년간 일했고 이후 주식회사 인칸금융서비스 성남·분당 서현지점에서 보험 업무를 맡아했다. 그리고 2016년부터 8년간 국민은행 대출전문 상담사로 성실히 근무했다. 10년간 금융·보험업계에서 나름 열심히 일을 해왔다. 훗날 알았는데 동료들이 내가 탈북민인 줄 전혀 몰랐다고 한다.

 

-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경기도 광명시 모처에서 무인카페(가게)3년째 운영하고 있다. 가게이름 그대로 사람이 없이 커피숍을 운영하는 것이다. 실내에는 카드결제기, 커피기계, 냉온수기 등의 설비가 완벽히 갖춰져 있다. 무엇보다 아담하고 넉넉한 공간에 의자 테이블 등이 20여개 있다. 고객이 들어와 결제하고 커피를 선택해서 뽑고 자리에 앉아 마시면 된다. 공부하는 학생, 자취생 등이 일반고객보다 더 많이 차지한다.

 

- 꼭 하고픈 말은 무엇인가.

우리 탈북민들이 남한에 기여하는 점은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누리는 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우리의 모습과 외침을 들으며 조금이나마 생각하시기를 바란다. 현재 우크라이나에 있는 북한군포로 2명은 분명 탈북민이고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들에게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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