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 역사적 남북합의서 채택 가장 보람찬 일로 꼽아[기획] 57년 통일부 역사...수장들의 발자취를 보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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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중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 |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 12월 27일, 부총리급으로 격상된 통일원장관 자리에 최호중 전 외무부장관이 취임했다.
당시 통일원은 새로운 질서를 규정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소관하며, 민간교류와 대북사업을 활성화하는 등 과거의 조사, 연구중심기관에서 벗어나 역대 어느 때보다 강력한 부처로 활기를 띠었다.
최 부총리 역시 독일통일을 이끈 동서독 기본조약과 같은 조약으로 남북을 연결, 미래 제도적 통일의 길을 열겠다는 포부를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남북관계 역사적 대전환...평화의 황금기
그의 재임 기간은 남북관계의 역사적 대전환기이자 황금기였다. 1991년 9월 우리나라의 희망대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아 남북한 UN 동시가입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오늘날까지 남북관계의 준거가 되는 '남북기본합의서'를 타결하고 이듬해 최종 발효시키는 결실을 보았다.
또한 미국의 냉전해체에 힘입어 북한과의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했고 한미 공조로 팀스피리트 군사훈련을 중단하면서까지 북한의 IAEA핵사찰 수용을 유도했다.
최 부총리는 이즈음 방송에 출연해 북한의 근본적인 정책 변화를 끌어냈다며 통일을 향한 자신감을 강하게 피력하기도 했다.
북한의 미·일 수교 실패와 '경량급 부총리' 한계
그러나 평화의 온기 뒤에는 북방정책의 통일여건조성 한계와 북한의 핵집착, 남북한 교차승인 좌절이라는 어려움, 정부 내 통일원이 가지는 부처로서의 힘과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1991년에 7.7 선언 3주년이 됐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대한민국이 소련, 중국과 수교한 만큼 북한도 미·일과 수교하도록 도왔으나, 여의치 않았다.
북한이 미국,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하기 위한 노력,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림없었다. 북한은 미, 일을 너무 몰랐다. 폐쇄국가로서 서방선진국을 너무 얕잡아 봤다.
김일성은 1990년에 미국을 향한 제스처로 주한미군을 점진적으로 철수해도 된다는 말을 했다.
5월 28일에는 휴전 이후 처음으로 판문점에서 미군 유해 5구를 돌려보내며 관계개선을 희망했지만, 미국의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근본적인 대량살상무기 제한 문제에 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개발에 매달렸다. 그 사실을 당시 대한민국을 포함해 모든 나라와 IAEA에 숨겼지만, 현재 보면, 그 당시 사찰을 받겠다고 할 때조차 핵개발을 했음이 드러났다. 결국 미·북 관계는 대량살상무기 금지정책과 충돌해 멈춰 선 것이다.
북·일 수교 교섭 역시 일본으로부터 거액의 보상금을 받아낼 생각만 앞섰지, 준비 없이 나섰다가 식민지 배상은커녕 일본인 납치 의혹의 혹을 달고, 북핵 문제까지 겹치며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 결과, 외무부 장관일 때 북방정책을 성공시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최 부총리는 통일원에서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남북관계 업무가 처음이었던 데다, 북측 대표보다 직급이 높다는 이유로 정작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명단에서 제외되는 아이러니를 겪었다. 전임 홍성철 장관은 회담 대표였다. 부처 간 조율과 홍보에 만족해야 했던 그는 언론으로부터 '청와대에 밀린 경량급 부총리'라는 뼈아픈 세평을 들어야 했다.
![]() 최호중 장관, 1990년 유엔본부에서 한, 소 수교합의서에 서명. |
씁쓸한 소회 뒤에 남은 역사적 이정표
1992년 6월 25일, 최 부총리는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성격상 부처의 위상을 두고 잡음을 내지 않았던 그는 퇴임 후 "전(前)부총리보다는 전(前)외무부장관으로 불리는 것이 더 좋다"는 씁쓸한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비록 남북회담의 전면에 나서며 힘 있는 부총리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는 퇴임인사에서 한소 수교의 발판 마련과 역사적인 남북합의서 채택을 공직생활 중 가장 보람찬 일로 꼽았다.
격동의 시기, 냉전의 벽을 허물고 남북화해의 제도적 기틀을 다진 그의 발자취는 대한민국 외교·통일사에 뚜렷한 이정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인물 약력]
1930년 서울에서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외무부 국제경제국장, 통상국장, 주유엔 유럽사무소 및 제네바대표부 공사, 말레이시아 대사, 벨기에 대사
1984년 전두환 정부 상공부 차관, 사우디아라비아 대사
1988-90년 노태우 정부 외무부장관, 헝가리 정부와 수교, 소련 외무부 장관과 한소 수교 공동성명서에 서명, 재임 중 18개국과 수교.
1990년부터 통일원장관을 하면서 유엔동시가입, 남북고위급회담 기본합의서 체결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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