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주민들의 비참한 인권은 탈북민들에 의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졌지만 중국 내 탈북여성들의 실태는 베일에 쌓여있다. 중국과 북한은 똑같은 독재국가체제로 자국의 위상에 저해가 되는 폭로행위를 용서하지 않는다. 탈북여성들은 중국에서 호구(주민등록증)가 없으니 그야말로 성노리개, 노예나 다름없으며 인간으로써의 존엄이 없다. 그러니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 그 위험한 한국행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경기도 하남시에서 주수연 ‘자유의 빛’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자유의 빛’을 소개해 준다면. 중국과 제3국 내 탈북민 구출을 전문하는 비영리단체로 지난 2023년에 설립되었다. 회원 50여명이다. 탈북자문제에 중국정부는 관심이 없다. 북한도 방치하는 수준. 그야말로 버려진 사람들인데 그들과 구출방법을 잘 아는 탈북민이다. 위험하지만 소중한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니 꼭 해보자는 마음에서 단체를 만들었다.
- 중국 내 탈북자들의 실태를 말해 달라. 코로나 이후 중국에 숨어사는 탈북여성들은 전부 공안(경찰)에 신상정보가 자세히 등록되었다. 탈북여성이 중국에서 결혼(혹은 동거)을 해서 아이를 낳고 살면 굳이 강제로 북송시키지 않는다. 공안은 한 달에 2~4회 가량 주기적으로 탈북자가정을 임의로 방문하여 동태를 파악한다. 대부분 중국남편 명의로 된 휴대폰을 갖고 있는 탈북여성들의 위치정보를 공안에서 24시간 파악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보면 된다.
- 그러면 탈출은 불가능 한가. 탈북여성이 중국에서 탈출하려면 평소에 쓰던 전화를 집에 두고 움직여야 한다. 안 그러면 동선이 노출되어 공안이 출동하고 체포될 위험성이 있다. 다행히 공안은 탈북자가 자기 불법거주 지역 시, 성 단위를 벗어나면 방치하기도 한다. 어쨌든 중국 내 이동 중에라도 불행하게도 공안에 단속이 되면 거의 북송되는 현실이다.
중국에 숨어사는 탈북여성들은 전부 공안에 신상정보 자세히 등록...여성이 중국에서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살면 강제로 북송시키지 않아...공안은 한 달 2~4회 가량 주기적으로 탈북자가정을 임의로 방문해 동태를 파악하고 있어
- 중국 내 탈북여성 인신매매 실태는. 탈북여성들은 대부분 중국의 농촌에서 장가를 못간 50~60대 노총각들에게 또한 장애인에게 팔려간다. 보통 20대 여성은 최고 중국화폐 15만 위안, 30~40대 여성은 10만 위안, 50~60대 여성은 5만 위안 정도에 팔린다. 60대 이상의 여성들은 단돈 1천 위안에도 팔려간다. 그래도 북송은 안 되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것도 천만다행이다. 탈북남성들은 100% 단속, 북송된다고 보면 맞다.
-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준다면. 1990년대 중후반, 중국으로 넘어간 탈북여성들은 대략 4~6만 여명으로 추정한다. 이들 중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다 키우고 성인이 된 후 그제야 자기 삶을 고민한다. 나이가 50대로 접어드니 여기 저기 몸이 아픈 곳도 많아진다. 그런데 호구가 없으니 아무런 의료혜택을 못 받으니 어쩔 수 없이 한국행에 오르기도 한다.
- 자신을 소개해 달라. 함경북도 청진서 1979년에 태어났고 12살부터 온성에서 살았다. 형제는 3남매의 막내. 부친은 철도보안원(경찰), 모친은 주부였다. 199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온성군체신소 산하 교환수로 2004년까지 재직했다. 대체로 체신소는 여자집단(직원 과반이 여자)의 직장이다. 지난 1996년 부친이 사망하면서 동시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였으며 우리 집안은 그때부터 고난에 찬 생활을 시작했다.
1990년대 중후반, 중국으로 넘어간 탈북여성들은 4~6만 여명으로 추정
중국서 한국으로 데리고온 탈북민은 코로나 이전 2,500명, 이후에는 500명 그중에 60%가 10대에서 40대 여성들
- 탈북은 언제 하였나. 지난 2006년 5월 단신으로 두만강을 건넜다. 예전에 언니가 먼저 탈북시도 했으나 실패했고 북송되어 소식이 끊기었다. 중국 연길에 은신했고 한국으로 가려고 애를 썼다. 운명의 장난인지 언니와 유사하게 6개월 만에 공안에 체포, 도문-온성을 거쳐 북송되었다. 관리소는 안 갔고 노동단련대 6개월 형량을 받았다.
- 언제 다시 탈북을 하였는가. 자유세상의 진미를 아는 사람은 그 맛을 절대 잊지 못한다. 2009년 10월 중순 할머니, 딸, 손녀 등 5명의 어느 가족이 탈북준비를 한다는 정보를 알았다. 그들에게 국경을 안전하게 넘는 방법을 대주겠다며 동행했다. 브로커 비용은 중국 연길에 가서 물어주기로 했고 국경을 넘자마다 브로커와 만나 즉시 이동 길에 올랐다. 연길, 할빈, 라오스, 태국을 거쳤다. 그해 12월 드디어 대한민국으로 오게 되었다.
- 사회생활 초기 어떻게 보냈나. 2010년 5월 하나원을 수료하고 사회로 나왔다. 고향의 오빠와 어머니에게 돈을 보내자니 일부터 시작했다. 가구포장회사에 취업해 6개월간 일하고 식당서빙을 1년간 했다. 이후 버스운송회사 경리직원으로 취업해 5년간 근무했다. 그 와중에 결혼을 했고 아들만 둘을 낳았고 4식구가 재밌게 살아가고 있다.
- 탈북민 구출사업에 긍지가 있다면. 지금껏 알게 모르게 중국에서 한국으로 데려온 탈북민은 코로나 이전에는 2,500명, 이후 500명 모두 3,000명 정도이다. 그중 탈북여성 중 60%가 10대에서 40대 여성이다. 즉 결혼(재혼)해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여성들이다. 실제로 또 그렇게 하고 있다. 요즘 같은 저 출산시대에 결혼해서 아기를 1~2 낳으면 이것도 애국이 아닌가. 나는 분명 애국이라고 생각한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코로나 이후 비용이 3~4배 심지어 10배까지 올랐다. 그렇다고 그들을 구출하는 일은 멈출 수 없다. 나라가 지원을 못해주면 종교단체나 국민들이 나서서 구출해야 한다. 그 당위성 전파를 올해부터 다방면적으로 많이 하려고 한다.
<저작권자 ⓒ 통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