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북한인권결의안서 ‘공급망 인권실사’ 삭제
시민단체 “북 강제노동 생산품 유통 차단위한 국제협력체계 약화”
중국은 해당 결의안에 대한 합의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입장 밝혀
강유미 기자 | 입력 : 2026/04/02 [12:19]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오랜 기간 추적·제기해 온 북한 강제노동 문제와 관련해 유엔 결의안에서 핵심조항이 삭제되며 국제사회의 대응 체계가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026년 3월 30일 유엔 인권이사회 제61차 회기에서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안 초안에는 각국 정부가 자국 관할 기업에 대해 인권 실사를 수행하도록 장려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북한 교화소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이 유통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핵심장치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최종 채택과정에서 해당 조항이 삭제됐다. 중국의 구두개입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정된 결의안에서는 ‘인권실사’ 개념 자체뿐 아니라 이를 요구하는 주체로서의 ‘국가’ 책임도 함께 빠졌다. 이후 중국은 해당 결의안에 대한 합의에도 동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결의안의 책임구조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그 책임으로부터도 거리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북한인권시민연합은 31일 공식 보도 자료를 통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 단체는 북한 구금시설 기반 강제노동과 국제 공급망 간의 연계를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조사해 온 대표적 인권단체다. 특히 2025년 말 제네바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유럽연합(EU)과 각국 정부 대표단을 상대로 기업과 수입업체, 전자상거래 기업 등 글로벌 공급망 참여자들이 북한산 강제노동 제품의 유입 위험을 식별·대응할 수 있도록 각국 정부가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 이행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단체 측은 북한의 강제노동이 단순한 인권침해를 넘어 핵·미사일 개발 자금 조달과 직결된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북한의 구금시설에서 생산된 제품은 중국 등을 경유해 국제 시장으로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국가는 물류·가공·재수출의 연결 고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연구조사 보고서 「메이드 인 차이나: 글로벌 공급망이 어떻게 북한 교화소의 노예제를 부추기는가」에 따르면, 북한의 강제노동 생산 체계는 해외 공급망과 결합해 외화 획득 구조의 핵심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가발과 속눈썹 등 경공업 제품 생산에는 여성 수감자들이 주요 노동력으로 동원되며, 이들은 반인도 범죄 수준의 인권 침해에 노출돼 있다. 또한 중국 내에서 체포된 탈북 여성들이 강제 송환돼 이러한 노동력으로 편입되는 사례도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일부 중국 기업들은 북한과의 합작 및 하청 구조를 통해 저비용 생산이익을 얻는 동시에, 구금시설에 원자재를 공급하고 완제품을 ‘중국산’으로 둔갑시켜 국제시장에 유통시키는 방식으로 관여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를 차단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지목되는 것이 ‘공급망 인권실사’다. 기업이 생산·유통 전 과정에서 인권 침해 가능성을 점검하고 대응하도록 하는 이 제도는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규범이다. 그러나 이번 결의안에서 관련 조항이 삭제되면서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명문화하려는 시도가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요안나 호사냑 북한인권시민연합 부국장은 “소비자들은 자신이 구매하는 상품이 노예제를 비롯한 다른 인간의 고통과 연관되어 있는지 알 권리가 있다”며 “각국 정부와 기업은 공급망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인권 실사를 충실히 이행해 북한 교화소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국제시장 유입위험을 식별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의안 수정이 단순한 문구 삭제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인권 책임을 둘러싼 국제규범경쟁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동시에 시민사회가 장기간 축적해 온 조사와 애드보커시가 향후 국제규범 재정립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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