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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직업을 당국이 지정(배치)해준다. 자기 적성에 맞든 안 맞든 받아야 한다. 사직과 이직은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가능하고 개인적 사유는 불허된다. 당국이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아주 기묘한 노동행정 정책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미개한 사회 북한과 달리 한국은 개인이 취향대로 직업을 선택하고 취업 또한 창업을 할 수 있다. 본인의 능력에 따라 충분한 보상을 얻는 사회이다. 경기도 소재 주식회사 K·J 카공방 권효진 대표이사를 만났다.
- K·J 카공방은어떤 회사인가. 처음 일했던 캠핑카 제작업체는 1년 만에 내부 사정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결국은 그 공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후 찾은 직장은 수도권에 있는 캠핑카 제작업체 ‘캠핑대장 팔라스’다. 여기서 몇 년간 일을 했고 이후 올해 1월 21일 직접 설립한 캥핑카 제조전문 회사다. 직원은 2명, 경기도 광주에 있다.
캠핑카 제작 6년...이 분야서 눈 감고 척 한국서 승용차 ‘모닝’ 캠핑카로 만들어 이 업계에서 이 기록 정말 쉽지 않을 것 소·중형, 버스 등 개조한 캠핑카 500 대
- 몇 년 째 이일을 하는가.캠핑카 제작만 6년째이다. 이제는 이 분야서 만큼은 눈 감고 척이다. 한국에서 제일 작은 승용차 ‘모닝’을 캠핑카로 만든 사람이다. 이 업계에서 이런 기록은 정말이지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껏 내가 개조한 캠핑카는 500여 대이다. 소형, 중형RV승용차, ‘스타렉스’ 등 레저용 버스까지 있다. - 캠핑카는 어떤 차인가.쉽게 말하면 운전석과 조수석은 그대로 놔두고 나머지 2열(큰 차는 3열까지)을 뜯어내고 구조변경을 하는 것이다. 2열과 짐칸 자리에 나무로 바닥을 깔고 벽에 수납공간을 만든다. 독일제 밧데리가 들어가 무시동 히터, 에어컨을 켤 수 있다. 식탁, 미니냉장고, 소형주방 등이 설치되기에 여행지에서 숙소를 대신하는 것이다.
- 제작비용은 어느 정도인가. 적게는 90만 원대이고 보통은 200~400만원 아주 고급스럽게 하려면 수천 만 원 대도 가능하다. 캠핑카 내부 시설(나무 및 플라스틱)을 어떤 것으로 사용하는가에 따라 가격이 또 달라진다. 제작 기간은 짧으면 하루, 길면 4일 이상도 걸린다. 요즘은 은퇴자들이 부부끼리 여행을 즐기려는 목적으로 많이 제작주문 하고 있다.
제작비용은 적게는 90만 원대이고 보통은 200~400만원 아주 고급스럽게 하려면 수천 만 원 대도 가능...캠핑카 내부 시설을 어떤 것으로 사용하는가에 따라 가격 달라져...제작기간 4일 정도
- 자신을 소개해 달라. 1961년 함북 청진에서 태어났다. 제대군관(예비역 장교) 출신인 아버지는 청진제강연합기업소 자재과장을 수십 년 했고 퇴직하였다. 어머니는 청진시 신암구역 편의봉사관리위원회에서 일했다. 1978년 봄,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민군대 입대하여 무력부 총참모부 820훈련소(사리원 주둔) 탱크지도국에서 군사복무 했다.
- 언제 제대하였는가. 1988년 만기 복무한 인민군대 제대 후 추천받아 입학해 다닌 함경북도 ‘경성도자기단과대학’(4년제)을 졸업하고 제2금속건설연합기업소 당위원회 기관지 ‘전방척후대’ 신문주필로 배치 받았다. 참고로 북한에는 노동당원 600명 이상이 있는 1급 기업소와 연합기업소 등에는 기관지가 있다. 주필은 당지도원을 겸한다. 지인의 소개로 도(道)예술단 무대미술가 자리로 직무를 옮겼다. 원칙대로라면 기관장의 승인을 받고 해야 했으나 그러지 아니했다. 결국 당위원회에 맞선 것으로 되었고, 이후 나진으로 가서 합법적으로 기관(군부대)소속 장사를 했다. 누군가의 신고로 안전부체포 영장이 발급되었고 결국 재판을 받고 전거리교화소에 갔다.
- 교화소 안의 풍경을말해 달라. 대략 1200여 명의 수감자가 상시적으로 있었다. 죽거나 석방으로 줄어든 숫자만큼 새 수감자가 계속 들어왔다. 하루 평균 6~8명이 아사, 병사, 구타 등으로 죽었다. 겨울에는 이보다 더 많은 수감자들이 죽는다. 사망된 수감자는 화장하여 재가루가 되면 주변에 버리거나 혹은 교화소 구내에 있는 오물장에 버려진다.
조만간 ‘두만강캠핑카모임’ 만들 계획 남한에 와서 여러 분야서 열심히 일해 여유 갖고 탈북민끼리 만드는 친목모임 통일 오면 캠핑카 몰고 고향으로 갈 것
- 탈북동기와 경로를 말해 달라. 교화소 생활 8년간 복역하면서 몇몇 기도자(탈북 후 중국서 남한으로 가려다가 실패하여 잡혀온 사람들)의 증언을 몰래 들으며 남조선에 대한 동경을 품었다. 내가 군사복무 10년, 대학생활 4년, 노동당에 충성한 지난날이 모두 허사임을 알았다. 출소 후 1년 뒤 두만강을 건너 중국, 태국을 거쳐 2009년 3월 한국으로 왔다.
-남한에서 사회생활 초기 어떻게 보냈나. 수산물시장에서 일도 해봤고 이삿짐센터에서도 해봤다. 그러다가 내가 무엇을 가장 잘할지 곰곰이 고민을 해봤다. 문득 북한에서 단과대 공예미술과를 다니면서 목공일도 해본 경험을 활용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손재주로 하는 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여러 곳을 알아보다 취직한 곳이 경남의 OO가구공장이었다.
- 지금은 다른 일이 아닌가.완전히 다르지는 않고 어느 정도 유사하다. 캠핑카 안에는 나무로 인테리어를 한다. 2년 만에 가구공장 일을 그만두고 전문 캠핑카 제조업체로 와서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캠핑카 수요가 많아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2년간 가구공장에서 일한 경력이 그래도 다소 인정이 되어 취직하게 되었다.
-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만간 ‘두만강캠핑카모임’을 만들 계획이다. 남한에 와서 여러 분야에서 열심히 일해 나름 여유를 갖고 사는 탈북민들끼리 만드는 친목모임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되는 통일이 오면 캠핑카를 몰고 고향으로 가겠다. 가서 우리는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자유에 대한 감사함을 갖고 열심히 살았다고 전하겠다. <저작권자 ⓒ 통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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