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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이나 음식점은 ‘레스토랑’이나 ‘푸드 코트’로 변해야 고급스러워지는 모양이다. ‘테이블’에 자리 잡아, ‘메뉴’를 보고 ‘오더’한다. ‘사이드 메뉴’를 덧붙이기도 한다. ‘브런치’나 ‘런치 스페셜’ 또는 ‘디너’를 먹고 ‘디저트’를 즐긴다. 국물이 튀길까봐 ‘에이프런’을 두르고 먹기도 한다. 식당 일손이 달리니 물이나 추가 반찬은 ‘셀프’ 봉사가 흔하다.
찻집이나 다방 또는 빵집이 사라진 자리에 ‘커피숍’이나 ‘카페’ 또는 ‘베이커리’가 들어서 ‘커피’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드링크’를 팔고 ‘브레드’와 ‘케이크’ 등 ‘스낵’도 취급한다. 식당이나 ‘카페’의 ‘테이블’을 차지하지 않고 ‘테이크 아웃’을 택하면 값이 ‘디스카운트’ 된다.
‘카운터’에서 ‘캐시어’에게 ‘카드’로 계산한다. 음식이 ‘푸드’로 바뀌니 해산물은 ‘씨푸드’가 되는데, 내가 사는 농촌엔 제대로 발음하기 어려운 ‘로컬 푸드’가 유행이다. ‘토속 음식’이나 ‘지역 음식’이라고 하면 영어에 친숙하지 않을 농부들이 말하거나 알아듣기 쉽고, 시골의 정겨움이 담길 것 같은데 말이다.
집은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단독주택은 ‘하우스’로, 연립주택은 ‘빌라’나 ‘멘션’으로, 공동주택은 ‘아파트’로 변신한 지 오래됐다. 도시에서든 농어촌에서든 아파트 이름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기다란 외래어로 표기돼 있다.
어디 유학생이 장학금 신청하면서 주소에 무슨 ‘castle’이라고 썼더니 ‘캐슬(성·저택)’에 사는 사람도 장학금을 신청하느냐고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건물은 ‘빌딩’이라야 하고, 이름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으로 붙여야 제격인 듯하다.
농촌엔 발음하기 어려운 ‘로컬 푸드’가 유행 ‘토속음식’이나 ‘지역 음식’이라고 하면 영어에 친숙하지 않은 농부들 말하거나 알아듣기 쉽고 시골의 정겨움이 담길 것 같은데 말이다
방 앞엔 무슨 ‘홀’이나 ‘룸’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건물 안에 변소나 화장실은 사라지고, ‘레스트룸’이나 ‘Toilet’ 또는 외국에서도 거의 쓰지 않는 ‘W.C’가 보인다. ‘레이디’나 ‘젠틀맨’이라고 써놓기도 한다.
객지에서 숙소를 잡으려면 여관이나 여인숙은 보이지 않고, ‘모텔’이나 ‘호텔’ 또는 ‘호스텔’, ‘게스트하우스’, ‘펜션’, ‘리조트,’ ‘리조텔’, ‘콘도’ 등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집 전화기를 없애고 ‘핸드폰’이나 ‘스마트폰’을 마련하면, ‘KT’나 ‘SKT’ 또는 ‘LGU’ 같은 통신사에 가입해야 한다. 은행 계좌가 있어야 하는데,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IBK기업은행, KDB산업은행 등 영어글자를 붙인 은행이 대부분이다. 요즘 뜨는 ‘인터넷 뱅크’엔 ‘카카오뱅크’, ‘토스뱅크’, ‘케이뱅크’ 등엔 아예 은행이란 말이 빠져있다.
난 역마살이 끼었느냐는 핀잔을 들을 만큼 여행을 즐기는데, 이동 수단 중 ‘브랜드’나 이름이 우리말로 된 자동차가 있는지 궁금하다. ‘럭셔리’든, ‘프리미엄’이든, ‘제네시스’, ‘그랜저’, ‘아반떼’, ‘싼타페’, ‘소렌토’ 등 자동차 이름의 뜻을 알고 운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차에 오르면 ‘핸들’을 붙잡고 ‘빽밀러’와 ‘싸이드미러’를 번갈아 보며 도로에 조그만 ‘포트홀’은 물론 커다란 ‘싱크홀’이 있는지 살피는 게 좋다. 요즘 고라니가 민가에 많이 내려오니 밤에 운전할 때는 ‘로드킬’을 조심해야 한다. 행인에게나 앞차를 상대로 ‘하이빔’을 번쩍거리거나 ‘크락션(클랙슨)’을 빵빵 울리는 무례한 운전자들이 적지 않다.
내가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여행하며 즐겨 찾는 곳 가운데 하나가 식물원이다. 꽃을 몹시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도 정원이나 공원 대신 ‘가든’이나 ‘파크’라는 말을 많이 쓴다. 2022년 6월 윤석열이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 용산에 공원을 만들겠다며 이름을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라고 하면 멋있을 거라고 얘기했듯이 말이다. 중앙공원은 밋밋하고 ‘센트럴 파크’는 그럴싸한 느낌이 들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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