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 방문에 관한 합의서 채택

57년 통일부 역사...수장들의 발자취를 보다 ⑪
12대 국토통일원 박동진(朴東鎭)장관

윤현중 기자 | 기사입력 2026/02/03 [15:44]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 방문에 관한 합의서 채택

57년 통일부 역사...수장들의 발자취를 보다 ⑪
12대 국토통일원 박동진(朴東鎭)장관

윤현중 기자 | 입력 : 2026/02/03 [15:44]

198581일부터 1986826일까지 약 1년간 통일원장관을 했지만, 그 전에 이미 박정희 정부의 최장수 외무부장관을 역임한 뒤였다. 그의 통일원에서의 남북관계 일은 외교와 달랐다. 이질적인 북한을 상대하는 일이라 기여가 클 수 없었다.

 박동진 전 통일원장관

1985826, 이영덕 수석대표를 포함한 84명의 남측 대표단이 제9차 남북적십자회담을 위해 서울 대한적십자사를 출발하여 판문점을 거쳐 평양으로 향했다. 막 부임한 박동진 통일원장관은 김상협 한적 총재, 민관식 남북조절위원장, 조영식 일천만이산가족재회 추진위원장과 함께 대한적십자 성문에서 영송을 했다. 대표단의 평양 방문은 12년만이었다.

 

1973년 이후 12년 만에 재개된 제9차 남북적십자 본회담(1985826~29)결과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 방문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했다. 적십자회담 기간인 828일 박동진 국토통일원 장관은 IBS(국제방송협회)국제 심포지엄에 참가 중인 국내외 방송인 및 학자들을 위해 롯데호텔에서 베푼 오찬 연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산가족 고향방문 계기로 남북 간

불신의 벽을 허물고 평화정착 위한

새로운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어야

방문단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평화의

전령사라는 자부심 가져달라고 당부

 

우리 정부는 이번 회담이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모든 성의와 노력을 다하고 있다"면서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이 남북 간 신뢰 회복의 첫걸음임을 강조했다. 이어 전 대통령이 집요하게 제의한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대해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 정착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대화가 필수적"이라며, 북측이 전향적으로 정상회담에 호응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북한의 허담 노동당 비서가 94일부터 6일까지(23) 비밀리에 서울을 방문했다. 전 대통령이 5일 허담을 접견했고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의를 기쁘게 생각하며 평양 상봉을 희망한다는 김일성의 친서를 전달받았다.

 

이때 전 대통령은 장세동 안기부장을 통해 아웅산 테러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나 유감표명을 요구했다. 허담은 시인, 사과를 요구하면 정상회담은 물 건너간다며 역사에 맡기자, 과거를 불문에 부치기로 하고 앞으로 그와 같은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고 말했다.

 

918일 대한적십자사에서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발단식이 북한 방문을 앞두고 감격적인 분위기 속에서 열렸다. 박동진 통일원장관은 격려사에서 이번 방문을 일천만 이산가족의 한을 풀기 위한 역사적인 첫걸음이자 인도주의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 이산가족 고향방문을 계기로 남북 간 불신의 벽을 허물고 평화정착을 위한 새로운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방문단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평화의 전령사라는 자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북측에도 이번 일회성 교류행사에 그치지 말고 상시적인 상봉과 자유로운 서신왕래로 이어지도록 보다 적극적이고 전정성 있는 자세로 임해줄 것을 청했다.

 

통일정책인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 설명

통일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흡수하거나

파괴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화 통한 민족적

화합과 민주적 절차에 의해 점진적 이뤄져야

 

이산가족 고향방문단및 예술공연단(9.20 23, 34)이 평양으로 갔다. 분단 40년 만에 처음으로 이산가족들이 남북을 가로질러 상봉하는 감격적인 장면으로 이어졌다.

 

1016일부터 18일까지 장세동 안기부장이 답방 형식으로 평양을 극비 방문하여 허담의 안내를 받았고 김일성을 만나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양측은 정상회담을 '조기에', '평양에서 먼저' 갖기로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1025일 마산에서 지역 지도자 및 시민 500명이 참석한 민족통일 경남협의회주최 통일문제강연에서 박동진 통일원장관은 9월에 있었던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교환과 북측 허담 특사의 서울 방문 등 일련의 흐름을 언급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실질적으로 제거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남북한 최고 책임자가 직접 만나는 정상회담이 조속히 개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장관은장세동 부장이 평양에서 귀환한 다음날 발생한 부산 청사포 간첩선 침투 사건을 의식, 안보의식을 강하게 주문했다. "북한이 대화의 테이블에 나오면서도 뒤로는 무장 간첩을 침투시키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하며, 국민에게 "우리의 통일 노력은 반드시 튼튼한 국력과 철저한 안보 태세가 뒷받침될 때에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며 국민단합을 당부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통일정책인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을 설명하며, "통일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흡수하거나 파괴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화를 통한 민족적 화합과 민주적 절차에 의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듬해인 19861월에 팀스피리트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핑계로 모든 남북대화 중단 선언을 하자, 북한에 대한 불신이 커지며 정상회담 개최 분위기가 급격히 식어버렸다.

 

227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박장관은 전 대통령에게 향후 2, 3년간 남북회담 추진에 있어 화합적인 교섭 자세로 임하며 주어진 대화 기회를 최대한 이용, 신축적이고 포용적 자세로 남북 정상회담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보고했다.

 

북한이 대화의 문을 닫고 위장평화공세

펴고 있지만, 우리는 인내심 갖고 그들을

대화의 광장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역설

 

’869월 서울 아시안게임 앞두고 북한이

국제적인 시선 의식해 대화에 복귀 가능성

정부는조속히 대화 테이블로 돌아오도록 촉구

 

 박 장관은 중단된 여러 갈래의 남북대화가 재개되어 올해 안에 인적·물적 교류가 실현되는 실질적 진전을 가져올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하고 앞으로 북한측의 성실성 여부가 대화진전의 주요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 보고했다.

 

412일 대구 가든호텔에서 열린 민족통일촉진회 주최의 평화통일염원 조찬기도회에서 박장관은 치사를 통해 북한이 대화의 문을 닫고 위장평화공세를 펴고 있지만,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그들을 대화의 광장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야 그것이 국력을 과시하는 길이고 우리의 국력이 북한을 앞설 때 북한도 결국 대화의 테이블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통일은 정부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확고한 안보 의식과 단결된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정부에 대한 지지를 당부했다.

 

530일 국회에서 열린 민정당 외무분과위원회에 참석한 박장관은 북한의 일방적인 선언으로 중단되었던 남북대화의 재개 전망에 “19869월 서울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북한이 국제적인 시선을 의식해 대화에 복귀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정부는 북한이 조속히 대화 테이블로 돌아오도록 촉구했다.

 

또한 적십자 회담과 같은 인도주의적 사안을 우선적으로 재개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 우리정부의 일관한 대화 기조에는 변함이 없으며 북측에 유연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장관은 현지지도 횟수 등을 볼 때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보다 더 많다며 김정일이 지도체제를 확립해 명실상부한 북한의 통치자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은 것은 사실상 실권을 행사하던 김정일이 방해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당시 남북 관계의 막후에서 모든 상황을 보고받고 진두지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퇴임시 박동진 통일원장관

[약력]

19221011일 대구에서 출생, 전 고려대 총장 유진오의 사위, 통일원장관보다 외교부장관으로 훨씬 더 유명하다. 선이 굵고 눈치 보지 않고 바른말 하는 성격, 협상 테이블에서 강단 있는 모습을 보였고,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배짱으로 부하 외교관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별명은 '외교의 달인' 평소 지론이 외교관은 총 없는 전사로서 수십만 대군이 동원되는 전쟁도 막을 수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외교는 조용할수록 좋다등 명언으로 유명하다. 민주정의당 소속 국회의원 2, 통일원장관 사임 후 1988년부터 91년까지 노태우정부의 주미대사, 한전 이사장, 한국외교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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