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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올해 노동당창건 80주년 기념행사로 평양종합병원 준공식, 인민군열병식,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당창건 경축군중시위와 횃불야회 등을 성대하게 개최했다. 북한당국은 “국가의 문명성을 보여줬다”고 자화자찬했다. 이런 독재사회에 부모형제들을 두고 온 탈북민들의 마음은 찢어진다. 인민들은 하루 2끼 죽을 먹는데 김정은은 핵무기 개발과 체제홍보에 사활을 걸고 있으니 말이다. 서울 강북에서 이미옥 한반도개발연합 당진119지원센터장을 만났다.
- 한반도개발연합 당진119지원센터를 소개해 달라. 2025년 8월에 설립된 충청남도 당진에 있는 탈북민들의 정착지원 및 봉사단체이다. 당진에는 약 180여 명의 탈북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중 우리 단체에 회원으로 등록하고 함께 하는 탈북민은 100여 명이다. 대략 60% 이상의 탈북민이 우리 센터에서 자원봉사와 여러 가지 좋은 사회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우리 단체만큼 회원들이 자의적이고 활동적인 모임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 실제 활동은 언제부터 하였는가. 하나원을 수료하고 2015년 가을, 바로 당진으로 주거지를 배정 받아 나왔다. 당시 당진 북한이탈주민지원센터 모임이 있었다. 이름에 비해 활동은 미미했다. 겨우 유지하는 친목모임에 불과했다. 우리가 관계 기관이나 단체에서 예산도 받고 또 봉사활동도 하면 좋겠다면서 두 팔을 걷고 나섰던 것이다.
서해바다 환경미화 봉사활동 진행 여행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 많아 방치하면 바다에 그대로 흘러들어가 환경이 파괴되어 결국 우리의 미래 해치는 것과 같아 수년째하고 있어
- 회원들이 쉽게 따라주었나. 회원들에게 이것 하라 저것 하라 지시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인다. 우리 단체는 당진시청으로부터 해마다 일정액수의 지원예산을 받는다. 그리고 현대제철, 동부화력발전소 등의 기업에서도 후원을 받아 재정관리를 투명하게 하며 단체를 운영한다. 그러니 회원들이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제는 수혜자가 아닌 기여자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본다.
- 그동안 어떤 일을 하였는가. 우리단체는 서해바다 환경미화 봉사활동을 꾸준히 진행한다. 바닷가에 가면 여행객들이 마구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많다. 그것을 방치하면 바다에 그대로 흘러들어가 환경이 파괴되어 결국 우리의 미래를 해치는 것과 같다. 그 일은 벌써 수년째이다. 회원들이 자기의 귀한 시간을 내서 봉사 활동하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 또 어떤 활동이 있었나. 요양원 방문도 꾸준히 한다. 우리 회원들이 북한음식을 만들어가서 어르신들에게 대접하면 너무나 좋아한다. 간혹 이북에서 내려오신 실향민 분들도 있다. 우리의 손을 꼭 잡고 고향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어르신들 앞에서 북한의 전통 노래와 춤을 보여준다. 수십 년 세월이 흘렀어도 고향사랑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 자신을 소개해 달라. 1970년 4월 함북 회령서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1988년 8월 김정숙교원대학 교양원과 졸업하고 한 유치원에서 교양원(교사)으로 4년간 근무했다. 지방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월급과 배급도 없었다. 이유는 모두 ‘미제와 남조선’의 국제제재 때문이라고 했다. 인민들은 외부세계를 전혀 모르니 알려 준대로 믿는다.
- 이후 경력은 어떻게 되는가. 고난의 행군(북한주민이 대아사로 수백 명이 굶어죽은 1990년대)이 시작되었다. 가만있으면 꼼짝없이 굶어죽을 판이다. 그럴 수는 없어 장사를 시작했다. 밀수꾼들로부터 정보를 조사하고 조선에서 염장 이면수 등을 갖고 중국에 가서 쌀과 밀가루, 강냉이를 바꿔갖고 오려고 했다. 1997년 1월 두만강을 건너 탈북을 했다. 그런데 중국지인이 길림성으로 피신시켜주었고 거기서 한국인 선교사를 만났다.
함북 전거리교화소에서 5년간 보내 그곳에서 인간차별 말로 표현 못해 2014년 7월 석방되어 나오자마자 ‘더는 못 살겠다’고 판단하고 탈북 베트남, 라오스, 태국을 거쳐 입국
- 어떤 심경변화가 생겼는가.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에게 충성하며 살았던 것이 허무한 날이었음을 깨달았다. 고향에서 부모형제, 가족, 친척, 동네직장 사람들이 평생 당에 충성을 했어도 결국 굶어죽어야 하니, 일제시기보다 못한 북한사회라는 것을 알게 됐다. 북한당국에 한없는 증오가 생겼다.
- 북송 경험이 있는 줄 아는데. 2009년 11월 중국에서 북한보위원 수십 명이 동원되었고 현장서 체포되었다. 당일로 북송이 되어 중앙(평양)과 도(道)보위부, 시(市)보위부를 거쳐 악명 높은 회령 전거리교화소에 수감되었다. 어떤 고문에도 성경, 종교, 하나님 등의 소리를 안했다. 그냥 배고파서 중국서 돈 벌고 밥 먹고 살았다고만 똑같이 실토했다. 만약 중국에서 종교를 접하고 신앙을 가졌다고 했다면 정치범수용소로 갔을 것이다.
- 재 탈북은 언제 하였는가. 함경북도 전거리교화소 안에서 5년간 보냈다. 그 안에서 겪었던 인간차별은 말과 글로 다 표현을 못한다. 2014년 7월 석방되어 나오자마자 ‘이런 북한사회서 더는 못 살겠다’고 마음을 먹고 바로 탈북했다. 중국에서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베트남,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 2015년 4월이다.
-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요즘 북한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아비규환 그 자체다. 김정은이 저렇게 거금이 들어가는 핵개발이나 온갖 정치행사에만 몰입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 주민들이 밥을 먹고 살겠는가. 제발 북한이 경제개혁 개방을 해서 주민들이 쌀밥에 고깃국은 아니라도 강냉이밥에 시래기 국이라도 배불리 먹고 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통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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