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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끝없는 철책과 감시 초소 너머에는 우리가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긴장이 흐른다. 이곳에서 안보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매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과 경계 속에서, 평화는 준비된 자만의 몫임을 휴전선은 말없이 경고한다.
최근 휴전선에서는 북한 병력의 반복적인 휴전선 침범, 은밀한 군사 활동재개, 경계구조물 보강과 남측의 경고 사격·현지 화력배치, 확성기방송 철거 등 다양한 징후가 교차하며 안보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김홍철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지난 17일,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 관련 회담 제안을 위한 담화'를 통해 "최근 북한군이 비무장지대 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술도로와 철책선을 설치하고 지뢰를 매설하는 과정에서 일부 인원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 지역을 침범하는 상황이 지속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군이 DMZ를 침범한 사례는 올해 벌써 10차례가 넘는다. 지난 8월에는 비무장지대(DMZ)에서 건설 및 보수 작업을 하던 북한군 30여명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유엔군사령부가 밝혔다. 그 전인 6월에는 합참이 “북한군 20~30명이 18일 오전 8시 30분쯤 중부전선 군사분계선 남측 20m 지역까지 넘어왔다가 경고방송·경고사격 이후 퇴각했다”고 발표했다. 6월 9일 오후에는 무려 두 차례에 걸쳐 20~30명이 중부전선 다른 지역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가 우리 군의 경고사격에 퇴각하기도 했다.
6·25 전쟁 직전에도 이랬다. 끊임없는 국지전과 총격전으로 전쟁 전 38선은 사실상 준(準) 전쟁 상태였다. 1949~1950년 사이 38선에서는 일평균 100건 이상의 크고 작은 충돌이 보고될 정도로 긴장이 극심했었다. 북한군의 끊임없는 남하 시도, 대한민국 경찰·국군의 대응 사격, 서로의 정찰병·초소 포격 등 충돌로 38선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 총성이 울렸다.
이런 상황에서 여수·순천 사건과 제주 4·3의 후유증은 군 내부를 ‘숙군’의 공포로 뒤흔들었다. 정치가 개입한 인사 탓에 지휘관들은 능력보다 충성으로 평가받았고, 잦은 교체로 전선은 허리가 꺾인 채 전쟁을 맞았다. 총탄이 날아다니는 국경과 내부 불신이 결합하여, 대한민국은 전쟁이 터지기도 전에 사실상 패배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국방부는지난 9월 현역 대장 7명 전원을 교체했다. 중장 인사도 곧바로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과거보다 규모가 커서 이번 달에 중장급 20여명을 교체했다. 국방부는 장성 인사에서 12·3 계엄과 연루된 장성은 철저히 배제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 북한에 대한 대비태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군은 명령복종이 철저한 조직이다. 그런데, 6·25 전쟁초기에 우리 국군은 그렇지 못했다. 1948~1949년 숙군 과정에서 장교 5,000명 이상이 체포·해임되면서 부대지휘체계가 급격히 교체되었다. 경험 없는 장교, 장군들이 갑자기 중견, 최고 지휘관으로 승진하는 일이 벌어졌다. 군 내부의 신뢰 관계는 완전히 흔들렸다. 지휘관들 스스로도 부하를 완전히 신뢰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군의 전면 공세가 시작되자 국군 대다수 부대는 지휘관과 연락 두절, 명확한 방어 계획 부재, 정보실패 등으로 인해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
강병의 조건은 숫자도, 장비도 아니다. 위기 앞에서 먼저 나서는 지휘관의 리더십, 병사들이 끝까지 버티겠다는 사기일 것이다. 매일 반복된 훈련이 만든 실전 능력, 흔들림 없는 군 기강과 신뢰 등이 동시에 갖춰질 때 군은 비로소 강해진다. 어느 한 요소만 무너져도 전투력은 무너진다. 강병은 기적이 아니라, 이 조건들을 끝까지 지켜낸 공동체의 노력의 결과다.
한반도의 안보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긴장선 위에 놓여 있다.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한 준비가 절실히 필요하다. 정부의 결사항전의 노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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