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조선중앙 TV가 지난달 30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 북한군들을 찬양하는 뮤직비디오 ‘기억하리’를 공개했다.
‘청년동맹원 윤정혁(20), 우위혁(19)은 적들의 포위되자 서로 부둥켜안고 수류탄을 터뜨려 용맹하게 자폭했다. 또 다른 청년동맹원 리광은(22)은 자폭하려 수류탄을 던졌으나 왼쪽 팔만 떨어져 나가자 오른손으로 다시 수류탄을 머리에대고 자폭했다.
이는 비디오 게임도 아니다. 듣도 보도 못한 남의 나라 전쟁터에 끌려간 북한의 앳된 젊은이들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수류탄을 터뜨려 자살하는 것을 영웅이라고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것도 조국과 원수님을 위해 훈련하러 간다고 해서 비행기에 올랐더니 가보니 남의 나라 전쟁터였다.
드론 등 고도의 무기 체계를 갖춘 우크라이나군 앞에서 소총과 수류탄만 들고 돌격 앞으로를 외치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이들의 희생은 일방적인 도살에 가까웠고, 그러다가 자폭당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우크라이나 전사 장병의 유해가 담긴 관을 부여잡고 울먹이는장면이 TV에 보도됐다.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도 자신의 남침 결정임에도 ‘조국통일의 성전’이라고 외치며 죽음의 전선으로 내몰았던 인민군 전사자 추모식에서 유족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김정일 시대에도 북한 매체에서는 지도자의 애도 퍼포먼스를 반복해서 내보냈다. 북한 체제가 위기를 겪을 때마다 반복되는 정치적 감상극이다.
더 충격적인 건, 김정은이 우크라이나 파병을 염두에 둔 듯한 부대의 훈련을 시찰하면서 촬영된 사진이다. 사진 속 경호원들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훈련하고 있는 병사들 머리 위로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상명하복을 넘어 공포로 통제하는 북한 체제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파병 대가로 김정은이 러시아로부터 얻은 것은 무엇일까. 국정원은 북한 파병 인력이 약 16,000명이고 그 중 전사자가 2,0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러시아나 북한이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병사 1인당 월 약 2,000달러가 지급된다고 가상했을 때, 파병 대가로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약 3억 달러 정도의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유엔 제재를 우회하여 정찰위성이나 핵잠수함 원자로 등 민감한 군사 기술도 러시아로부터 넘겨받았다고 관측된다. 그러나 정작 그 자금이 민생에 쓰였다는 흔적은 별로 없다. 식량이 절대 부족하고 쌀값이 폭등해서 주민들이 살기 어려움에도 파병 대가로 얻은 자금이 식량 수입에 활용되었다는 보도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비디오의 발표 시점 또한 의문스럽다는 분석이 많다. 금년 초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 북한군인 중 상당수가 죽거나 다치고 있다는 소식이 북한 내부 주민들 사이에 퍼지면서 자녀를 군에 보낸 부모들의 불안이 확산되었다. ‘온몸이 피투성이라서 알아볼 수도 없다.’, ‘눈뜨고 죽은 어린 병사도 있다.’는 말까지 돌았다.
‘기억하리’라는 비디오에는 ‘우리의 희생을 기억하라’는 메시지가 은연중에 담겨 있다. 지난 3일 전승절 기념식 때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실제 회담 과정에서 두 정상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표면적으로는 전략적 연대를 강조하면서도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들의 희생을 언급하며 그에 상응하는 추가 지원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긴장이 불가피했음을 보여준다.
내부적으로 충성과 희생을 내세워 체제를 결속하면서 외부적으로는 그 희생을 근거로 전략적 파트너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은, 북한의 선전과 외교가 맞물려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국가주의의 이름 아래 병사들의 죽음을 정치ㆍ경제적 흥정의 수단으로 삼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애도의 차원이어야 한다.
그것을 외교적 거래의 자산으로만 바라보는 순간, 국가는 추모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악마와 죽음을 거래하는 일개 장사꾼에 불과하게 되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강제 파병되었다가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동족 젊은이들의 명복을 빈다. <저작권자 ⓒ 통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