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나루터에서 귀향선 오르는 날까지 봉사활동 멈추지 않을 것”[인터뷰] 탈북민단체 ‘통일나루터’ 김선녀 회장조기대선으로 한국의 정치상황이 안개속이다. 탈북민들은 보수정부, 진보정부에 따라 웃고 우는 희비가 있다. 탈북국회의원 4명을 배출해준 보수정당이고, 탈북민을 변절자로 보는 진보정당이 한국의 정치권이다. 혼란 속에서 정착하며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그러나 통일의 시금석이고 예비시험인 탈북민들의 남한정착과정에 또 어떤 일들이 있는가. 최근 인천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탈북민봉사단체인 ‘통일나루터’ 김선녀 회장을 남동구 만수동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통일나루터’를 소개해 달라. 지난 2022년 3월 인천에서 설립했다. 단체명은 통일바다(광장)로 나가는 나루터에서 모두가 함께 하자는 의미이다. 탈북민 선배가 후배들의 정착을 직·간접으로 도우며 자원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기업과 회사, 시민단체 등에서 후원물품을 받아 어려운 탈북민들과 취약계층에게 나눠드리는 나눔 활동을 한다. 현재 등록회원은 150여명, 회비를 내는 정회원은 60명이다. 통일부에 등록한 사단법인이다.
- 그동안 어떤 봉사활동을 하였나. 재작년 5월 서울 구로구에 소재한 탈북민 자녀 방과후학교인 ‘남북사랑학교’를 방문하여 사랑의 후원물품을 전달했다. 의류, 생활용품, 식료품, 신선식품 등 600만원 상당의 물품이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40여 명의 아이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서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그들의 마음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 또 다른 일이 있었다면. 2022년 6월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소재한 노인장애인복지시설 ‘즐거운집’을 찾아 북한고향음식을 대접했다. 우리 회원들이 시장을 보고 일일이 정성들여 만든 두부밥, 아바이순대, 청진찰떡, 가자미식혜 등이다. 인천은 황해도지역 실향민들이 전국서 가장 많은 곳이다. 6·25전쟁 때 피란을 내려오기 가장 가까운 거리였다고 한다. 고령인 이분들이 사망으로 인해 점점 줄어드는 것이 가슴 아프다.
- 탈북어르신 관련 활동은 어떤 것인가. 지금까지 인천지역 거주 탈북어르신들 위한 사랑의 물품 나눔 행사는 300여회 이상 했다. 보통 탈북어르신들은 돈 만원이라도 아껴서 고향에 있는 자식이나 가족에게 보낸다. 그들에게는 식료품, 생활용품에 들어가는 돈도 큰 것이다. 물품을 받고 감사하다고 몇 번씩 고개 숙여 인사하는 노인들을 보면 일하는 보람을 느낀다.
인천 거주 탈북어르신들 위한 사랑의 물품 나눔 행사는 300여회 이상 실행 탈북어르신들은 돈 만원이라도 아껴서 고향에 있는 자식이나 가족에게 보내 식료품, 생활용품에 쓰는 돈도 큰 것
- 푸드마트와 푸드뱅크는 어떤 차이인가. 푸드마트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시청이나 구청에서 공무원들이 진행하는 것이다. 식품관련 기업이나 회사, 개인사업장들에서 물품을 후원받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일이다. 푸드뱅크는 사회복지사, 교회목사, 시민단체대표 등 관련 자격증을 소지한 민간인들이 하는데 그들의 인건비(월급)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준다. 두 기관에 하는 식품 나눔 행사는 정부의 철저한 관리 감독 하에 이뤄지고 있다.
- 회원 관리에서 아쉬운 것은 뭔가. 단체로 하는 봉사활동은 협동심이 기본하다. 좋아도 싫어도 다 같이 어우러져 봉사하고 나눠야 할 것이다. 회원들 간의 눈치를 보면 더욱 힘들어진다. 각자가 자그마한 시간과 노력이라도 성심껏 보태는 것이 중요하다. 봉사는 할 때는 몰라도 하고나면 마음 뿌듯한 일로 결국 본인의 마음과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 자신을 소개해 준다면. 1969년 함북 무산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4남매 중 둘째. 부친은 ‘무산군외국인숙소’ 노동자, 모친은 무산광산유치원 교양원(교사)이었다. 1985년 청진상업학교(2년제)에 입학하였다. 1987년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청진시 철도양복점 재단사로 직업 배치를 받았다. 청진시 소재 함경북도 안전부(남한의 지방경찰청) 국장인 고모부 덕에 무산에서 벗어나 도시인 청진으로 와서 공부하고 일할 수 있었다.
통일나루터 소속 노인복지재가센터 설립 직원은 가능한 남한사람들로 5~6명 규모 복지대상은 탈북어르신과 지역의 노인들 무연고 탈북노인 사망도 탈북민 사회에서 가볍지 않은 문제로 이 분야에 더욱 노력
- 언제 탈북을 하였는가. 2005년 12월 21일 무산군 상창리서 도강(탈북)했다. 이유는 장사를 한 것이 안전부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은 것이었다. 옹근 3일간 낮에는 산으로 밤에는 마을길로 걸어 중국 연길에 도착했다.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2008년 1월 남한에 왔다. 그해 9월 중국브로커에게 돈을 주어 7살짜리 딸애를 업어오게 했다.
- 정착생활 초 시기 어떻게 보냈는가. 경북 김천서 2년간 옷가게를 했고 이후 경기 성남으로 이사를 와서 이불가게를 2년간 하였다. 일을 하면서 동시에 운전면허증과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으며 2016년 성폭력예방교육 강사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2017년 7월 통일부 통일교육원에서 30일간 전문 강사 양성교육을 받고 통일강사 자격증을 수료하였다. 남한은 자격증이 있어도 일자리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 마냥 어려운 사회이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통일나루터 소속의 노인복지재가센터를 설립하려고 한다. 직원은 가능한 남한사람들로 5~6명 규모로 시작해서 차츰 늘리겠다. 복지대상 노인은 당연히 탈북어르신과 지역의 노인들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되는 심각한 문제다. 무연고 탈북노인 사망도 탈북민 사회에서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로 이 분야에도 신경을 쓰려한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지난 3월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서울 송파 지역 탈북어르신들을 위한 물품나누기 행사를 진행하였다. 어느덧 3년째이다. 이 일을 4월부터 인천 남동구에서 할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탈북어르신, 한부모가정, 장애인, 소녀소녀가장 등이다. 물품은 빵, 음료수, 국수, 소스 등 식품과 야채(채소) 위주이다. 남한주민들도 있다. 탈북어르신들보다 더 어려운 남한 어르신들도 있는데 주로 독거노인들이다. <저작권자 ⓒ 통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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