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도 새도 모르게 살아야 한다

박신호 방송작가 | 기사입력 2023/05/02 [13:59]

쥐도 새도 모르게 살아야 한다

박신호 방송작가 | 입력 : 2023/05/02 [13:59]

옛말 하나 그르지 않아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으며 자란 세대는 지금도 곧잘 그때 들은 속담들을 복습하듯이 되쓰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본디 속담이란 옛날부터 민간에 전해오는 쉬운 격언이나 잠언이라서 아무리 일자 무식쟁이라도 속담을 들이대며 따져 들면 꼼작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만큼 인용되는 속담이나 옛말은 그 위력이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유식한 세상이라 많이 달라졌다. 속담이나 옛말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그 대신 유식한 학자나 정치가, 유력자가 한 말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대체로 이해하거나 납득들을 하게 된다. 달라진 세태의 모습일 것이다.

 

그렇긴 해도 오늘은 속담의 위력을 빌려보고 싶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신속한 전달 방법이라고는 봉화나 파발밖에 없던 시절에도 입소문은 바람을 타고 빨리도, 멀리도 삽시간에 퍼지기 일쑤다. 오죽하면 한마디 쩝도 못하겠다고 했을까. 특히나 비밀이란 단서가 붙으면 그 전달 속도는 배가한다. 혹여 누가 들을세라 사방을 둘러보고 확인한 다음에도 미심쩍어 상대 귀에 입을 바짝 대고 속삭이듯 귀엣 말을 합니다. 심지어 그것도 안심할 수 없어 이건 비밀이야라는 단서를 단다. 하지만 입소문은 비밀이란 말까지 삽시간에 번지기 마련이다. 이래서 쥐도 새도 모르게 조심하란 속담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 천리만리 떨어져 있어도 얼굴 맞보며 통화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비밀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인적이 없는 곳에서나 밀폐된 방에서 통화를 하면 비밀이 유지될 수 있겠지만 그것도 평범한 사람들의 얘기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도청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 갈 수가 없다. 날아다니는 전파에서 오가는 말을 잡아내니 말조심할 수밖에 없다. 글 조심도 해야 한다. 국회의원에게서 종종 탄로나는 핸드폰 문자가 좋은 예이다.

 

 근래 도청(盜聽)이 큰 이슈인 것을 본다. 엿듣기는 오늘 얘기가 아니다. 엿보기와 더불어 말썽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지금은 자식이 결혼하면 부모와 따로 살아 엿보기, 엿듣기가 사라졌다.같이 살아도 사각지대가 극히 좁아져 엿듣기나 엿보기가 쉽지 않아 분란이 덜 나긴 하지만 집안이 평안 하려면 엿듣기, 엿보기에 조심해야 하는 게 현실이 아닌가 한다.

 

엿듣기, 엿보기는 남의 취약점을 잡아 이용하려는 목적이 많다. 사사로운 일부터 국가 사이에 이르기까지 그 폭은 갈수록 넓고 다양해졌다. 얼마 전 미국이 용산 대통령실의 통화를 도청했다고 문제가 됐다. 특히 여야의 공방을 듣자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부부 사이에도 엿듣기, 엿보기가 비일비재고 다반사다. 국가 기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국가와 국가 사이는 말할 나위 없다.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방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걸 가지고 시비를 건다는 건 첩보전 시대를 너무나 모르는 소리다. 철저히 방비하면 된다. 그 수밖에 없다.

 

 미국은 모스크바에 새 대사관을 짓기 시작한 지 15년 만에 완공했다. 그럴 사연이 있다. 냉전 시대 때 KGB의 미 대사관에 대한 집요한 도청에 미국은 막다 못해 아예 1985년에 새 대사관을 짓기로 했다. 하지만 짓는 중에 건물 벽이며 기둥에서 도청 장치가 끊임없이 발견돼 결국 공사를 포기했다. 그러다가 밀월관계가 무르익던 1996년에 가서야 대사관 공사를 재개했다. 그렇지만 그때도 물만 빼고 모든 물자를 미국서 직접 수송했다. 인부도 러시아인은 배제했다. 그렇게 해서 겨우 완공한 것이다.

 

도청은 어느 나라에서도 있다. 방법도 상상을 초월한다. 현대는 정보전 시대다. 국가 기관의 기밀만이 기밀이 아니다. 산업전선에서도 정보전이 치열하다. 서로 기밀을 빼내려고 밤낮없이 암약하고 있다. 정보전에 뒤지면 전쟁에서 지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 바둑만이 아니다. 공격은 방어다. 필사적인 공격인 도청을 게을리 하다 간 불계패 당한다. 그런 걸 새삼스럽게, 어설프게 도청 시비를 하는 건 한심한 거다. 물론 정도가 넘을 경우는 있다. 하지만 그런 틈을 주는 것도 내 쪽 잘못이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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