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3정거장 걸어 다니며 집념과 실천이 낳은 결실에 자부심 가져요”한국피부미용사회중앙회 허정희 부산·사하구지부장북한의 정부기관지 ‘민주조선’은 ‘단정한 옷차림과 고상한 머리단장’서 “여자들은 간결하고 단순한 머리형태인 단발머리, 묶음머리, 땋은머리가 좋다”며 긴 머리를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당국이 인민들의 외모까지 통제한다. 이런 북한서 살던 탈북민들은 남한에 와서 자유 분망한 생활문화를 접하며 놀라워한다. 허벅지가 보이는 미니스커트나 꿰진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빨강·노란색으로 물들이고 다녀도 누가 뭐라지 않으니 신기하다. 국제화, 세계화 시대의 개성생활을 문화라고 이해하기까지 일정한 시간이 걸리며 그것도 공부로 받아들인다. 서울 구로구민회관의 주변 커피숍에서 한국피부미용사회중앙회 허정희 부산지회 사하구지부장을 만났다.
- 피부미용을 하게 된 계기는. 한국으로 오기 위해 임시로 모이는 A국 난민수용소에 있을 때, 그리고 서울로 올 때 주변에서 아파하는 사람들을 발족심으로 임시 치료해준 적이 있다. 관계자 선생들이 나에게 “좋은 재간이 있으니 한국에 가서 공부를 더 해서 그 분야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 하나원을 나오면서 부산에 정착하였다. 일단 빈손으로 왔기에 사업을 하려면 돈이 필요해 아침 6~8시 식당일을 했고 9시부터 학원공부를 했다.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 고깃집 알바를 했으며 돈이 아까워 천 원짜리 컵라면도 안 먹었고 버스 3정거장도 걸어 다녔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면서 경남정보대학 국제미용학과(2년제)를, 고신대학교(4년제) 부티케어학 전공을 졸업했다. 일하면서 한 공부이기에 더 값지다고 본다. 2017년 지금 운영하는 피부건강샵 가게를 오픈해 현재까지 오고 있다. - 자격증과 상장이 그간의 열심히 살아온 삶을 증명하던데. 국가피부미용자격증 1급(2017.1), 아로마조향사 초급(2019.12), LEVEL 6급(2020.1) 등 모두 7개의 자격증이 있다. 열심히 배우자는 집념으로 실천에서 낳은 고귀한 결실이다. 장려봉사상(2018.12), 자랑스러운구민상(2019.12), 국제모범예술인상(2022.8) 등 15개의 상장과 표창장, 임명장 등이 있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6개의 봉사단체에 소속이 되어 지역사회 다양한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 특별한 영업 전략은 있다면 소개 바란다. 고객을 자기 가족식구처럼 생각한다. 무슨 일이든 대충하면 그 순간은 편하고 좋을지 모르나 후과는 반드시 나타난다. 요즘 고객들은 너무 똑똑하다. 가격 경쟁력도 중요하며 봉사는 남보다 더 친절하게 하고 요금은 남보다 덜 받는다. 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신뢰, 단골로 돌아온다. 이런 영업방법이 주변에 널리 퍼져 단골고객이 제법 있는 편이다. 영업장을 단순 서비스만 제공하지 않고 고객들이 편하게 수다도 떠는 사랑방으로도 활용한다.
빈손으로 왔기에 사업 하려면 돈이 필요해 아침 6~8시 식당일 했고 9시부터 학원공부 오후4시부터 10시까지 고깃집 알바 했으며 돈이 아까워 천 원짜리 컵라면도 안 먹어
- 지부장 직무를 소개해 달라. 지난 2017년부터 한국피부미용사회중앙회 부산지회 사하구지부장을 맡고 있다. 지부장 임명은 중앙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하는데 보통 10:1의 경쟁률을 뚫고 이루어진다. 지부장은 지역의 200여명의 피부샵 원장을 총괄 통솔한다. 작년 12월 부산벡스코서 있은 “2022 부산美아트 페스티벌 제8회 부산시장배 피부미용 기능경진대회” 심사위원이었다. 출전 선수는 300명. 부산지회 13개 지부가 참석했고 사하구지부는 10종목에 참가, 트로피와 메달을 획득했다. - 봉사활동을 많이 하던데. 2022년 7월 부산광역시 사하구 동매사랑누리 2층 강당에서 한국자유총연맹과 함께 하는 “어르신 건강 손맛사지 재능기부 자원봉사”를 진행하였다. 본 단체임원 및 자원봉사자 30여명 참석했다. 이 봉사는 월 한 차례씩 꾸준히 계속한다. 8월에는 지역봉사단체인 ‘동매사랑누리회’서 신평1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주최로 진행한 “함께 해요! 동매누리 나눔 밥상” 행사에 참여했다. 20여 명의 봉사자들이 성의껏 준비한 맛있는 음식을 동네 어르신들에게 무료로 대접했다.
2017년부터 부산지회 사하구지부장 맡아 지부장 임명은 중앙의 엄격한 심사 거쳐 지부장은 지역 200명 피부샵 원장 총괄
1965년 함경북도 OO에서 태어났다. 자세한 사항은 고향에 남은 가족들 때문에 생략하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희망한 대학을 못간 이유는 단 하나! 부모가 중국연고자이기 때문이다. 1979년부터 OO기계전문학교, OO화학공업대학을 다녔고 우수성적으로 졸업했다. 이후 OO화학연합기업소 공무보수과에서 근무했다. 부서에는 통계원, 설계도면관리원, 도면심사원인 나, 이렇게 여자가 3명이었고 나머지 12명은 공무부기사장(과장), 책임지도원 등 남자직원(지도원)이었다. 보통 한 명의 남자직원이 2~3개 직장의 기술관리지도를 담당하고 있다. - 북한 생활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일은. 연합기업소에는 매해 태양절(김일성 생일), 당창건기념일, 연간계획완수한 날 등에 국가서 내려오는 배려상품이나 사회 각처서 올라오는 생활지원물자 등이 들어온다. 주로 의류피복 및 생활용품, 농·식품 등이다. 이것을 생산계획에서 모범적인 직장의 노동자들에게 배급하는데 노동자가 1개를 가진다면 사무원은 2~3개 가진다. 이에 대해 현장 근로자들의 불평도 있으나 사무원들은 오히려 당당한 자세이다. - 북한의 인민반장의 업무는 어떤 것인가. 북한은 중앙서부터 지방까지 통제체제가 완벽한 사회이다. 인민반장은 인민반(30여 가정) 사람들에게 매일 당의방침, 행정지시 등을 전달하고 그 집행결과를 상부에 보고한다. 뿐만 아니라 마을꾸리기, 석탄가스 순찰, 숙박검열, 공공질서유지, 수매사업 등도 포함된다. 인민반장은 유급일군으로 식량은 600그램, 월급은 30원 받았다. 참고로 일반 공장의 노동자는 700그램 식량에 80원 정도의 월급이다. - 여맹위원장의 업무는. 여맹(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은 북한의 30세 이상 모든 여성이 의무 가입된 최대 여성 사회단체이다. 여성들에 대한 노동당 학습, 강연, 생활총화, 노래·선서모임 등 많은 정치행위가 있는데 이를 지시, 감독하는 사람이 여맹위원장이다. 난감한 것은 인민군대 원호물자, 건설장 지원물자 등을 수거하는 행위이다. 인민군대나 건설현장에 보내 줄 후방물자(장갑, 수건, 세면도구, 돼지, 주먹밥 등)를 각 가정에 할당량으로 전가시킨다.
중국에서 탈북자 신분이라 항상 불안해 고민 끝에 사람답게 살고 싶은 마음들어 제3국 거쳐 2014년 3월 대한민국 입국 성경책 100권 모아 그것 봉고차에 싣고 통일된 북녘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소망
- 탈북동기는 무엇인가. 긴병에 효자가 없다고 간간히 도움 받던 중국친척집의 신세도 점점 약해졌다. 그렇다고 가족을 굶길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든 살아야 하겠기에 큰마음을 먹고 2010년 봄, 눈물의 두만강을 건넜다. 북한을 벗어나보니 세상은 너무나 달랐다. 같은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은 북한에 비하면 먹을 것, 입을 것, 사용할 것 등이 너무도 흔한 나라이었으니 돈을 벌어야겠다는 결심이 선뜻 들었다. - 어떤 일을 하였는가. 북한에 있을 때부터 독학으로 발족심(지압으로 발 치료하는 것)을 배웠다. 다수의 사람을 치료해준 경험이 있다. 중국에 와서도 몰래 발족심을 했는데 고객 중에 내 치료를 받고 제법 건강이 좋아진 사람도 있었으니 입소문이 났다. 그러나 탈북자의 신분이라 마음은 항상 불안했다. 언제 공안이 불시에 들이 닥칠지 모를 그야말로 코 막고 답답한 기분이다. 고민 끝에 사람답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제3국을 거쳐 2014년 3월 대한민국으로 입국했다. - 바라는 것이 있다면. 개인적 취미로 성경책을 한 권씩 모아두고 있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말이다. 가령 성경책 100권이 모아지면 그것을 봉고차에 싣고 통일된 북녘 고향으로 가려고 한다. 내가 고마운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도 감사하지만 무엇보다 자유의 땅에 와서 교회로 나가 하나님 믿고 신앙생활을 하였기에 오늘날 이렇게 많은 자격증과 상장을 탔다. 이것을 통일 후 고향사람들에게 꼭 자랑하고 싶은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저작권자 ⓒ 통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