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 1세대들의 다사다난한 생애 통해 업적과 정신 기린다

93인 증언 ‘두고 온 고향 남기고 싶은 이야기’

림일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3/01/12 [12:00]

실향민 1세대들의 다사다난한 생애 통해 업적과 정신 기린다

93인 증언 ‘두고 온 고향 남기고 싶은 이야기’

림일 객원기자 | 입력 : 2023/01/12 [12:00]

[이명우 실향민 증언도서 명예발간위원장]

 

한 해가 다 저물어가던 작년 1228, 서울 종로 구기동 이북5도위원회 통일회관서 다소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다. 93인 실향민들의 애환을 담은 도서 두고 온 고향 남기고 싶은 이야기발간식(출판기념회)이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분단 역사이기도 한 70여년 실향민 역사에서 처음 있은 일이다. 그동안 여러 실향민들의 개개인 자서전은 다소 있었어도 이렇게 거의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 제목의 책자 속에 기록된 것은 초유의 일이다. 정말 놀라운 기록이다.

책속의 주인공인 실향민 1세대 어르신들과 가족, 관계자 등 수십여 명이 참석했다. 출판기념행사에서는 취재원 인터뷰 동영상 시청에 이어 관련자들의 상세한 경과보고가 있었다. 심금을 울리는 대목이 많았다.

2권으로 된 93인 실향민 증언도서 두고 온 고향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모두 1,198쪽의 분량이다. 세상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 많다는 것이다. 이명우 실향민 증언도서 명예발간위원장을 만났다.

 

- 실향민 증언도서 발간 계기가 알고 싶다.

18대 평남도지사로 재직할 때인 2년 전 두 번에 걸쳐 평남을 빛낸 인물’ 90인의 실향민 1세 어르신들을 선정해서 그분들의 생애를 정리해 두 권의 책을 낸 적이 있다. 평범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자기도 증언하겠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인 분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이후 21대 명예시장군수단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했다. 1세 어르신들의 월남 후 70여 년간의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직접 인터뷰해 이를 책자와 영상으로 제작해보자고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다. 이것이 원동력이 되었다.

 

 


- 도서 발간구상을 하게 된 이유는.

시간은 정말 살같이 빠르다. 우선은 병마와 고령으로 인해 점점 줄어드는 실향민 1세대 어르신들의 다사다난한 생애를 통해 그분들의 업적과 정신을 계승하자고 함에서이다. 그리고 후계세대들에게 훌륭한 고향 선대 어르신들을 거울로 삼아 나라를 사랑하고 애향심을 길러 평남인의 자긍심을 함양시키고자 해서이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이번에 인터뷰한 실향민 1세대 어르신들의 고귀한 증언은 어쩌면 우리 대한민국 건국의 산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는 기록이다. 후세들이 그 역사를 보면서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할 것이다. 이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의 증언과 모습을 이제 기록 못하면 영원히 묻힐 수도 있겠다는 절박감이 깊이 들었다. 솔직한 말로 10대 시절의 고향을 기억하는 실향민은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평남을 빛낸 인물’ 90인의 실향민 1세대

어르신들 선정해서 그분들 생애를 정리해

두 권 책을 낸 적 있는데 의외로 반응 좋아

 

고령으로 인해 점점 줄어드는 어르신들의

다사다난한 생애를 통해 업적과 정신 계승

후계세대들에게 거울로 삼아 나라 사랑하고

애향심 길러 평남인의 자긍심 함양 위해서

 

 - 주로 어떤 분을 선정하였는가.

공무원, 군인, 회사원, 기업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분들로 모두가 민족과 국가의 지도자였다. 자신과 가족의 안위보다 나라를 먼저 사랑하고 헌신했다. 맨주먹으로 기업을 일으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창조에 기여한 분들이었다.

취재원 93명 중 72명이 평안남도 출신의 실향민 1세대 어르신들이고 나머지는 황해, 평북, 함경도 등 다른 도 출신 실향민들이다. 현재 실향민 최연소는 72세이고 최장수는 100세 이상이다. 88세 이상 실향민은 대략 5만 명 정도다.

 

- 취재단은 어떻게 구성했나.

도서 두고 온 고향 남기고 싶은 이야기발간위원회를 발족하고 김건백 명예평양시장 겸 평안남도 16개 시·군 대표군수가 위원장을, 내가 명예위원장을 맡았다. 발간위원으로 김남길 명예진남포시장을 비롯한 15명이 활동했다. 매월 1~2회 인터뷰 관련 회의를 진행하였다. 16개 시·군 추천 58, 도지사·유지 추천 15, 16개 시·도지구 추천 16, 해외도민회 추천 4인이다. 행정지원은 평안남도 사무국이 했다.

 

- 인터뷰는 어떤 방법으로 하였나.

실향민 1세 어르신들이 대부분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그분들을 찾아 가서 취재하는 방식으로 했다. 이북5도위원회 대구사무소서 경북·대구, 부산사무소서 부산·경남·울산, 광주사무소서 광주·전남, 전북사무소서 전북, 대전사무소서 충남·대전·충북·세종, 인천사무소서 인천지역 거주 실향민들을 만나 취재하였다.

 

발간위원회 발족... 김건백 명예평양시장 겸

평안남도 16개 시·군 대표군수가 위원장 맡아

발간위원 김남길 명예진남포시장 등 15명 활동

 

대부분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 찾아 가서 취재

취재원 93명 중 72명이 평안남도 출신의 1세대

현재 최연소는 72세이고 최장수는 100세 이상

88세 이상 실향민은 대략 5만 명 정도로 예상

 

 - 해외 취재원도 있던데.

미국 필라델피아 이북도민협회의 도움을 받아 현지 거주 실향민 4명을 영상인터뷰 하였다. 사전에 메일로 질문지를 보내고 영상을 촬영했다. 이번에 전국 이북5도위원회 지방사무실에서 직접 만나 인터뷰한 사람은 76명이고 나머지 17명은 서면으로 했다. 이유는 이북에 남겨진 가족·친인척들의 안전 때문이었다. 사실 전쟁 때 가족은 이제 별로 없겠지만 후손들이 이북에 남아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 특별히 기억에 남는 취재원은.

취재원 A씨는 1·4후퇴 때 홀로 넘어와서 군부대 노무자생활 10년간을 마쳤다. 이후 어디 갈 곳이 없어 해당부대 장교의 고향(울산 언양)에 가서 배 밭을 샀다. 다음 베트남에 가서 돈을 벌어 배 밭을 일구어 농업기업인이 되었다. 지역에서 손꼽히는 거부가 된 그는 울산이북도민회를 통해 매해 거액을 기부하고 있다.

취재원 B씨는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피란을 내려오던 중 아버지의 손목을 놓쳐 고아가 되었다. 이후 서울에서 공부를 했고 어느 날 충무로에서 우연히 헤어진 아버지와 계모를 만났다. 눈물을 머금고 다시 아버지와 헤어졌고 악착같이 일해 돈을 벌었다. 지금은 후손들 모두 사회의 훌륭한 사람들로 성장시켰다.

 

- 평남 출신의 유명인사가 있다면.

한명숙 전 국무총리(평양),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대동군), 가수 현미(강동군), 하늘나라로 간 배우 송재호(평양), 6·25전쟁영웅 백선엽 장군(강서) 등이 평양남도 출신 실향민이다. 이 외에도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과 해방, 6·25전쟁 승리를 위해 그리고 오늘의 경제대국의 번영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신 많은 분들이 있다.

 

- 이번 사업 총평을 해준다면.

많은 어르신들이 평소 가까운 사람들 심지어 가족에게도 잘 말하지 않은 고향 애환까지 허심탄회하게 말씀해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예로부터 범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였다. 모두가 영웅들이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서 들을 수 없는 고귀한 증언을 이렇게 도서와 영상으로 남겼으니 이것이 국가유산이 아니고 뭐겠는가. 언젠가 통일이 되었을 때 후손들이 오늘의 실향민 1세대를 반드시 기억해주리라 확신한다. 꼭 그래야만이 그들이 과거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서 더욱 번영할 것이다.

 

 어르신들이 평소 가까운 사람들 심지어

가족에도 잘 말하지 않은 고향 애환까지

허심탄회하게 말해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

 

영웅들의 고귀한 증언 도서·영상으로 남긴

이것이 국가유산...통일이 되었을 때 후손들

실향민 1세대를 반드시 기억해주리라 확신

 

고향이 어디인가.

19477월 평안남도 양덕서 태어났다아버지는 양덕군청과 금융조합서 근무했다. 해방 후 들어선 김일성 공산정권의 종교탄압, 재산몰수 등에 실망했다고 한다. 이듬해 12월 부모님은 형님과 나를 데리고 남하했다아버지가 서울 을지로 6가서 잡화장사 할 때 북한군의 침공으로 발발한 6·25전쟁이 터졌고 우리 가족은 충청남도 논산으로 피란을 갔다. 이후 1959년 서울 금호동으로 올라와 정착하였다.

 

- 아버님에 대한 추억이 궁금하다.

전시에는 군대에서 젊은 남자들을 노무자(군부대에서 일하는 사람)로 많이 끌어갔다. 아버지도 차출되었는데 어머니가 남편을 끌어가려면 우리 4식구도 데려가라. 남편이 없이 우리는 어떻게 사는가?”며 항변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음력설이나 추석 때 밤이면 고향 양덕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다. 계란도 삶아 먹을 정도의 온천이 유명하고 말씀하시면서 우리 형제에게 너희들은 꼭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하셨다.

- 어린 나이에 들었던 생각은.

유년시절 또래 친구들이 방학이면 기차와 버스를 타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는 시골로 놀러간다고 할 때 나는 그럴 수가 없으니 막연한 마음으로 마냥 부러워했다. 그것도 아동시절 잠깐 있었던 즐거운 시간인데 왜 그렇게 가슴이 먹먹했던지.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하여 꼭 남보다 뭐든 잘 돼야겠다는 강한 의욕이 생겼다.

 

실향민 1세대로써 이북도지사 역임은

나를 마지막으로 끝이라고 봐야 할 듯

18대 평안남도지사 직무를 역임하는

1053일간 매일 일기처럼 기록한 자료

 

1세대 어르신들과 그 후손들의 이야기

개인적으로 통일의 애환을 남긴 사람들

이란 제목 하에 에세이집을 집필을 계획

 

사회생활 경력은 어떻게 되나.

당시는 사회적 향학열의가 대단히 높았다. 3년간 다녔던 경기공업전문학교를 중퇴하고 대학을 가려고 이듬해 검정고시를 봤는데 합격하였다. 1971년 연세대학교 상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산업은행(지금의 우리은행 전신)에 입행하였다이후 3년간 군() 복무를 마치고 1974년부터 한국산업리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 후 국민리스 이사로 재직 IMF 이후 퇴직하여 2001년 한미기초개발건설회사를 인수해 2019년까지 전문건설업체로 경영했다. 2005년 단국대학교 대학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고 명지전문대학교 경영과 교수로 재직했다.

 

18대 평안남도지사를 역임했다.

지난 2014년부터 평안남도중앙도민회 부회장 직무를 2019년까지행정자문위원을 2회 연임하였다. 20195월부터 양덕군민회장을 역임했고 기억에 남는 일은 군민회 깃발과 조기(애도깃발)를 군민들의 아이디어로 교체한 것이다.

그리고 20198월부터 20227월까지 1053일간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제18대 평안남도지사를 역임했다. 행정안전부장관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 차관급 공무원이다. 개인적으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 재임기간 남긴 성과가 있다면.

이북5도위원장 겸 평안남도지사를 역임하며 202011월 강원도 속초시립박물관서 일제강점기 우리민족의 자존심을 건 대표적 항일투쟁인 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사진전을 열었다. 속초에는 국내 유일의 실향민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그 후세(2~3)들이 대거 살고 있다. 또한 평안남도 이북도민을 위한 후원금모금 및 전달사업을 꾸준히 진행한 것이다. 후계세대 교육사업은 정말 중요하다.

 

- 앞으로 계획이 듣고 싶다.

실향민 1세대(이북에서 해방 ~ 6·25전쟁기간 남하한 사람)로써 이북도지사 역임은 사실상 나를 마지막으로 끝이라고 봐야 한다. 이제는 후계세대가 바턴을 이어가야 한다. 18대 평안남도지사 직무를 역임하는 1053일간 매일 같이 일기처럼 기록한 자료가 있다. 실향민 1세대 어르신들과 그 후손들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가칭 통일의 애환을 남긴 사람들!’ 이란 제목 하에 에세이집을 집필하려고 한다.

 

- 주변에서 칭찬이 자자하다.

부끄럽다. 똑같은 실향민으로써 이 나라 자유민주화와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적을 쌓고도 꿈에도 소원인 이북고향 땅 한 번 밟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나시는 어르신들이 너무 많아 가슴이 아프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아픔이다.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고자 작은 후원금을 내고 있는 힘자라는 것 도왔을 뿐이다.

꼭 하고 싶은 말은 이번 실향민 93인 증언도서 두고 온 고향 남기고 싶은 이야기와 인터뷰 영상물은 100% 이북도민 평남도민들의 후원금으로 제작하였다. 이 지면을 빌어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에게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머리 숙여 드린다. 앞으로 위와 같은 사업은 정부에서 재정을 지원해줬으면 한다. 실향민 1세대 어르신들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들의 기억이 없어지기 전에 귀한 자료를 남겨 후계세대에게 대한민국 분단과 전쟁, 건국의 역사를 꼭 알려야 한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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