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와서 대동강 숭어 국 맛을 못 보면 평양을 다녀갔다는 얘길 말라”

송광호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 북녘땅의 빛과 그림자(下)

송광호 북미특파원 | 기사입력 2022/12/21 [16:24]

“평양에 와서 대동강 숭어 국 맛을 못 보면 평양을 다녀갔다는 얘길 말라”

송광호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 북녘땅의 빛과 그림자(下)

송광호 북미특파원 | 입력 : 2022/12/21 [16:24]

개성 판문점은 묘향산 등과 함께 늘 북한 필수 관광코스다. 지금은 관광인원 수가 늘어나 대형 버스 등 주로 자동차운행이 많지만, 첫 개성방문 경우는 평양에서 밤12시 침대열차를 이용했다.

 

개성은 북한도시들 중 가장 많은

이산가족이 살고 있어...안내원은

이산가족 수는 80%이상으로 추산

 

북한의 열차는 단선이다. 평양에서 개성까지는 약6시간 걸린다. 개성 자남산(子南山)려관(호텔)에 짐을 풀었다. 나중 경험한 평양에서 원산 행도 마찬가지. 자정에 기차는 떠난다. 모스크바 특파원당시 모스크바에서 밤12시 침대열차로 페테르부르크(전 레닌그라드)에 닿을 때와 같은 시간대다. 자정시간 밤 열차이동은 공산국가 특성인 것 같다.

 

개성은 북한도시들 중 가장 많은 이산가족이 살고 있다고 들었다. 안내원은 이산가족 수는 80%이상으로 추산했다. 북강원도 경우완 반대 경우였다. 북강원도청 고위급 공무원(원산)“6.25전쟁 전에 살던 강원도 주민은 거의 고향을 떠나 별로 남아있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부터 옮겨온 주민들이 많다.”고 밝혔다.

 

 


 개성 남대문을 지날 때였다. 안내원이 차를 세우더니 원하면 남대문 위에 올라가도 된다.”고 여유를 보였다. 별로 내키지 않았다. 누가 국보급 건축물에 올라 폼을 잡고 수선을 떨랴. “서울 남대문 경우는 누구든 함부로 오르내릴 수 없어요. 여기 개성남대문은 누구나 오를 수 있는 모양이지요?” “그렇진 않습니다. 선생들에게만 특별기회를 주려 했을 뿐이요.”

 

나는 남쪽 판문점에서 자유의 집을 가본 적이 없다. 북쪽 판문각은 두 번 방문했다. 한 인민군관이 해외교포들을 모아놓고 “6.25는 북침이라는 설명을 장황히 했다. 누군지 남침인데..”하고 속삭였다. 왜 교포관광객들에게 남침, 북침을 새삼 부각시키려는지 답답했다.

 

북한에선 미국에 대한 뿌리박힌

증오감정 영향인지 미주교포들에

대한 인식 또한 좋지 않았다

 

서울출생인 나는 6.25(1950)를 만36개월 때 겪었다. 일요일 갑작스런 남침에, 곧 한강교까지 폭파돼 남으로 피난을 못 갔다. 어머니와 한강변에서 나룻배를 기다리며 토마토를 잔뜩 실은 지게꾼에게서 토마토를 먹던 일이 생생하다. 이 기억 때문에 나는 성인이라도 서너 살 어린이 앞이라도 처신을 조심한다. 어린 나이라도 사물을 인식하는 두뇌는 있다고 본다.

 

북한에선 미국에 대한 뿌리박힌 증오감정 영향인지 미주교포들에 대한 인식 또한 좋지 않았다. 북 주민들의 미군증오는 무엇보다 황해()도 신천군 신천읍(사리원부근)에서 일어난 주민살육사건 때문이라 한다. 믿기 힘들지만 미군이 50여 일간 황해도 신천 땅 점거 때, 군 주민들 4분의1에 해당하는 35천여 명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1018일 방공호에 가두어 놓고 휘발유로 불태웠으며, 또 생매장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 했다. 가장 잔인무도한 살육만행은 127일 미군들이 원암리 밤나무골 화약창고에 어머니와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무려 910여명을 살해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오늘 그 밤나무 골에는 그때 희생된 어머니 묘400개와 어린이 묘102개 합장묘가 역사의 증거로 남아있고, 신천 박물관에는 당시 희생된 사람들이 남긴 유물과 흉기들, 당시 사진자료들이 전시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왜 우리가 미국에 증오심이 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오.”라고 말했다.

 

공부를 잘해도 수영과 태권도를

잘못하면 우등생이 될 수 없으며

태권도4단 이상이면 군대가 면제

 

북한에서 지난80년대까지 운동종목 중 야구경기가 존재하지 않은 것도 미국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심 때문이라고 들었다. 훗날 북에서 야구를 허용했다고 들었지만 얼마나 많은 야구인구가 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대신 농구와 축구는 북에서 대대적인 인기종목이다. 농구는 전국 주민운동으로 보급될 정도로 선호하며, 북한 장웅IOC(국제올림픽위원)이 농구선수출신이다. 한때 국제적으로 소개됐던 2m35cm 리명훈 선수는 북미 프로농구(NBA)진출을 위해 캐나다 오타와에 와서 연습도 했으나 결국은 좌절돼 돌아갔다.

 

수년전 고향방문 때 백두산을 다녀온 한 뉴욕교포는 리명훈이 백두산 안내원 일을 한다고 함께 찍은 사진을 내게 보냈다. 확인해 보니 키가 큰 다른 운동선수출신이었다. 또 북에선 특히 수영과 태권도 두 체육종목은 절대 필수과목이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수영과 태권도를 잘못하면 우등생이 될 수 없으며, 태권도4단 이상이면 군대가 면제가 된다고 들었다.

 

평양의 현대적 건물. 사진 송광호


하루는 해외영접부 김선옥 부부장(44년생)과 인터뷰할 때다. 그녀는 북한정부 정책을 설명하던 중, 방북한 미주교포들에 대해서 불만을 토했다. (북한에서 ()”명칭을 지닌 간부가 사실상 그 부서 실무책임자나 다름없다.) 어느 부서이고 최고책임자인 부장, 국장, 주필 등은 단순명예직에 불과하다.

 

김 부부장은 우리는 남쪽이 경공업부문에서 더 발전한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경공업이야 맘만 먹으면 금세 따라 잡을 수 있다.”우린 조국통일신념이 강하고, 주석 영도아래 당과 인민이 굳게 뭉쳐있어 경공업 발전은 언제든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주교포의 겸손치 못한 고향방문에 불만을 토했다. 내가 본 대부분의 북미교포들 역시 자본주의하 자유로운 타성에 젖어선지 행동에 거리낌 없었고, 가끔 도에 지나치는 경우를 보였다. 경제적으로 자신을 가진 때문인지 모르겠다. 북한 옛 고향을 찾아가서도 거만스럽고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어 안내원과 다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평양에 와서 대동강 숭어 국 맛을

못 보면 평양 다녀갔다는 얘길 말라는

말 있어...그만큼 평양 숭어 국이 유명

 

옛날 우리 집은 환경이랑 아주 좋았는데 왜 이리 형편없이 변했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누가 그랬소?” 물론 일부 교포들 태도겠으나 담당 책임지도원이 난색하고 곧잘 말다툼까지 벌어진다는 것이다.

 

김 부부장은 평양에서 그 먼 고향까지 기차든, 자동차든 성의껏 안내해 줬으면 그 고마움을 알아야지, 예의도 없이 그럴 수 있나요?”라고 얼굴을 찡그린다. 북한 부부장의 말은 백번 맞는다.

 

그러나 실상 꿈에 찾던 고향을 다녀온 캐나다교포들 역시 단 한명 만족을 표명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고향 함경남도 북청(북청 물장수, 북청 사자놀이로 유명)을 다녀온 한 교포는 북청 시내에 거대한 김일성동상이 만들어져 예전 길을 막아버렸다.”고 투덜댔다.

 

그러면서 예전엔 집 마당에 꽃들을 심어 운치가 있었는데, 이젠 집집마다 마당에 꽃 대신 배추밭이 돼 도대체 북청이 도시인지, 시골인지 구분조차 힘들게 됐다.”면서 탄식했다. 그렇게 그리던 보고 싶던 고향땅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이다.

 

예로부터 평양에 와서 대동강 숭어 국 맛을 못 보면 평양을 다녀갔다는 얘길 말라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평양 숭어 국이 유명했다. 평양거리에서 숭어국 간판을 발견할 수 있어 하루는 숭어 국을 사먹자고 고집해 그 식당을 찾아갔다.

그러나 문이 닫혀 있고, 언제 다음에 문을 여는지 기약 할 수 없어 결국 포기한 적이 있다. 아마 대동강 숭어들이 그간 어려운 불경기에 낚시꾼에 전부 잡혔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송광호 북미특파원· 본지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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