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민 2명 강제북송은 3만5천 탈북민 명예와 관련된 문제”

[인터뷰] 김흥광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 실태조사 TF 민간위원

림일 기자 | 기사입력 2022/08/03 [23:26]

“어민 2명 강제북송은 3만5천 탈북민 명예와 관련된 문제”

[인터뷰] 김흥광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 실태조사 TF 민간위원

림일 기자 | 입력 : 2022/08/03 [23:26]

지난 7월 25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문재인 정부시절인 2019년 11월에 발생한 탈북어민 2명 강제북송사건 관련자 처벌과 진상규명촉구 200여명 탈북민 집회가 있었다.

 

‘남북통일당’, ‘전국탈북민연합회’ 등이 주관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탈북어민 2명 판문점 강제북송장면, 북한서 공개총살장면 포퍼먼스를 가졌고 이어 방송차의 뒤를 따라 시가행진을 벌렸다. 탈북여성 4명과 남한목사 1명이 더불어민주당의 탈북민홀대정책에 항의표시로 삭발에 참가했다.

현재 이 사건에 대해 여당인 국민의힘은 “헌법과 국제법을 위반한 반인도적, 반인륜적 범죄행위”라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엽기적 흉악범인 북한주민도 우리 국민으로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며 맞서고 있다. 요즘 일부 탈북민들 속에서 “이러다가 언젠가 정권이 다시 민주당으로 바뀌면 우리도 북한으로 보내지 않을까?” 하는 근심도 있다. 서울 강서구서 탈북민인 김흥광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 실태조사 TF 민간위원을 만났다.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 실태조사 TF는.

-7월 12일 여당인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을 위원장으로, 신원식 의원을 부위원장으로 하는 당 내 ‘국가안보문란 실태조사 TF’가 출범하였다. 탈북민인 태영호·지성호 의원을 포함하여 7명의 국민의힘 의원이 참여하고 있다. 민간위원은 5명인데 전직 장군출신이 3명, 변호사 1명, 그리고 탈북민인 나다. 모두 12명이다.

앞서 6월 21일 국민의힘은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규명 TF’를 발족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월북자’로 규정한 2년 전의 이 사건을 다루면서 2019년 11월 판문점 탈북어민 2명 강제북송도 문제가 있다고 보아 출범했다.

▶그동안 결과를 얻었는가.

-TF가 출범하면서 1차 회의를, 15일에는 2차 회의를 가졌다. 이후 북한서 바다일(고기잡이) 경험 있는 탈북민을 찾는 공고를 여러 탈북민 단톡방에 올렸다. 27명의 탈북민이 전화(문자)가 왔다. 그중 최근에 온 제보내용의 신빙성까지 갖춘 3명의 탈북민을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한 TF 3차 회의장에 증인으로 불렀다.

▶어떤 내용의 증언이 있었나.

-탈북민 A씨는 “북한에도 선박규칙이 있다. 선박이 바다에 수장하려면 보위부와 무력부초소를 통과해야 한다. 선원 전부 바다출입증이 있어야하기 때문에 18명이 선박에 탑승했다는 것은 애당초 말이 되지 않는 사건” 이라고 일축했다.

북한 청진수산사업소 지도원(대리) 출신 탈북민 B씨는 “북한당국이 탈북방지를 위해 출항하는 선박과 탑승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왔다. 오징어잡이 배의 규모와 조업환경을 고려했을 때 18명 인원이 탑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탈북민 D씨는 “오징어 조업은 야간에 이뤄지기 때문에 야간에 선실에서 취침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조업 위치도 선장이 개인별로 지정하고 지정 위치를 자의적으로 바꿀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수십 년간 살면서 단 몇 명이라도 집단 살해한 그런 흉악한 사건을 들어본 적이 없다. 배 사람들은 설령 바다에서 문제가 생겨도 ‘육지에 가서 해보자!’하는 생활습관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날 보안상 가명을 사용한 탈북민들의 설명에 따르면 16명의 5가구도 김책시에서 모두 사라졌으며 어디로 갔는지 생사도 모른다고 했다. 이후 김책시 거주 주민의 증언을 통해 북송된 2명의 청년(탈북어민)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했다.

결국 월남도주분자(탈북어민)들은 3일도 안 돼 총살형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하였다. 북한은 인터넷이 없기에 입소문이 대단히 빠르다. 가령 어느 지역에서 특정사건이 발생하면 2~3일 지나 전국에 소문이 파다할 정도이다.

▶그러면 추정하는 가설은 무엇인가?

-탈북민들의 증언을 근거로 종합해보면 2019년 10월 중순 경 함경북도 김책항에서 16명은 탈북하려던 5가구의 주민이었다. 대기 중인 오징어배서 선원 1명이 하선하여 16명을 인솔해서 승선하기로 했으나, 보위부에 체포되었고 이후 배에 남아있던 2명이 낌새를 느끼고 체포 직전 남하했다고 증언했을 것으로 추론한다. 결국 배에서 16명을 살해했다는 것은 북한당국이 탈북브로커 2명을 송환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리고 아주 고도의 전략으로 꾸며낸 거짓말인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런 내용을 합동신문을 통해 확인했고 감추었을 것이다.

정리하면 김책시에서 16명의 북한주민을 태우고 탈북하려던 브로커 2명(탈북어민) 이다. 자신들의 계획이 불발되었고 이를 북한이 청와대 안보실에 “16명의 주민을 살해한 범인 2명이 남으로 내려간다”고 통보했다. 마침 부산에서 있을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11월 26일)에 김정은을 초대하려고 애쓰던 문 정부였으니 혹시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면 자기들의 요구(김정은 부산방문)가 성사되지 않을까 했던 것 같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북한의 통보는 11월 1일에 있었고 귀순어민은 2일 나포되었다. 그리고 통상 몇 주 걸리는 귀순자조사를 3일 만에 끝내고 11월 5일 통일부차관 명의의 전통문을 북에 보내 “어민들을 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7일 판문점을 통해 북송했다.

이후 북한은 11월 21일 “형식적인 북남수뇌상봉은 하지 않는 것만도 못하다. 문 대통령이 특사라도 방문하게 해달라고 간절한 청(친서)을 몇 차례나 보내왔다. 남조선당국이 죄스러운 마음을 삼고초려해도 모자랄 판국”이라고 했다. 북한의 폭로가 없었다면 친서전달 사실은 지금까지 비밀에 부쳐졌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11월 21일 “형식적인 북남수뇌상봉은

하지 않는 것만도 못해…문 대통령이 특사라도

방문하게 해달라고 청(친서)을 몇 차례 보내와

남조선당국이 죄스러운 마음으로 삼고초려해도 

모자랄 판국”이라고 폭로 북의 폭로가 없었다면

친서전달 사실은 비밀에 부쳐졌을 가능성도 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왜 북한에 비굴했다고 보나?

-정말 궁금하다. 일국의 대통령이라 하기에는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친 사람이다. 문 정권 내내 북한서 얼마나 한국대통령을 폄하했는가. ‘삶은 소대가리’, ‘겁먹은 개’, ‘특등머저리’, ‘미국산 앵무새’ 등 이런 막말에 아무 반응도 안 보인 것이 너무 이상하다. 2018년 9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당국이 문재인에게서 어떤 치명적인 약점을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개인적 생각이다.

 

▶최근 탈북민 입국이 줄었다.

-정확히 말하면 문재인 정부 시절이다. 연평균 수십 명 정도였다. 물론 코로나19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 않다고 본다. 탈북어민 2명 강제북송 사진과 동영상은 남한뿐 아니라 역사기록 차원서 북한도 꼭 남겨두었을 것이다.

모름지기 주민들을 강당이나 회관에 모아 놓고 탈북어민 2명 판문점 귀환사진(영상)을 보여주며 “김정은 장군님의 명령으로 남조선 당국이 민족반역자(탈북자)들을 송환해준다”고 할 것이다. 북한당국의 주민통제 체계는 세계 최고다.

 

함경남도 함흥 출생…평양 김책공업종합대학

전자계산기학부, 2년 후 본대학연구원을 졸업

김책(남 1903~1951)은 김일성 항일전우 이름

함북 성진군을 그의 이름 붙여 김책시로 불려

 

▶이 사건 해명의 정의는 뭐라고 보나.

-정의와 불법의 차이다. 정말이지 이 사건은 반드시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한다. 안 그러면 이런 사례가 남아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독재를 멈추지 않는 이상 탈북민 행렬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단순 탈북어민 2명 북송문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대 전체(독재)주의의 인권문제이다. 그리고 분명 3만 5천 탈북민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고향이 어디인가.

-1960년 4월,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함흥시인민위원회(함흥시청) 간부로 근무했고 어머니는 평범한 주부였다. 지난 1982년 평양에 있는 김책공업종합대학 전자계산기학부를, 그 뒤 2년 후 본대학연구원을 졸업하였다.

참고로 김책(남, 1903~1951)은 김일성의 항일전우 이름이며 함경북도 성진군을 그의 이름을 붙여 김책시로 불리고 있다. 이후 1993년까지 함흥콤퓨터기술대학에서, 2003년까지 함흥공산대학 과학부 교원(교수)으로 재직했다.

사회에서 자본주의 황색바람(외국 영상물) 통제를 강화하라는 김정일의 방침에 의해 2002년에 조직된 130상무(상설기구) 성원으로 발탁되어 근무하였다. 단속한 ‘반동물품’(외부에서 들어온 CD, USB 등)을 자연스럽게 봤으며 이후 조심스럽게 아버지(김일성)와 아들(김정일)이 대를 이어 통치하는 노동당을 의심했다.

 

북한에서 전문학교(전문대), 대학교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지식인들로 조직된

탈북민단체인 사단법인 ‘NK지식인연대’는

2008년 서울에서 설립…인터넷방송 운영

탈북지식인들이 만든 잡지 ‘북녘마을’ 창간

 

▶탈북 동기는 무엇인가.

-다소 권위적인 130상무 근무시절 조선노동당 함흥시당위원회 근무하는 친구에게 외부CD를 준적이 있다. 훗날 보위부에 발각되어 1년간 자격정지를 받았다. 당원으로 엄중처벌을 받았고 부업농장에서 혁명화(무보수 강제노역)를 하였다.

2003년 10월, 대학당위원회서 ‘현실연구’ 출장승인을 받고 중국 국경지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함경북도 회령군당학교로 갔다. 거기서 지인에게 몰래 부탁하여 북한돈 1만원을 주고 두만강을 건넜다. 당시 내 월급이 4.400원이었다.

▶중국에서 느낀 북한은.

-연길에 4개월간 체류하며 북한정권에 분노를 가졌다. 내가 당간부양성기관인 함흥공산대학의 교원으로 충성한 김일성, 김정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독재 정치가 북한을 가난한 나라로, 2천만 인민이 굶주리는 세상으로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남한입국 방법과 경로는 개인정보 차원서 생략하겠다. 2004년 2월 서울에 왔다.

 

한동안 중단했던 유튜브 김흥광튜브(TV)

다시 활성화…현재 김흥광TV를 포함해

탈북민 운영하는 시사유튜브 6~8개 정도

조만간 새로운 모습으로 구독자 찾아갈 것

 

▶남한생활 초기 어떻게 보냈나.

-탈북민정착기관인 하나원을 수료한 뒤 ‘한국정보보호교육센터’에서 6개월간 소프트보안기술을 공부했다. 이후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정보처리기사자격증을 취득했고 한신대학교, 경기대학교에서 2년간 컴퓨터운영체계 강의를 했다.

언제인가 실향민 출신이며 전 국회의원인 김일주 북한이탈주민재단 이사장을 우연히 만났다. 그의 전문가다운 조언과 건의로 2006년부터 북한이탈주민재단(남북하나재단)에 취직하여 상담과장, 정착지원과장으로 근무하였다.

▶현재 대표를 맡은 NK지식인연대는.

-북한에서 전문학교(전문대), 대학교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지식인들로 조직된 탈북민단체인 사단법인 ‘NK지식인연대’는 2008년에 서울에서 설립되었다. 인터넷방송을 운영했고 탈북지식인들이 만드는 최초의 잡지인 ‘북녘마을’을 창간했다. 또한 국민들을 상대로 안보강연을 했으며 암흑의 땅 북한으로 세상의 진실을 담은 USB, CD 등을 들여보냈다. 아울러 탈북민 구출과 사회적기업도 함께 운영했다.

앞으로 계획은 유튜브 김흥광튜브(TV)를 다시 활성화하려고 한다. 조만간 새로운 모습으로 구독자들을 찾아갈 것이다.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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