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 토요일이야, 얼른 오너라!

박신호 작가 | 기사입력 2022/05/26 [22:10]

[모란봉] 토요일이야, 얼른 오너라!

박신호 작가 | 입력 : 2022/05/26 [22:10]

<박신호 방송작가>

갈수록 사전 준비할 게 많아져 간다. 나이가 들수록 사전 준비를 안 했다간 큰 낭패를 당하기 일쑤이기도 해서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던 일도 미리미리 챙겨 놓지 않으면 수습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에 이르곤 한다. 가령 잠자는 것만 해도 그렇다. 졸리면 자면 되는 건데, 먼저 시계를 보고 지금 자도 괜찮은가 잠시 생각하게 된다. ‘어젯밤에 잠을 덜 잤었던가?’ ‘낮잠을 잤었던가?’ 아니면 오늘 많이 걸었거나 운동을 했던 가 등등을 생각하게 된다. 왜냐면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간 쉬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거나 오밤중에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해 고생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끔 그러는 게 아니라 허구한 날 되풀이니 탈이다.

 

잠은 초 잠이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3 시간은 푹 자야 한단다. 그래야 밤잠을 좀 설쳐도 다음날 머리도 덜 흐리고 덜 지끈댄다고 한다. 하지만 늙은이들 대부분이 밤잠을 설친다. 갓난아이 모양 시도 때도 없이 깨기 일쑤고 화장실은 왜 그리 드나들게 되는지 밤새 고생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정신신경과에 가 수면제를 타다 먹기까지 하는데 이런 게 다 늙어 그러려니 하면 될 텐데, 그건 늙어보지 못한 사람들 얘기다.

 

내 경우는 잠자리 머리맡에 숙면 촉진제랄 수 있는 책이나 잡지, 신문, 핸드폰, 라디오 등을 꼭 놔둔다. 자다가 깨 다시 잠이 쉬 오지 않을 것 같으면 우선 라디오를 튼다. 듣다 보면 잠이 드는 때가 많다. 그래도 까딱 안 하면 핸드폰을 켠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으면 텔레비전을 보러 나간다. 텔레비전에서는 수십 개 채널에서 영화와 교양 프로, 스포츠를 줄줄이 방송하고 있다.

 

잠을 이를 수 없는 강력한 방해꾼이 또 있다. 여생(餘生)이라는 피할 수 없는 절대 과제의 엄습이다. 가끔 농담처럼 하는 말이 “죽음을 미리 걱정하지 말게. 그보다 더 확실한 건 없으니 말이네” 죽는 것 이상 확실한 게 없는데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나 싶지만 그게 그렇지 않은 게 문제다. 오지랖 문제가 아니다. 누구도 경험할 거지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알만한 이들의 부고를 알게 되면 잠시 애석해하다가 곧 몇 살에 타계했나 알려 한다. 대개는 내 또래인 80대 중반 안팎에 많이 타계하지만 가다간 나보다 나이가 적은 이가 먼저 하직하면 가슴이 잠시 쿵 내려앉는다. 그러곤 ‘나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기는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없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등록증’이다.

 

6. 25전쟁이 철이 들기도 전에 생계를 위해 직업전선에 뛰어들게 했다. 70여 년을 직업전선이란 험난한 언덕길을 오르느라 피땀깨나 흘렸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그래도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 눈물을 삼켰다. 그런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늙음이란 언덕 위에 홀로 서 있게 됐다. 더 올라갈 길이 없어진 거다. 앞으로 갈 길은 오로지 가파른 내리막길뿐이었다. 그때부터 끌고 오던 수레가 빠르게 굴러 내려가지 못하게 꽉 잡고 발끝에 있는 힘을 다하며 버텨야만 했다. 그동안 정상을 향해 얼마나 고생했든가, 생각은 사치이고 굴러 내려가려는 수레를 꽉 잡고 있어야만 했다. 한눈팔 겨를조차 없었다. 안 그러면 순식간에 곤두박질쳐 처참한 만년을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번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광주광역시 무각사 청학 스님이 남기신 말씀이 있다. “밖을 바라보며 비교, 경쟁, 시비하면 극락에 살아도 지옥으로 느끼게 된다”, “눈앞이 아니라 멀찍이 바라보며 남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내 곁이 꽃이 얼마나 예쁜지 비로소 알게 된다”

 

북한 김정은도 무서워하는 중2 막내 손주가 매주 토요일을 기다리곤 한다. 학교 다니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매주 토요일을 기다린다. 한데 그 속을 다 아는 아내는 녀석이 들으라고 지나가는 말처럼 “토요일이야, 얼른 와라”

내게는 나날이 토요일이고 일요일이고 공일이다. 그런데도 뭘 더 행복하길 바라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다만 희미하게 알고 있는 건, 나이를 따지고 부고에 민감할 시간이 다 지나가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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