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세월/ 낙엽의 꿈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1/11/11 [15:12]

은빛세월/ 낙엽의 꿈

통일신문 | 입력 : 2021/11/11 [15:12]

요즈음 은빛세월은 마음 둘 데가 없다.

 

중국의 고구려역사 왜곡, 주춤해진 남북 간의 교류, 한없이 내려가기만 하는 경제, 과거의 끈에 매달려 줄타기 하는 정치권 등 마음에 빨간 불이 켜지고, 쓸쓸해지는 가을을 더욱 스산하게 하고 있어 참담함이 온 몸을 주눅 들게 한다.

 

홍안의 얼굴로 고향을 등지고, 아내와 자식도 없이 양노원에 얼마 남지 않은 을 의탁한 친구 생각이 난다.

 

쓸 것 안 쓰고,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헐벗고 굶주리면서 알뜰히 모은 재산 일부를 떼어 郡民행사에 찬조하고, 고향 후배들을 위한 장학기금에 보태고, 나보다 못한 친구 점심 대접도 가끔 한다.

 

이제는 눈감으셨을 부모님과 몰라 볼 정도로 변했을 형제들을 못 만난 반세기의 세월을 외로움에 떨면서도 오직 통일에 희망을 걸고 감격의 순간을 위해 지탱해 왔다.

 

어느 날 그렇게 잘나 보이던 친구가 유명을 달리 했다...모임에서 늘 만나던 낯익은 동향인의 얼굴이 안 보인다... 눈물이 솟아난다. 마음속으로 명복을 빌어준다.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면 언젠가 지나가던 말처럼 가르쳐 주던 고향에 대신 찾아가 보겠다고 약속한다.

 

우리가 다니던 학교와 이제는 많이도 변했을 동네어귀를 찾아가 참으로 오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을 전해 주겠다고 다짐도 한다.

 

꽃다운 젊음을 자유를 위해 바쳤던 젊은 날의 친구 모습도 눈시울에 매달린다.

 

"이보게, 고향에 돌아가거든 전해 달라던 자네의 유언도 아직 지키지 못했네, 먹고 사는 데는 별 문제가 없는데 정말 재미없는 나날일세. 아직 도 부모형제 생사도 모른 채 이고, 날이 갈수록 각박해 지는 세상인심, 고향에 대한 애틋한 감정도 모두 퇴색해 버릴까 걱정이네. 자네가 홀로 간 그쪽 세상은 어떤가. 우리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자네 곁으로 간다 해도 용서하게나."

 

가을바람 따라 거리를 쓸고 있는 낙엽 속에 살아온 세월이 저만치 굴러 가고 있다. 이제 은빛세월의 임무는 끝이 났는가.

 

"파란불이예요, 할아버지 이제 건너가세요."

메마른 손을 잡아끄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을 느낀다.

 

그래, 아직도 희망은 있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의 꿈은 이루어 질 것이다. 또 내가 아니면 어떤가. 아들이 손자가 은빛세월의 꿈인 것을...

 

* ‘은빛세월은 당시의 실향민을 지칭한다.

 

장운영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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