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 집과 공간 그리고 의자

박신호 방송작가 | 기사입력 2021/09/19 [00:48]

[모란봉] 집과 공간 그리고 의자

박신호 방송작가 | 입력 : 2021/09/19 [00:48]

▲ 박신호 방송작가     

집 얘기는 꺼내고 싶지 않다. 세상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 놓기 일쑤인데 굳이 꺼낼 필요가 뭐가 있나. 집 얘기가 싫다. 어쩌다가 집 얘기가 나오면 속을 뒤집어 놓기 일쑤이지 않은가. 하지만 요즘처럼 집에 틀어박혀 살아야 하는 터에 집 얘기를, 나만의 공간을 건너뛸 수만 없을 것 같다.

 

공휴일도 없이 글을 써야만 했을 시절에 따로 내 방이란 게 없어 안방에서 글을 써야만 했다. 그러니 아내는 거실에서 살다시피 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잠을 자야 할 밤이었다. 아내는 매일 눈치를 보다가 정 졸리면 슬그머니 안방에 들어와 한구석에서 쪽잠 자기 일쑤였다. 그래도 모른 척하고 쓰던 글을 마저 끝내곤 했는데 괴로운 게 하나 있었다. 담배였다. 줄담배를 피는 나도 잠을 잘 때 누가 담배를 피우면 잠을 못 자는데 아내는 오죽하리란 생각을 하니 담배를 피우지 못해 글도 제때로 써지지 않았다.

 

더구나 긴긴 추운 겨울밤에 수시로 문 열고 담배를 피울 수 없으니 죽을 맛이었다. 할 수 없이 밤에는 내가 거실에서 글을 쓰기로 했다. 그렇다고 담배를 마음대로 피울 수가 없었다. 북풍 설한에 창문을 열어 놓고 글을 쓰자니 추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창문을 닫아 놓고 담배를 피우자니 부지 부식 간에 괴성을 지르곤 했다.

 

“아 앗~”

처음에는 아내가 놀라 뛰쳐나오더니 다음에는 아들, 딸이 번갈아 나와 내 표정을 살피고는 들어갔다. 가장으로서 위신이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낮에만 글을 쓸 수도 없고, 봄, 여름, 가을에만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일생일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길고 긴 고난의 행군을 하게 됐다. 지겹고 지겨운 나날이었다.

 

드디어 오늘의 집을 장만하게 됐고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됐으며 나만의 쉼터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지겨운 세월이 끝난 것이다. 글을 써도, 책을 봐도, 음악을 들어도, 영화를 봐도, 멋대로 낮잠을 자도 누구한테도 눈길을 받지 않게 된 것이다.

세월은 저절로 흘러간다. 아들과 딸이 출가하고 나니 넥타이를 푼 듯 홀가분했다. 허리도 풀고 앉아 있게 됐다. 그러나 느긋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집이란 공간이 너무 썰렁하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달랑 혼자 집에 있을 때는 시계를 자주 쳐다보게 되고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을 홀로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몇 년 더 흘러가니 혼자만의 공간에 있는 게 행복한 것만이 아니란 걸 몸이 먼저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거실로 자주 나가게 된다. 텔레비전 채널 권을 거머쥐고 희희낙락하던 아내가 힐끔 쳐다본다.

 

“아무래도 텔레비전 한 대, 더 들여놔야 할까 봐?!”

뜬구름 없는 말에 아내가

“극장 스크린만큼 큰 텔레비전이 거실에 있는데 무슨 텔레비전을 또 사겠다는 거유?”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텔레비전 채널로 다투기 싫어서라는 데야 어쩔 건가.

큼직한 텔레비전을 안방에 들여놨다. 안방극장을 만든 것이다. 영화를 보다가 졸리면 침대에 누우면 된다. 이걸 작은 행복이라 하던가.

 

하지만 꼭 그렇지만 않다는 걸 곧 알게 됐다. 앉아 있는 시간이 길수록 허리가 점점 더 아팠다. 의자가 불편해서다. 할 수 없이 주말이면 오는 아들을 앞세워 호화스러운 가구점에 갔다. 별의별 외제 의자가 다 있었다. 10시간을 앉아 있어도 편하다고 했다. 앉으며 값을 봤다. 생각 밖으로 만만치가 않았다.

 

“참 편하게 만들긴 했다만…”

“아버지”

“왜?”

“직구로 사면 싸요”

 

아버지의 검소함을 알고 있는 아들이 씩 웃으며 말했다.

발 쭉 뻗고 누운 듯 앉아 창밖을 내려다보니 황금벌이 펼쳐져 있는 한편에는 그림 같은 하천이 빤짝이며 흘러가고 있었다. 거실에선 아내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박신호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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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평양지하철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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