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은 말한다 “자유가 있는 조국...살만한 가치가 충분한 땅”

[인터뷰] 임혜진 국방부 지원 초빙교육강사

림일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1/08/23 [15:52]

탈북민은 말한다 “자유가 있는 조국...살만한 가치가 충분한 땅”

[인터뷰] 임혜진 국방부 지원 초빙교육강사

림일 객원기자 | 입력 : 2021/08/23 [15:52]

 

 

1970년대부터 북한군(조선인민군) 공식 복무기간은 10년이고 일부 특수병종은 13년이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다소 단축되긴 했어도 8~9년의 군사복무를 한다. 


남한에 배해 1/50에도 못 미치는 북한의 경제력으로 소비 집단의 군인들에게 유족한 물자공급은 매우 어렵다. 군복, 생활용품, 의류, 식품까지 전부 부족한 상태이며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상태에서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은 100만 인민군 장병들에 대한 혹독한 정치사상교육이다. 매일 1~2시간씩 강제적으로 하는 수령충성교육, 자폭정신, 적에 대한 성토학습 등은 북한군을 절대적으로 유지시키는 최후 보루이다. 

아무리 첨단 군사장비로 전쟁을 하는 시대라고 해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군인에게서 목숨 바쳐 국가를 지키겠다는 강인한 정신이 없다면 그것은 패배자나 다름없다. 인천시 논현동에서 임혜진 전 조선인민경비대 특무상사를 만났다. 

 

- 한국에 언제 왔는가? 

2002년 5월 중국, 베트남과 태국을 거쳐 꿈에도 그리운 자유의 땅인 남한에 왔다. 사회정착 생활 초기 보험설계사 10년간 했다. 다소 돈 버는 재미가 붙은 남한생활 10년 만에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를 당했으며 심한 부상을 입었다.  

이때부터 바른 종교적 신앙심을 갖게 되었다. 2012년부터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이듬해부터 신학대학교 용인분교를 다녔다. 2019년 6월‘남북통일전망과 탈북민들의 신앙생활에 대하여’라는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 국방부 지원 초빙교육강사는.

군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안보교육 강사이다. 2019년 3월 국방부 지원 초빙교육강사 워크숍 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자격은 매년 갱신되며 심사기준이 다소 엄격하다. 당연히 강연의 질적 수준도 보지만 대중의 호응도 반영된다. 코로나 이전에는 월 13~15회 강연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절반 수준이다. 그것도 영상으로 한다.  

 

- 어떤 내용으로 강의하는가?

우선 북한주민들의 생활실태를 알려준다. 주민의 10%인 핵심간부 계층은 그런대로 밥 먹고 살지만 절대 과반은 멀건 죽으로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들의 궁핍한 생활은 어디까지나 체제가 잘 못되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식량 구입해올 돈은 없어도 핵과 미사일을 만드는데 필요한 자금은 아끼지 않는 것이 독재정권 노동당이다. 또한 북한에서 수령 동상, 사적관, 박물관 등 우상화시설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주민들은 계속 굶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내용은 내가 군사복무를 했던 경험에 비추어 북한 군인들의 실태에 대해서 알려준다. 북한군은 10년간의 군사복무를 한다. 이유는 수령 독재정권이 청년들을 군대라는 특수집단에 묶어놓아야 통치하기 유리하기에 그렇다. 아까운 청춘시절 10년을 군대에 바치고 제대하는 북한군인들은 정말이지 젊음의 꿈과 희망을 모르고 산다. 

 

- 북한군의 장단점은 뭐라고 보나?

강압적이긴 하지만 정신교육만큼은 북한군이 우세하다고 본다. 총을 쥔 병사는 온 몸이 육탄이 되어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그 강인한 정신력은 대단하다. 자폭정신으로 수령을 보위해야 한다는 끔찍한 정신교육은 강하고 또 강하다. 

단점은 육체건강 상태이다. 내가 군사복무를 할 때는 그래도 1일 배급량이 800그램이었는데 지금은 그 절반 정도라고 한다. 너무나 배가 고파 탈영하고 민가를 습격하는 일부 북한군인들의 모습은 옛말도 아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강압적이지만 정신교육은 북한군이 우세

총을 쥔 병사는 온 몸이 육탄되어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그 철저한 정신력은 강해

 

함북명천에서 1967년 출생, 4남 1녀이고

부친은 군인...고등중학교 졸업 후 군 입대

명칭은 ‘12호 관리소’근... 국가보위부 소속

 

- 우리 국군 장병들을 보며 느끼는 점이 궁금하다.

북한군인들과 신체를 비교하면 국군이 평균 15cm 이상은 크다. 그것도 분명 군사력차이다. 가끔 사병들과 함께 군인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때마다 “여러분이 드시는 이 식사의 수준은 북한군에서 사단장이 받는 수준과 똑같다”고 말해준다. 그러면 쉽게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 고향이 어디인가? 

함경북도 명천에서 1967년에 태어났다. 형제는 4남 1녀이고 부친은 군인이었다. 1982년 온성에서 고등중학교 졸업, 조선인민경비대 제2912군부대에 입대하여 교환수로 근무했다. 부대의 사회명칭은 ‘12호 관리소’로 국가보위부 소속이다. 

사실 북한에는 ‘정치범’이란 말이 없으며 유사한 표현으로 ‘사상범’이란 말을 간혹 쓰기도 한다. 정확히 말해 ‘정치범수용소’ ‘정치범’ 이라는 표현은 남한에서 쓰는 용어이고 북한에서는 ‘이주구역’ ‘이주민’ 등으로 쓰고 부른다.  

 

- 정치범수용소 12호 관리소는 어떤 곳인가?

함북 온성군의 5개 리(里)가 속했다. 한 개 리에 5.000~6.000명, 모두 25.000~30.000명의 이주민이 있다. 12호 관리소는 외곽에 철조망으로 담을 쳤고 그 밑에 깊은 구덩이와 70cm 죽창이 꽂혀있다. 수용소의 시설과 이주민을 관리·감시하는 군인과 사민(민간인)은 모두 700여 명으로 그중 간부들은 40명가량이다. 

자세하게 말하면 관리소 관할 안에는 농장, 벽돌공장, 탄광, 피복공장, 철도, 식료공장 등 많은 시설들이 있다. 거기서 생산되는 농축산물, 석탄, 피복(옷) 등은 모두 최상의 품질들이다. 대부분 평양에 올려가거나 일부는 관리자(군인) 가족들이 소비한다.  

참고로 함경북도 온성군에는 12호 관리소의 성능과 규모가 비슷한 13호 관리소도 있다. 이 2개 관리소에서 생산하는 인민경제소비품(생활용품, 농수산물 등)은 온성군 전체 생산량의 2/3을 차지할 정도도 어마어마한 양이다. 

 

정치범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면 실수로든 

당국 정책 직접 혹은 간접 비난한 사람들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연좌제로 들어오기도 

 

 북에 ‘정치범’이란 말 없으며 유사한 표현으로

 ‘사상범’이란 말 간혹 쓰기도...정확히 말해서 

‘정치범수용소’, ‘정치범’표현은 남한에서 쓰고

 북한은‘이주구역’ ‘이주민’ 등으로 쓰고 불러  

 

-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1986년 가을, 특이한 사건이 터졌다. 남자형제 2가족 11명이 그 완벽한 수용소 철조망을 뚫고 탈출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 삼엄한 철조망과 함정을 어떻게 피해서 탈출했는지 정말 미스터리였다. 그들은 대략 20일 만에 중국에서 북송되어 왔는데 결과는 이주민 1만 5천 명이 모인 장소에서 공개총살 되었다. 

 

- 정치범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일상에서 의도적이든 아니면 실수로든 당국의 정책을 직접 혹은 간접 비난한 사람들이다. 남조선 및 외국방송을 청취한 사람, 종교를 설파한 나이 지긋한 분들도 있다. 본인은 물론 그 가족까지 연좌제로 들어오니 인원이 많은 것이다.

이주민은 수용소에 입소할 때 공민증이 회수되기에 주거장소에 수령인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걸 수 없고 옷에 김일성 배지도 달지 못하며 선거에도 참여할 수 없다. 관리자들은 그들을 가리켜 ‘말하는 도구’ ‘말하는 돼지’라고 한다.

 

- 관리자와 수감자들 간의 문제도 있나?

보위지도원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자택으로 가기에 그 기간 독신생활 한다. 죄수 여자들을 취급하면서 간혹 강간하기도 한다. 죄수 여자들 중에는 “남자와 한 번 연애를 해보고 죽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해가 간다. 성인들의 성관계는 생리적 현상인데 감옥의 종신 죄인이기에 그게 불가능하니 말이다. 

그 결과는 우선 여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영구적으로 사라진다. 추측을 해보면 임신된 아이는 당연히 강제낙태를 시킬 것이며 여자는 따로 수감시키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보위지도원은 6개월~12개월 혁명화(자격정지, 무보수노동)를 받는다.  

권력(인사권)을 쥔 간부들의 성추행은 더하다. 제 마음에 드는 처녀들을 노동당에 입당시켜준다는 명분으로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하는 일도 있다. 그것도 그 신성한 ‘혁명사상 연구실’ 안에서 청소를 시키는 흉내로 위장하고 말이다.  

 제대는 1989년 가을에 제대, 청진경제전문학교(2년제)를 1991년에 졸업했다. 이후 청진공산대학(당일군 양성소) 학생과 결혼했다. 남편은 결핵으로 시름시름 앓았고 그 와중에 5살 난 아들이 병원에서 의료사고로 1997년 7월에 죽었다. 12월에는 남편도 눈을 감았다. 한 해에 남편·아들 모두 하늘나라 보냈으니 기가 막혔다. 

 

1998년 5월, 두만강 건너...연길에서 2년 동안

약재장사 하다 2000년 4월, 공안에 단속되어

무산으로 북송...온성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아

 

무산서 청진 농포동의 도 집결소로 이송도중

기회를 보아 탈출... 한 명의 보안원이 8명의

여성 호송하는 허술한 틈을 타서 탈출 그 후

두만강 국경지역서 숨어 살다 수개월 후  탈북

 

- 언제 탈북하였는가?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졸지에 잃고 절망 속에 자살하려고 뚜보찡(결핵약) 20알을 먹었다. 숨은 멎지 않고 한동안 실어증(사람을 보면 눈물만 나오고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 병)에 걸렸었다. 고민 끝에 1998년 5월, 두만강을 건넜다. 

고생스럽게 연길에 가서 2년 동안 약재장사를 하다가 꼭 2년 만인 2000년 4월, 공안에 단속되어 무산으로 북송되었다. 온성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았으며 중국에서 있었던 상황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상세하게 종이에 써야만 했다. 

 

- 조사과정과 처벌 형태는 어떠한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조사에서 중국에 있을 때 종교접촉 사실이 있으면 끝장이다. 간수들이 그런 자에게 폭력을 가한다. 아침5시에 기상하여 밤10시까지 꼼짝 않고 앉아 있어야 한다. 멀건 죽물이 전부인 식사도 생리적인 용변도 전부 앉은 자리(요강)에서 해결한다. 그렇게 1~2개월 지나 해당 지역 담당보안원이 와서 여성들을 호송하여 간다. 

나 같은 탈북여성 중에 중국에서 임신한 23살의 여성이 아기를 낳았다. 여간수의 지시로 아기는 허접한 비닐에 싸서 방 한구석에 방치해놓았다. 아기는 젖을 달라고 3일간 울고 산모와 다른 여성들은 미칠 정도로 반정신이 나갔다.  

그렇게 3일 뒤, 산모는 석방되어 나가는데 여간수가 물이 채워진 바켓스(물받이통)를 갖고 오더니 “나도 상급에서 시켜서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하며 아기를 물통에 거꾸로 집어넣었다. 모든 여성들이 으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대한민국은 북한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살만한 가치가 충분한 땅...건강도 건강할 때 

잘 지켜야 하듯이 국가의 안보도 평화로울

때일수록 잘 지켜야...조국 없으면 나도 없어

 

- 그 순간 무슨 생각이 들던가? 

미칠 지경, 그 자체다. 내가 태어나 살았던 공화국이 과연 사람 사는 세상이 맞는지 의문스러웠다. 어떻게 살아있는 갓 난 생명을 그것도 인민을 위한다는 군인(여간수)이 살해한단 말인가. 이건 국가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다. 북한은 인민을 위한 나라가 아니고 인민을 죽이는 야만집단이고 사회이다. 한없이 저주스러웠다. 

또 다른 기억은 내가 수감되었던 때는 5월이었다. 감옥 안에서 굶어 죽고 병나 죽는 시체가 하루에 7~8구씩 나왔다. 그것을 매일 치우는 것이 번거로워 일주일간 모아두었다가 손수레에 실어 어떤 장소에 가서 화장해버린다. 물론 죄수들이 하는 것이다. 

2000년 여름, 무산서 청진 농포동의 도(道)집결소(감옥)로 이송도중 기회를 보아 탈출했다. 한 명의 보안원이 8명의 여성을 호송하는 허술한 틈이 있었다. 이후 두만강 유역 국경 지역에서 숨어 살다가 수개월 후 다시 탈북하였다.  

 

- 국군장병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자유가 강물처럼 흐르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안녕을 잘 지켜 달라. 내가 살아본 북한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살만한 가치가 충분한 이 땅이다. 건강도 건강할 때 잘 지켜야 하듯이 국가의 안보도 가장 평화로울 때일수록 잘 지켜야 한다. 우리조국 대한민국 우리가 지키자. 조국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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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평양지하철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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