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북한판 샤보브스키가 나올 수 있다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1/04/17 [15:09]

[포커스] 북한판 샤보브스키가 나올 수 있다

통일신문 | 입력 : 2021/04/17 [15:09]

▲ 송두록 논설위원 

역사는 아이러니의 연속이기도 하다. 그렇게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이런 저런 언행과 사건들이 중첩되면서 뜻하지 않았던 결과를 낳게 되고, 그러면서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그런 일들이 우리 인류사에 종종 있어 왔다.

소련 지도자 흐루쇼프와 동독 지도자 울브리히트가 서방과의 체제 경쟁에서 졌다는 자충수임에도 불구하고 동독인들의 자유로의 탈출을 막기 위해 세웠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 그 이후 급물살을 타면서 이루어진 동서독 통일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우리로서는 너무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89년 10월에 동독 지배자들은 건국 40주년을 축하하고 있었다. 당시 동독을 지배하고 있던 동독 공산당 즉 독일사회주의통일당은 매우 강경한 스탈린 우상화 정당이었다. 거의 40년 간 철권통치를 하던 동독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는 대규모 열병식을 통해 세계적으로 동독의 건재를 과시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원했던 많은 동독 국민들은 대규모 열병식 한 달 후, 철옹성 같던 동독 체제 하에서 1백만 명이나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

급기야 동독 정부에서는 자유에 목말라 하는 동독 국민들을 달래기 위해 자유 출국이 가능하다면서 해외여행 완화라는 정책을 내밀었다. 1989년 11월 9일, 동독 공산당 대변인 권터 샤보브스키가 변경된 여행자유화정책에 대해 설명하던 중 이를 들은 이탈리아 기자가 그럼 언제부터 가능하냐고 되물었다. 미처 답변을 준비하지 못했던 샤보브스키는 원래는 국경 경비를 강화한 후에 사전 신청과 승인을 받는 등 절차를 거쳐야 했음에도 ‘내가 알기로는 지금부터!’라고 잘못 말했다.

독일어가 약간 서툰 이탈리아 기자는 이를 듣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내용으로 본국에 타전했고, 미국과 서독 언론들 역시 동독이 국경을 개방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외부로부터 전해들은 동독 주민들이 대거 베를린 장벽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면서 정부로부터 경계 강화 지침을 받지 못한 동독국경 수비대가 얼떨떨해하는 사이에 동서독 주민들이 곡괭이와 망치로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로써 1961년부터 1989년까지 동서 베를린 주민들을 갈라놓았던 높이 3.6m의 콘크리트 장벽 106㎞와 3겹 철조망 49㎞ 등 총 길이 155㎞의 베를린 장벽은 역사 너머로 사라졌고, 그 이듬 해 동서독은 통일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요즘 북한 정권의 선전 선동 담당자들이 미국과 대한민국을 연일 공격하고 있다. 새로 집권하게 된 미국 바이든 정부의 대북 외교노선에 대한 분석이 끝난 것 같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다. 문제는 북한 정권이 구사하고 있는 어휘 사용이 갈수록 과격해지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낯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북한 지도세력에 대한 희화화의 단초가 되고 있는 형국이라는 점이다. 이는 결코 남북한사회의 통합에 좋지 않다.

이번에 있었던 북한 선전선동부 김여정 부부장의 발언만 해도 그렇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대화 분위기에 어려움을 주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더니 대뜸 ‘미국산 앵무새’, ‘철면피’라고 몰아 붙였다.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1989년에 동독의 샤보브스키가 했던 한 마디 말실수가 그렇게 강고했던 베를린의 장벽을 부숴뜨리고 나아가 동독 호네커의 철권통치를 순식간에 종식시켰던 것처럼, 모든 것이 급변해서 내일을 알 수 없는 국제 정세에서는 북한 당국자들이 초조감에서 서둘러서 내던지는 말이 장차 어떤 후폭풍을 불러올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번 ‘미국산 앵무새’ 담화에서도 보면, 김여정 부부장이 지난 달 25일에 자신들이 발사했던 발사체를 ’탄도 미사일‘이라고 인정했다. 발사된 후 로켓의 추진력으로 가속되어 대기권 내외 탄도를 그리면서 날아가는 탄도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은 유엔안보리 결의를 명확하게 위배한 것인데 이를 북한 지도부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서 대내외적으로 공표한 셈이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 진행 여파에 따라서는 북한에서도 제2의 동독 샤보브스키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우리 조상들이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한다면서 평소에 언행을 삼갈 것을 강조했다. 우리가 새삼 유의해야 할 삶의 덕목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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