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실제적인 강직, 실질적인 후퇴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1/02/25 [22:45]

[기자수첩] 실제적인 강직, 실질적인 후퇴

통일신문 | 입력 : 2021/02/25 [22:45]

북한 노동신문 2월 14일 자에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전원회의에 관한 보도에 접한 사회적 반향이 실렸다. 그야말로 말공부다.

 

기사는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는 당 제8차대회가 제시한 새로운 5개년계획수행의 첫해인 올해부터 실제적인 변화, 실질적인 전진을 가져올 수 있는 구체화된 실천의 무기, 혁신의 무기를 마련한 의의 깊은 회합이었다고 시사했다. 이번 전원회의에서는 내각과 성, 중앙기관에서 시급히 바로 잡아야 할 결함들이 심각히 지적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원인이 내각과 성, 중앙기관 당조직들과 당일꾼들이 자기의 임무를 망각하고 일꾼들과 정무원들에 대한 당생활지도, 행정경제사업에 대한 당적지도를 당의 의도대로 잘하지 못한 것과 관련된다고 분석한 것이 주목할 점이다. 마치 자아반성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분석이라 할 수 있다.

경제사업에 대한 당적 지도! 북한에만 존재하는 경제관리 방식이다. 경제란 자고로 이론이 발현되는 정치의 실천적인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현물적인 현상이라는 의미다. 결국 경제에는 말보다 행동이, 정책보다 대책이, 지도보다 지원이 필요하다. 

헌데 북한은 정신을 규합하는 당적지도에 원인이 있고 당적지도로 경제를 부활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부처님에게도 빈손으론 불공드리지 않는다. 어떤 물질적 성의를 보일 때 실제적인 바람이 이뤄진다는 이치다. 결국 북한은 순수 입놀림만으로 거창한 물질의 집합체인 경제를 추동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착각 아닌 망상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아니면 아는 주정이다. 그나마 아니면 강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사회적 반향이다. 당일꾼들이 새 출발을 한다는 관점에서 지난 기간 당 사업에서 나타난 결함들을 깊이 있게 분석총화하면서 교훈을 찾고 혁명적 개선을 이룩할 결심들을 다지고 있다고 한다. “성, 중앙기관의 모든 당조직들과 당일꾼들이 당정책관철의 조직자, 기수로서의 사명감을 깊이 자각하고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수행의 첫해인 올해의 경제 과업을 무조건 수행하는데 사상사업의 화력을 총 집중한다”는 것이다. 과연 의문스럽다.

“사상전의 도수를 높여 국가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논리가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전기가 없어 멈춰선 기관차가 당생활총화를 하면 움직이고, 석탄이 없어 숨죽은 발전소 굴뚝에 당회의를 하면 연기가 뿜고, 비료가 없어 노랗게 말라드는 곡식이 당대회를 하면 풍년을 선사하는가 말이다. 사상 제일에 중독된 극좌경이라 하겠다.

북한 경제가 일어서지 못하는 주되는 원인이 바로 자금난 보다 더 지독한 경제에 대한 당적 참견이다. 참견 정도가 아닌 좌지우지다. 김일성은 일찍이 당이 행정을 대행하지 말 데 대한 대안의 사업체계를 사회주의계획경제의 기본원칙으로 제시하였다. 대안의 사업체계는 여전히 북한 경제의 이론적 바탕이다. 북한이 마치 선대 영수의 사상이론을 드팀없이 계승하기 위해 개방을 비롯한 경제의 변화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북한 경제의 그 어느 부문에도 대안의 사업체계가 철저히 구현되는 단위는 없다. 왜 그런가? 대안의 사업체계의 기본 핵인 당이 행정을 밀어주고 위가 아래를 도와주는 내각책임제 형식의 경제운영방식이 이미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당은 행정을 밀어주는 게 아니라 위에 군림했고, 위가 아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강제로 감독 통제하는 현실이다. 

더군다나 당일꾼들은 경제 사업을 지도한다는 명색마저 벗어 던지고 직접 관여하여 조종하고 있다. 내각으로부터 지방의 작은 공장, 기업소의 모든 행정일꾼들은 해당 당일꾼을 배제한 그 어떤 행정사업도 진행할 수가 없다. 사실상 행정일꾼들은 당일꾼들의 꼭두각시라는 것이 북한 사회의 일반 인식이다. 

빈 주머니나 차고 있는 행정일꾼들은 비록 전문적이라 할지라도 비전문적인 당일꾼들에게 철저히 종속되고 만 것이다. 하여 창조성과 적극성이 경제일꾼들의 사색과 활동에서 사라진지가 오래다. 꼭두각시처럼 말로 내려오는 당의 지시를 말로 발라 맞추는 게 상책이다. 그것이 곧 당정책 집행이다. 

이제는 경제일꾼들도 살아남기 위해 행동보다 말을, 충성보다 아첨을 추구하고 있다. 결국 김일성 시기에는 그런대로 우위였던 행정이 김정일 시기에는 당과 병행하게 되었고, 김정은 시기에는 아예 지배되고 말았다.

그 사회적 기운이 얼마나 농후하면 비생산단위인 북한군 역시 싸움을 담당한 지휘관들이 군맹자인 정치일꾼들의 눈치를 보며 구령을 내려야 할 판이다.

“당 제8차 대회 결정관철을 위한 올해 경제과업 수행에서 내각과 성, 중앙기관 당조직들의 역할을 부단히 높여 일꾼들과 정무원들이 당과 인민 앞에 다진 맹약을 실천으로 검증받도록 하겠다”고 기사는 마무리 되었다. 전 사회가 더 혹심하게 통제될 것이다. 조직정치사업을 강화한다는 표면 아래 말공부의 도수를 더욱 높이겠다는 듣기 좋은 반향에 불과하다. 

전도가 암담하다. 실제적인 변화나 실질적인 전진은 고사하고 실제적인 강직과 실질적인 후퇴가 훤히 보인다. 

 

이도건 객원기자

                                                               

  • 도배방지 이미지

정방산성의 봄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