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10/07 [12:58]

[모란봉]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통일신문 | 입력 : 2020/10/07 [12:58]

<박신호 방송작가> 

요즘 정치판을 볼라치면 제발 우리 청소년들일랑 정치에 등한했으면 한다. 언론의 시사 프로를 안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친구들과도 시사 얘기 같은 건 안 했으면 좋겠다. 행여 우리 청소년들의 인성이 더럽혀질까 봐 두려워서다. 그래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인사들인데 정치판에서 쏟아내는 말이 너무나 질리게 한다.

저 사람이 어떻게 저런 발언을 할 수 있을까 싶은 말을 후안무치하게 쏟아내기 일쑤다. 자랑스럽게, 천연덕스럽게 잘도 한다. 그것도 한두 번 차례가 아니다. 하도 번번이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기에 경력이 궁금해 훑어보면 두 번 놀라게 한다. 학력, 이력이 찬란하다. 그래서 큰소리를 치는지 몰라도, 그렇다고 헛소리까지 할 자격이 주어진 건 아니다. 거기다가 부귀영화까지 누릴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하는 말이나 짓이 역주행이다.

그 인간, 아직 모르나? 이중인격자에 후안무치야. 출세를 위해선 조상도 팔아먹는다는 걸

이런 비인격적인 인간이 지금 정치판을 차지하고 횡포를 부리고 있다. 안하무인으로 큰소리치며 마구 헤집고 다닌다. 보이는 게 없어 그런지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환호의 손짓으로 착각하고 있다. 누가 용기를 내 그러지 말라고 귀띔이라도 해 주고 싶어도 들을 리도 없으려니와 역정을 내기 십상이니 입을 닫고 있을 수밖에 없다.

후안무치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모른다. 그것도 절대 모른다. ‘자기 자신이란 자기가 평가하는 자기가 아니고 세상이 평가하는 자기가 자기 자신인 것인데 이런 사람은 자기 자신의 기준을 어디까지나 자기가 평가하는 자신을 말한다. 그러니 착각하고 뻔뻔하고 의기양양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야 오늘의 자리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개중에는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 혹간 있기는 있어도 집단 몰매를 맞기 가 일쑤다. 그러니 어느 누가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인가. 그 판을 떠나기 전에는 어림도 없으니 비참한 노릇이다.

출세 지향적인 사람들을 보면 측은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주위에도 있다. 하도 딱해 넌지시 충고라도 해 주고 싶어도 십중팔구 충고를 듣는 순간 오만상을 짓지 않으면 건성으로 들을 것이 뻔하다. 그러니까 여전히 뻔뻔한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 것이 아니겠나. 도저히 구제할 길이 없는 인간군상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구제할 길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임명권자의 결단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어느 임명권자가 가려운 델 긁어주는 내 편을 어찌 나무랄 수가 있으며 내칠 수 있겠는가. 어린애도 아는 얘기지만 굳이 이 지면을 할애하는 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어도 외칠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주기 위해서이다.

어느 날 하루, 마음먹고 아는 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부가 궁금해서다. 그걸 보고 있던 아내가 지나가는 말투로 한마디 한다. 윗사람이 왜 전화를 먼저 하느냐는 것이다. 아내 말도 옳긴 하지만 안부 전화하는 거야 위아래가 어디 있고 먼저가 어디 있나 싶어 마저 끝내고 나니 전화를 잘 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아무 탈 없다니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그러고 몇 달 지났다. 또 주위 소식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누구도 전화가 없다. 그렇다고 다시 먼저 걸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섭섭한 생각이 앞섰다. 당장 전화를 걸어 나무라고 싶었다. 오늘도 섭섭한 마음은 여전하다. 주위에 대한 섭섭한 마음만 아니다. 집안 아우들에게도, 사회 후배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고독한 사람이 먼저 말을 하게 마련인가 보다. 전화를 걸었다.

형님이세요. 무슨 일 있나요?”

궁금해서 걸었어

아무 일 없어요

 

이젠 속없이 얘길 나눌 친구도 몇 남지 않았다. 혼자 삭일 수밖에 없다. 점점 1년은 더 짧고 하루는 길어진다. 세상이 삭막하다. 후안무치다. 너는 너, 나는 나 세상으로 흐르는 것 같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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