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호 탈북민 아시나요? 정착금·임대아파트 없어도 감사해요”

[인터뷰] 주식회사 ‘오케이스웨그바디’ 김윤희 부장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08/05 [16:12]

“비보호 탈북민 아시나요? 정착금·임대아파트 없어도 감사해요”

[인터뷰] 주식회사 ‘오케이스웨그바디’ 김윤희 부장

통일신문 | 입력 : 2020/08/05 [16:12]

 727일은 한국전쟁 휴전 67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탈북민 역사도 똑같은 67년이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북한공산 독재사회에서 추위와 굶주림을 피해 죽을 각오를 하고 탈북하는 북한주민들이다.

작년 12월 중국에서 발생해 세계에 퍼진 코로나19는 남한에 입국하는 탈북민 현황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올해 상반기(1~6) 입국한 탈북민은 147명으로 예년에 보통 500~600명 입국하던 숫자에 비하면 거의 1/5로 급감했다.

이처럼 탈북민 수가 크게 줄어든 것은 무엇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비공식 탈북루트가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을 거쳐 중간 경유지로 입국하는 탈북민들을 다소 달가워하지 않는 일부 동남아국가들인 점도 이유이다.

탈북민들이 시대별 사회·정치적 환경에 따라 많이 혹은 적게 입국할 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답게 살고 싶어 대한민국을 찾아왔다는 공통점은 확실하다. 서울에서 주식회사 오케이웨그바디김윤희 부장을 만났다

 

 

고향이 어디인가.

19777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내가 맏이고 남동생 2명 있다. 아버지는 함경북도철도국 회령기관차대 기관사, 어머니는 회령양정사업소 노동자였다. 내가 인민학교(소학교) 시절에 어머니가 다녔던 양정사업소는 식량(, 옥수수, 밀가루, 감자 등)을 보관하는 회사였으니 다소 풍족한 생활을 하였다.

학력과 경력을 말해준다면.

19948월에 고등중학교를, 이듬해 8월에 회령구두공장 기술기능공학교(1년제)를 졸업하고 배치 받은 곳이 천신발직장이었다. 2년간 근무하였는데 노동자들은 일감이 없어도 직장에 나와 사상학습이라도 해야 했다.

한 달간 직장에 무단결근하고 개인장사를 하였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어 공장에 있는 단련대(힘든 노동을 하는 작업반)에 보내졌다. 각 직장에서 문제아들만 모인 곳이다. 2주간 출근하고 노동이 너무 힘들어서 환멸을 느꼈다.

그러면 이후 무슨 일을 하였는가.

회령시당 조직부에 제의서를 올려 승인을 받아 농촌자원진출을 하였다. 나 같은 청년 20명이 회령OO협동농장으로 탄원했다. 산골지역의 농장인데 감자, 옥수수 등을 생산한다. 청년분조(청년들만 있는 작업반)에 소속되었으며 약 30명의 청년들이 기숙사 생활을 했다. 5개의 청년분조 안에는 2개의 초급단체(청년정치조직)가 있었는데 그 중 한 곳에 내가 위원장을 맡았다. 그때는 목에 힘을 좀 주었다.

당시 고난의 행군시기였다. 1996년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최악의 경제난 시기, 4~5년간)이었다. 보잘 것 없이 적은 식량배급에 의존하는 도시생활보다 직접 농작물을 생산하는 농촌이니 다소 희망을 가졌던 것은 그야말로 나만의 환상이었다. 자원진출로 농촌현장으로 와보니 오히려 도시보다 일은 더 힘들고 배는 더 곯았으니 말이다.

농장원이 도시의 노동자보다 더 굶는다고 하던데?

농촌은 도시와 달리 가을에 1년분 식량을 분배 받는다. 그러나 1995년부터 흉년이 들어 분배량을 1/2 혹은 1/3만 받았다. 쌀을 생산한 농장원들에 대한 식량 분배보다 중요한 것이 나라에 계획된 식량을 바치는 것이 우선이다.

청년자원진출자 기숙사에서는 점심 한 끼 식사를 주었다. 오죽 배가 고팠으면 봄철 낮에는 감자를 심고, 밤에는 몰래 그 감자를 파서 깨끗이 씻어 끓여먹었다. 한 여름에는 옥수수가 여물기전에 몰래 따다가 그것을 삶아 먹었다.

 

회령구두공장 기술기능공학교(1년제) 졸업

배치 받은 곳이 천신발직장2년간 근무

노동자들은 일감이 없어도 나와 사상학습

 

한 달간 직장에 무단 결근하고 개인장사

그 문제로 각 직장에서 문제아들만 모인

단련대 보내져2주 출근하고 너무 힘들어

회령시당 조직부에 제의서 올려 승인 받아

감자, 옥수수 등 생산농장인농촌자원진출

 

간부들에게는 식량 배급이 나오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작업반장, 세포비서 이상 간부들은 해마다 가을철만 되면 아래 사람들을 시켜서 식량(옥수수, 감자)을 수백 Kg씩 빼돌린다. 완전히 노골적이다.

명분은 사업용’(원활한 업무를 위해 쓰는 일정의 뇌물) 이라고 하지만 우선 자기네 집에 가득 채워놓고 이후 상급기관 간부들의 집에도 몰래 날라 간다. 군당, 군안전부, 군보위부 등 힘센 기관의 간부들에게 바치는 입막음용이나 같다.

북한에서 간부들은 그런대로 살만하다. 가령 똑같은 비사회주의(불법)를 저질렀어도 간부는 용서가 되고 일반 백성에게는 무서운 처벌이 적용된다. 간부들끼리 서로 연관이 잘 되어있어 이른바 자기들만의 협동력이 구축되어 있다.

겉으로는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기들의 돈주머니와 쌀 주머니 채우기에 여념이 없는 간부들을 보면서 공화국(북한)은 인민이 주인 된 나라가 아닌 간부가 주인 된 나라이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탈북 동기는 무엇인가.

1998년 여름, 어머니가 중국으로 식량을 구하려 간다며 집을 나선 것이 감감무소식이다. 아버지도 병석에 누웠고 자칫하면 온 식구가 굶어 죽을 판이었다. 1년 쯤 지나서 어머니를 찾아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브로커의 안내를 받으며 19998월 중순 경 장맛비로 불어난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에서 브로커가 나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준다며 간곳이 흑룡강성 가목사시 교외에 있는 농촌지역이었다.

중국에서의 생활은 어떠하였나?

그제야 내가 인신매매에 걸려 돈에 팔려왔음을 알았다. 그 지역은 완전 한족동네였고 노부부와 아들(노총각)이 사는 집안에 들어가 살았다. 안 그러면 공안에 잡혀 북송되기 싶다. 엄마를 찾으려면 중국 글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회화는 6개월 만에 가능했고 3년 뒤에는 신문에 실리는 글도 줄줄 읽을 정도가 되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

언젠가 동네주민 신고로 공안에 체포되어 북한 접경지역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때 시부모님이 거액의 돈을 써서 나를 구해주었다. 그 은혜가 너무 고마워 나는 남편의 폭력에도 아무 말 못하고 그냥 순종하며 평생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 어느 날, 시부모님이 아가야! 이제는 너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 우리 집 장손을 낳아준 것만도 정말 고맙고 10년간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준 것만도 감사하다며 나의 등을 떠밀었다.

이후 청도로 갔다. 거기는 한국기업이 많은 지역이다. 한국사장이 운영하는 액세서리제조회사 직원식당에서 요리사로 일을 하였다. 나에게는 조선족신분증이 있었기에 주변의 사람들은 내가 탈북자인줄은 전혀 몰랐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비로소 중국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한국이 바로 남조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

청도에서 시장에 갈 때마다 조선족상인들의 수다에 귀를 기울이었다. 조선족들은 한국에 관광 비자를 받고 입국해서 불법으로 눌러 앉아 돈을 벌며 혹여 단속이 되어 벌금을 물어도 중국에서 버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도 돈을 벌려면 한국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후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조선족신분증을 갖고 관광 비자를 받아 2012104일 한국에 입국했다.

 

어머니가 중국으로 식량 구하려 집을 나가

아버지도 병석에 누웠고 자칫하면 식구가

굶어 죽을 판어머니를 찾으러 브로커의

안내를 받으며 8월 중순 장맛비로 불어난

두만강 건너흑룡강성 교외 농촌지역도착

 

남한에 탈북자들이 있는 걸 몰랐는가?

입국한 다음 날로 경기도 안산의 반월공단 모 제조회사에 취업하였다. 돈을 벌 목적으로 한국에 왔으니 하루라도 빨리 일자리를 잡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루 12시간 이상 고된 일을 했으니 너무 피곤하여 뉴스를 보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니 남한에 탈북자들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러다가 우연히 TV에서 이만갑프로그램을 보았던 것이다. 거기에는 나 같은 탈북여성들이 다소 출연하였는데 무척 놀랐지만 겁도 났다. 나는 불법으로 입국했으니 말이다.

그러면 언제 자수하였나.

반월공단 모 제조회사에서 제품 포장, 검사 등의 일을 2년 남짓 하였다. 그냥 돈을 벌어 중국에 가서 아들과 어머니를 찾아, 또 북한에 있는 남동생에게 생활비를 보내주면서 조용히 살겠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신분은 항상 불안했다. 나는 분명 탈북자인데 언제까지 조선족 가짜 신분증을 갖고 살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마음먹고 경기도 시흥경찰서에 찾아가서 자수를 했다. 201411월 초순이다.

어떤 처벌을 받았는가.

국내 입국한 탈북자들이 의무적으로 받는 신원조사와 정착교육을 받고 법규에 따라 비보호탈북민으로 규정되었다. ‘비보호탈북민은 나처럼 위조여권으로 입국했거나 혹은 과거 입국했던 경력이 있는 탈북자, 3국에서 외국인과 결혼하여 재산이 있는 탈북자 등이다. 일반 탈북민과 달리 비보호탈북민에게는 정착금과 배정받는 임대아파트가 없으며 주민등록증은 사회에 나가서 본인이 알아서 발급 받아야 한다.

비보호탈북민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처음에는 같은 탈북자인데 왜 이렇게 차별하는가?’며 황당해 했다. 며칠간 마음을 진정하고 차분히 생각하니 내가 잘못했구나!”라고 깨달았다. 이유야 어떻든 나는 위조된 중국여권을 갖고 한국에 입국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2년 남짓 자수를 안했으니 엄벌을 받을 만 했다. 그래도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으니 너무 감사하다.

 

조선족들은 한국에 관광 비자를 받고 입국

불법으로 눌러 앉아 돈을 벌며 단속이 되어

벌금을 물어도 중국에서 버는 것보다 많은

돈이라고 해 한국으로 가야겠다 마음 먹어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조선족신분증을 갖고

관광 비자를 받아 201210월 한국 입국

 

한국인으로써 자랑스러운 것은 뭔가.

정치와 거주 및 유동의 자유이다. 북한주민들은 당과 수령(김정은)을 비판하면 종신토록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다. 이사와 유동을 당국의 엄한 승인을 받고 해야 한다. 중국도 경제는 자본주의보다 더한 자본주의를 하지만 정치는 독재사회이다. 만약 언론과 공개석상에서 공산당과 주석(시진핑)을 비판하면 공안에 잡혀간다.

사회에 언제 나왔고 이후 무슨 일을 했나.

20154월 말 하나원 탈북민정착 교육을 마치고 사회로 나왔다. 이후 다시 반월공단에 소재한 모 제조회사에 취업하여 생산직과 제품검사 분야 등에서 20177월까지 일을 하였다. 중국에 있는 아들을 데려오려면 돈이 필요했다.

이후 롯데택배회사에 취업하여 1톤 차량을 운전하며 택배 일을 6개월간 하였다. 그 일을 하면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치료도 수개월 받았다. 이후 20181월부터 삼성생명보험주식회사에서 보험설계사로 근무했다.

 

오케이스웨그바디의 주요 업무는 전국 호텔

숙박업과 리조트분양, 오케이상품권, 화장품

건강식품을 면세점과 뷰티샵 등 사업들 진행

신재생에너지, 굴뚝 없는 소각료, 쓰레기문제

환경오염 사업 등 핀테크 사업도 적극 시행

 

 

오케이스웨그바디는 어떤 회사인가.

20193월에 설립된 오케이 에너지월드 홀딩스 지주회사는 총 9개 계열사로 되어있다. 그중의 주력기업인 오케이스웨그바디의 주요 업무는 전국의 호텔 숙박업과 리조트분양, 오케이상품권, 화장품 및 건강식품을 면세점과 호텔에 관광객들 이용판매 안내, 뷰티샵 등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신재생에너지, 굴뚝 없는 소각료 즉 쓰레기문제, 환경오염 사업 등 핀테크 사업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K-팝 측과 캐릭터 사업이 추진 중이다. 기업부설연구소, 벤처기업 인증, 캐릭터출시, 저작권협회등록 등을 완료했다. 금융위원회 전자지급 결제대행업(PG) 보증금 3억 원을 4월말 제출했고 허가는 9월초에 날 것으로 예상한다. 선불전자 지급수단, 발행 및 관리업, 결제대금 예치업(ESCROW) 에스크로 등이 추진 중이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너무 담을 쌓지 말고 정보를 멀리하고 살면 좋은 일도 도움 받지 못한다. 그리고 너무 대기업에 의존하지 말고 창의력을 키워야 한다. 대기업에서 얽매인 생활수칙, 고정된 월급생활,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 할 수도 없는 것을 한번쯤 해보는 것도 인생의 도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 정착생활에 더욱 신경을 썼으면 한다. 통일 후 고향으로 당당히 돌아가려면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성공해야 한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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