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지혜] 대통령과 정치권이 가부상제可否相濟 할 때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07/01 [16:34]

[역사의 지혜] 대통령과 정치권이 가부상제可否相濟 할 때

통일신문 | 입력 : 2020/07/01 [16:34]

<이중희 포천문화원 부원장>

북한정권과 김정은의 신상에 큰 변동이 있는 모양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변혁과 통일문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염려에 역사에서 지혜를 얻고자 함이다.

새로 선출 된 정치권과 대통령은 우리 민족의 운명이 우리에게 달렸다는 큰 책임감을 가지고 당리당략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생존의 길을 토론 해 주기 바란다. 옛 역사를 공부해 보면 현명한 군주일수록 반대 없는 일사불란한 의견일치를 경계하고 예방하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직언을 갈급해 했다.

임금과 신하가 부하 뇌동하는 것은 국가에 큰 염려라 하지 않았던가. 무능한 군주일수록 아첨과 일사불란한 의견일치를 좋아했다. 군주가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면 국가나 조직이 경솔하고 불합리한 결정을 내려 제일 살기 나쁜 나라가 되기도 하고, 망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이처럼 상급자의 권위나 조직의 분위기에 눌려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이 국정에 이르면 국가와 백성이 고통을 당하게 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가부상제가 180여 차례나 나온다. 가부상제를 직역하면 찬성과 반대가 서로 이루어 준다는 뜻이지만, 현실적으로 변역하면 서로 다른 견해를 존중하고 살려서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어 간다는 뜻이리라.

위정자는 반대의견 즉, 직언을 잘 듣고 실천할 줄 알아야 큰일을 할 수 있고 나라는 태평성대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직언을 해서 나라를 부흥시킨 큰 인물은 동양에서는 당태종의 위징이요, 서양은 독일 빌헤름1세 황제의 비스마르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위징과 비스마르크도 큰 인물이었지만 그들의 직언을 받아들인 당태종 이세민과 빌헤름 1세가 더 크고 위대하였기에 그들이 역사에 남을 수 있었다.

우리민족은 어떠했는가, 세종대왕 때의 일이다. 사간원에서 올린 상소문에 이르기를 말해야 할 일을 말하지 않는 것은 신하의 직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고, 받아들여야 할 말을 채용하지 않는 것은 정치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반드시 임금과 신하가 꾀를 같이하여 가부상제 해야 만 정치의 도가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일도 있었다, 세종 3(1421) 좌의정에 추천된 조연에 대하여 태상왕이던 태종이 말하기를 의정(議政)은 옳다, 그르다하면서 치열하게 논쟁을 하며 서로 돕는 것인데, 조연은 종일 자기주장이 없고 한마디 말이 없다. 이런 인물이 어떻게 좌의정을 한단 말인가하여 탈락 시켰다.

숙종임금도 임금과 신하가 부화뇌동하는 것은 국가의 복이 아니니, 공익을 위해 어떤 일이든 찬성과 반대가 논쟁하여 서로 도우라고 명령했다. 이처럼 가부상제는 정치의 요체로 조선조 500년의 근간이었다.

중세 로마 가톨릭이 교황선출과정에서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까지 두면서, 후보자의 약점을 찾아 지적하고, 반대 논리를 전문적으로 전개하여 실질적인 검증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모두가 동 서양을 막론하고 반대 없는 찬성은 위험하기 때문에 반대논리를 피력함으로서 나라가 바른 길로 가게하려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가부상제가 너무 부족하여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는 각료나 정치인을 본지가 너무 오래 되었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180석 이상의 다수당이 된 것은 여당이 잘해서가 절대 아니다. 야당이 너무 무능하고 공천과정에서는 대권후보군 상대를 견제하려는 간교함을 유권자들이 다 알고 지지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1대 국회는 자신들과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고 충분한 연구와 애국심으로 무장해서 우리민족의 앞날과 자유민주주의를 굳건히 지켜내 국민들에게 안심과 희망을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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