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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의 해돋이는 나의 해돋이였고, 모두의 해돋이였다
[안영백의 백두산 기행] 천지(天地)의 물은 샘물처럼 맑았다 <3>
 
통일신문 기사입력  2020/05/20 [14:54]

해돋이

누군가는 카메라를 들이댔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아 잡았고

누군가는 가슴으로 태양을 받아들였다

고즈넉한 안개는 신비로운 기운을 머금은 듯했다. 뽀얀 새벽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날씨는 맑을 것 같았다. 검은 능선과 희뿌연 하늘 사이에 틈이 벌어지면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백두산의 태양은 순식간에 온 누리를 뒤덮으며 거침없이 솟아올랐다.동이 트지는 않았지만 해돋이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둠이 엷어지자 별빛이 희미해져 갔다. 아직 어두운 대지 위에는 엷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바다를 물들이면서 올라오는 태양과 달랐고, 도시의 건물들 위로 불쑥 튀어 오르는 태양과도 달랐다.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볼 때마다 나의 왜소함과 하찮음을 절감했다.

해돋이에 취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나왔는지 일행 모두가 돋는 해를 향해 서 있었다. 누군가는 카메라를 들이댔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아 잡았고, 누군가는 가슴으로 태양을 받아들였다.

해돋이는 어디에나 있다. 그렇지만 백두산의 해돋이는 나의 해돋이였고, 모두의 해돋이이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의 해돋이를 찾아서 이곳에 왔다. 그래서 모두의 해돋이를 기다리고 반겼던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한반도기를 펼쳐 들었다. 그리고 찬란한 햇빛 아래에 깊숙이 꽂았다.

햇볕이 말려준 대지 위에서 우리는 아침 식사를 했다.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밥과 라면이었고, 깻잎, 두릅장아찌, 김치가 반찬이었다.

갈 길은 멀고, 언제 먹을지 모를 밥이라고 여겼는지 다들 잘 먹었다. 먼저 식사를 마친 안내원들이 넓적한 대접에 커피를 탔다.

소주를 마시던 플라스틱 컵으로 커피를 마셨다. 사람들이 야전삽을 들고 어디론가 갔다.

일행이 텐트를 걷는 동안, 안내원들은 장비와 취사도구를 정리했다. 안내원들이 자동차 아래에 모닥불을 피워서 엔진을 녹였는데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다 함께 자동차를 밀자 시동이 걸렸다.

 

압록강의 시원(始原)

땅속으로 스며들었던 천지의

물이 바위틈으로 솟구쳐 나오는

압록강 시원의 한 갈래라는

안내원 설명이다

 

이슬에 젖은 만년초가 바짓가랑이를 적셨다. 걸음은 감회와 정취에 따라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했다. 어디서는 빠르게 걸었고, 어느 지역에서는 천천히 걸었다.

우리 일행은 큰 소리로 불러야 할 정도로 길게 늘어섰다. 배낭에는 작은 한반도기(북한에서는 통일기로 불린다)가 꽂혀 있었다. 하얀 바탕에 파란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를 배낭에 꽂은 일행이 길게 한 줄로 서서 백두산이 만든 들판을 걸었다.

한낮의 부드러운 햇볕이 내리쬐었다. 몇 시간이나 걸었을까,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비단 치마를 펼쳐 놓은 것처럼 주름진 구릉과 메마른 대지뿐이었다.

눈앞이 푹 꺼지면서 강이라기에는 너무 좁은, 그렇다고 개울이라고 하기에는 미안한 물줄기가 나타났다. 신기하고 반가웠다. 다들 미끄러지듯 물가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열 길 남짓한 폭포가 있었다.

사기문폭포였다. 좁은 바위 절벽에서 세 번 나누어 떨어지는 폭포 아래에 물웅덩이가 있었고, 그 옆에는 아담한 정자가 있었다.

땅속으로 스며들었던 천지의 물이 바위틈으로 솟구쳐 나오는 것이며, 압록강 시원의 한 갈래라고 안내원이 설명했다. , 압록강! 나는 압록강 또한 우리의 강산에서 시작하는 우리의 강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연지봉

밥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두 개의

봉우리 소연지봉과 대연지봉이었다

연지를 바른 듯 붉은빛을 띤다고 해

연지봉, 두 봉우리 사이는 십여 리

 

폭포 아래에서 야전 식량으로 점심을 먹었다. 플라스틱 용기에 물을 부으면 더워지는 쇠고기볶음밥이었다. 가파른 돌길을 40여 분 정도 기어올랐다.

허리만큼 자란 갈대와 키 작은 나무들 사이를 걸었다. 길이 고르지 않아서 사람들의 간격을 좁혔다. 언덕을 넘어서자 고리 모양의 능선이 나타났다.

밥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두 개의 봉우리는 소연지봉과 대연지봉이었다. 연지를 바른 듯 붉은빛을 띤다고 해서 연지봉이라는 두 봉우리 사이는 십여 리라고 했다. 대연지봉으로 올라갔다. 세찬 바람 때문일까, 정상 주변에는 마른 잡초들뿐이었다.

눈 아래 백두고원의 울창한 침엽수림이 펼쳐져 있었다. 모두가 숲이었고, 시작도 없었고 끝도 없었다. 그야말로 백두산이 만든 밀림이었다. 저만큼 간백산(間白山)이 건너다보였다. 백두산과 소백산 사이의 산이라고,

안내원이 말했다. 빗물골을 따라 허리 높이의 잡목지대를 지났다. 야생동물들이나 다녔을 좁다란 길이 숲속으로 이어졌다. 새들의 움직임이 부산한 것이 해거름인가 싶었다. 수풀 사이로 빨간 지붕들이 내려다보였다. 사람들의 움직임도 보였다. 첫 번째 밀영이었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거친 길을 걸었다. 따뜻한 햇볕을 맞으면서 돌 사이에 핀 야생화들을 만났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자연의 신비로움에 흠뻑 젖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로지 자연과 자신만을 생각했다. 왜 그리 다투었는지를 생각했고, 왜 그리 옹졸했던가를 생각했다.

백두산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정말 몰랐다. 백두산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았고, 유혹하지 않았으며, 칭찬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백두산은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과연 백두산에는 특유의 비경(秘境)이 있었고, 그것은 한반도의 자랑이었다. 특유한 것은 특유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두산이어서가 아니었고, 내가 한국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세계 어느 산에서도 볼 수 없는 고유한 정취였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저녁

분홍빛 저녁노을을 머금은 옅은

안개가 깊은 숲속으로 내려앉았다

분홍빛 저녁노을을 머금은 옅은 안개가 깊은 숲속으로 내려앉았다. 숲은 더 깊어져 갔고, 노을은 아련했다.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밥그릇 두 개를 나란히 엎어놓은 듯한 두 연지봉 사이는 허리 높이의 잡목 숲으로 이어졌고, 이곳저곳 언덕에는 보라색 야생화들이 피어 있었다.

언덕을 등진 계곡 역시 끝없는 침엽수림 속으로 사라졌다. 능선을 지나자 키가 큰 이깔나무와 자작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었고, 덩굴들이 휘감은 나무들 사이에는 빈틈이 없었다.

밀림 속에는 아직도 호랑이와 늑대, 멧돼지들이 우글거린다고 했다. 이깔나무 숲 사이로 여러 시설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탈길을 내려갈수록 건물이 하나둘 나타났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소연지봉 밀영(密營)이었다. 백두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그래서 처음 만나는 밀영이었다. 병풍의 주름처럼 들쑥날쑥한 빗물골 아래의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자동차가 다닐 만한 비포장도로가 뚫려 있었고, 표지판을 따라가자 밀영 입구가 나타났다.

 

구호나무

강사들은 가지런한 하얀 치아를

내보이며 또박또박 밀영의

유래와 구조를 설명했다

우리를 기다렸던 것일까. 여성 안내원들이 우리 일행을 박수로 맞았다.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마친 우리는 다시 광장에 모였다. 광장을 중심으로 길들이 방사형으로 뚫려 있었다.

광장의 한쪽에는 건물 배치도가 그려진 안내판과 항일투쟁 당시의 전적을 기념하는 동상과 조각품이 세워져 있었다. 주변의 꽃밭과 잔디는 잘 손질되어 있었다. 안내판 뒤편으로 깨끗하게 정돈된 길을 따라 통나무집들이 보였다.

카키색 유니폼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안내원들은 자신들을 밀영 강사(講士)라고 소개했다. 20대 초중반의 강사들의 표정은 밝았고, 다들 건강했다.

강사들은 가지런한 하얀 치아를 내보이며 또박또박 밀영의 유래와 구조를 설명해나갔다. 말투 역시 단정하고 명료했다. 백두산 항일 유적지가 외국인에게 공개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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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5/20 [14:54]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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