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흥룡 통일교육진흥연구원 원장> 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연합국에 의해 분할 점령된 독일은 1949년 소비에트 사회주의에 기반 한 동독과 서구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서독 정권이 수립, 분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타 분단국가들과 달리 동서독 통일의 가장 큰 원인은 대립의 와중에도 민족의 공존을 위한 상호간 노력들이 지속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서독의 경우 상대적으로 우수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독과 정치교류는 물론 사회문화 인도주의적 교류를 꾸준히 추진하여 왔다. 우선 서독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동독과의 경제관계가 통일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단기간 경제적 손실을 감수했다. 실례로 화폐환율을 비교할 때 서독 마르크와 동독 마르크의 실제 구매력은 4대1로 서독의 구매력이 월등하였다. 서독은 경제교류에서 현실적 화폐구매력을 무시하고 1:1 환율을 적용하는 한편 수억 달러에 달하는 낮은 이자의 차관을 제공하였다. 동독을 여행하는 서독주민들의 도로사용료를 위해 10년간 3억 5천 달러를 지불하는 등 경제적 지원을 통해 상호간 교류의 창구를 지속적으로 유지한 것이다. 아울러 서독은 분단초기부터 동서독 간 주민들이 가급적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왔다. 서독은 동독에 부모형제를 두고 온 서독인들이 연간 1회 4주에 걸쳐 동독여행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하였다. 일반주민들에게는 1일간 동독의 수도인 동베를린 체류를 허용하였다. 동독 역시 동독 내 박람회 참가나 상용여권에 의한 여행 또는 동독 공공기관의 초청장을 소지한 서독인들의 제한 없는 입국을 보장함으로써 상호간 인적교류의 폭을 확대하여 나갔다. 이에 따라 1960년 110만 명이었던 동서독 간 교류인원은 1970년 125만 명, 1972년에는 154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동서독 간 관계에 대한 기본원칙이 발효된 1973년에는 227만 명으로 급속히 증가하는 등 통일직전 동서독 간 왕래는 500만 명에 달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인적교류 활성화의 이면에는 동서독 간 언론매체의 교환이 결정적인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분단초기 언론매체 개방교류를 통해 서구 자유주의 사조의 유입을 두려워한 동독의 거부로 활발한 방송교류가 부진하였으나 1972년 기본조약 체결 후 텔레비전과 라디오 교류의 개시를 기점으로 거의 무제한적 언론교류가 꾸준히 지속되었다. 통일직전인 1988년의 경우 서독의 수도인 본에는 6명의 동독 특파원이 취재를 위해 상주하고 있었다. 서독의 3개 텔레비전 방송국이 동베를린에 지사를 설치, 현지 방송을 실시함으로써 85%의 동독 지역이 서독 텔레비전 시청권으로 포함되었고 라디오는 동독지역 전역의 가청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동서독 간 꾸준한 교류협력은 주민들 간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원인이 되었다. 실제로 1980년 후반에 이르러 양국 간 관계는 국경선만 존재할 뿐 실질적으로 공통된 가치관을 공유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는 평가다. 이러한 폭넓은 상호간 교류는 1980년대 후반 탈냉전의 세계사적 조류와 함께 통일의 가장 큰 씨앗이 되었다. 억압적인 사회주의체제에서 신음하던 동독주민들은 독재자 호네커를 축출하고 서독과의 통일을 요구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특히 1989년 가을부터 시작된 동독인들의 서독행 탈출은 베를린장벽 붕괴의 서막이라 할 수 있는데 1989년 9~10월 사이 무려 10만 명에 달하는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탈출하였다. 결국 사회주의정권 몰락 이후 새롭게 구성된 동독인민회의는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서독 편입을 결정함으로써 1990년 10월 3일 동서독은 반세기에 가까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독일로 재탄생하였다. 통일은 상당한 경제, 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 따라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를 보다 바람직한 민주시민사회로 건설해 나가면서 통일국가의 미래와 추진정책 등에 대해 범국민적 신뢰와 협조를 얻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국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통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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