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일 칼럼] 영화 <봄날의 눈석이>와 나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14/09/05 [16:01]

[림일 칼럼] 영화 <봄날의 눈석이>와 나

통일신문 | 입력 : 2014/09/05 [16:01]

지난 1986년에 제작된 조선예술영화 <봄날의 눈석이>는 일본의 조총련계 젊은 남녀가 북한을 진정한 조국으로 알아가면서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러브스토리입니다. 모두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강요 영화뿐인 북한에서 보기 드문 영화이죠.
당시 18세인 저는 평양의 ‘철도안전국’(남한의 철도경찰대) 노동자로 근무했지요. 주 업무는 안전원들의 편의를 보장해주는 후방부처에서 건물관리를 했습니다. 북한에는 무엇이든 간부들에게 먼저 공급하는 제도가 있으며 영화도 마찬가지죠.
어느 날, 정치부(초급당위원회)의 지시로 본부 강당에서 상영되는 이 영화를 보았는데 무척 놀랐습니다. 일본의 도시 모습이 화면에 나오고, 잘 생기고 예쁜 주인공 남녀가 자가용을 타고 도쿄거리를 달리니 말이죠. 그때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하면 사막의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마냥 부풀었고 설레었습니다.
폐쇄적인 북한사회에서 영화의 화면으로나마 황홀한 외국의 거리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죠. 거기에 맵시로운 옷차림과 세련된 어투의 일본 젊은이들 모습은 그야말로 외부세계가 궁금했던 제 마음에 기름을 퍼부었죠.
평양에서 외국에 친인척이 없는 일반시민이 자가용을 타고 시내를 달린다는 것은 영화나 소설에서도 찾기 어려운 일이지요. 수령인 김정은 가문의 사람이라면 몰라도, 상상마저도 안 되는 절대 있을 수 없는 풍경이랍니다.
당시 제가 소속된 기관 최고책임자인 철도안전국장은 1600cc 일본산 소형승용차를 탔으며, 상부기관 최고책임자인 백학림 사회안전부장은 2500cc 독일산 벤츠를 탔습니다. 사회안전부장 관용차는 가끔 먼발치에서 봤고 철도안전국장 관용차는 매일 같이 봤는데 얼마나 부러웠던지 모르지요.
그때 저는 기관에서 특별공급을 받았습니다. 한 달 식량이 쌀 15kg, 두부 2모, 기름 1병, 물고기 3마리, 비누 2장, 담배 10갑, 치약 1개였는데 이는 사회의 일반직장 노동자들에게는 꿈같은 혜택이죠. 이것을 사회안전부에 베푸는 김정일의 특별한 배려로 받았으니 일반 시민들에 비해 충성심이 높았던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때로부터 28년이 지난 오늘, 저는 세상에서 가장 부패한 ‘썩어빠진 남조선’인줄 알았던 이 땅, 대한민국에서 작가로 삽니다. 대통령을 내손으로 선출하고 비판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만끽하며 가고 싶은 어디든 아무 때나 자유롭게 다녀옵니다.
세끼 쌀밥을 접하며, 고기는 살찔까봐 적당히 먹고, 수십 가지 부식물을 골라서 먹지요. 최소한 밥이 없어 배고픈 걱정, 옷이 없어 추워할 걱정은 모르고 사니…북한의 노동당에서 인민들에게 하는 말대로라면 ‘배부른 지주’가 바로 저겠죠.
사회주의 도시 평양과 민주주의 도시 서울에서 살아보니, 사람은 좋은 나라에서 태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좋은 나라는 근로능력이 없는 국민에게 최소한 생계비를 지원해주고,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철저히 보호해주며, 전쟁이 진행 중인 외국에서 피해를 보는 자국민을 위해 전세기를 띄우는 이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김정은이 버린 우리들입니다. 북한에서 너무나 춥고 배고팠었는데, 노동당이 무서워 그 말조차 못하고 살았지요. 목숨 걸고 그곳을 뛰쳐나왔건만, 이국의 길거리에서 방황하던 아무 쓸모없는 우리 탈북민들을 세계 200여개 나라 누구도 반기지 않았습니다.
오직 대한민국 정부만이 따뜻한 구원의 손길로 우리의 손을 잡아주었지요.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 사랑, 그 은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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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나선지구 부락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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