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여정]만평의 땅에 고사리 심어 봄에 수확합니다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11/12/05 [14:06]

[내 삶의 여정]만평의 땅에 고사리 심어 봄에 수확합니다

통일신문 | 입력 : 2011/12/05 [14:06]

김승천(남 2003년 탈북)

저는 지금 강원도 횡성군 산골에서 고사리농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 산골은 제 고향 함경남도의 영랑군과 신흥군 일대의 모습과 정말 흡사합니다. 2010년에 이곳에 들어와서 10,000평의 밭을 일궈 고사리를 심었습니다. 작황이 너무 좋아 일하는 보람과 함께 더욱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장에 팔 수 있는 수확은 내년 봄부터입니다. 심은 첫해는 키가 1~1.2m가 자라도록 하여 잘라냅니다. 그리고 다음 해부터 정상적인 수확이 가능합니다.

저는 2003년 남한에 들어 왔습니다. 처음 서울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3년 전 운 좋게도 자식을 북한에서 탈출을 시켜 남한으로 오게 했습니다. 자녀들은 현재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2년 전 우연히 농수산부에서 하는 귀농교육에 참가했습니다. 수료 후 전국에서 온 사람들과 농촌체험을 다녔습니다. 귀농을 한 농부들의 경험을 들으면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유년시절을 농촌 산골에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농사일이 힘들다거나 일이 많다고 생각 안합니다. 도시는 꽃이요, 땅은 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땅은 정직하고 배신을 하지 않습니다.

북한에서는 내 땅이 없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농사를 짓기 위한 남한의 조건은 북쪽과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다짐을 했습니다. ‘결코 중간에서 포기하면 안 된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성공해야 한다. 남한에서 내가 잘 돼야 뒤에 오는 탈북 후배들이 정착하는데 도움이 될 테니까.’

그들은 하나같이 농작물의 선택에 신중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제가 춘천에서 살고 있을 때 건강원과 작은 슈퍼를 했습니다. 그때 일이 없을 때면 산을 찾아 약초도 캐고,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면서 만난 어르신이 고향 경남 남해 구경을 시켜 주었습니다. 그 어른은 남해에서 30만평에 고사리 농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이거다. 고사린 특용작물로 값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벼나 배추 등처럼 손이 많이 가거나 농사짓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될 것이라는 마음이 들자 고사리 농사를 짓기로 결심하고 전국을 돌며 땅을 찾아 다녔습니다. 기후와 땅의 조건을 따져보니 강원도 횡성이 적격이었습니다. 저는 횡성서도 한참이나 들어간 산골에 와서는 고향을 찾아 온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바로 여기가 제가 머물 땅이라고 단번에 정이 들었습니다.

이곳에는 저를 포함하여 집이 3채입니다. 두 집에는 70여세 된 노부부들이 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돈 쓸 일이 없습니다. 남새도 심어 먹고, 먹고 싶은 것도 사먹을 수 없으니 돈도 절약됩니다. 가끔은 주위에서 일을 해주고 용돈을 벌기도 합니다. 혼자 살고 있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아니 외로울 틈이 없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을 시작합니다.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는 낮잠을 잡니다. 오후 5시부터 다시 일을 합니다. 열심히 일한 후 밤에는 잠이 꿀맛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어려움은 있습니다. 겨울에는 무척 춥습니다. 한 50년 된 집을 손질해서 살고 있는데 산골에다 집이 낡아 불을 10여 시간씩 때기도 합니다. 그러나 후회는 없습니다. 오히려 제 땅에서 제 힘만으로 농사를 짓고, 모두 제 소득이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찹니다.

이런 기쁨을 혼자 누리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저는 탈북 친구들에게 제 미래를 얘기했습니다. 현재 8명이 횡성으로 전입을 했습니다. 땅을 찾고 집을 구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귀농해서 탈북자들이 성공한다면 많은 이들이 올 것입니다. 탈북자들에게는 농사일이 적당합니다. 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당히 농사짓는 남한사람들과는 다릅니다. 먹을 것을 쌓아두고 농사짓는 여유가 게을러지게 합니다. 그러나 탈북자들에게는 살아가야 할 절박한 이유입니다. 남한에 왔으니 잘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투철합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의 지원융자입니다. 남한의 귀농자들에 2억4천만원을 5년 거치 15년 상환으로 이자 3%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에게는 담보가 없어 최소한의 지원금을 받고 있습니다. 면적당 수확을 최소화시켜 2천만원씩만 준다면 3~5천 평을 경작하면 1년 후 1억의 수익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시작한 고사리농사는 탈북자들이 마음 놓고 일 할 수 있는 ‘통일마을’을 만드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귀농하는 분들과 협동하면서 작목반을 만들고 어려움을 이겨낼 것입니다.

귀농하는 모든 탈북자들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반은 최선을 다해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탈북자들이 모이면 싸운다고요?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겁니다. 바쁘니 싸울 시간이 없습니다. 서로가 풍요로워지면 나누어 가질 줄 아는 정이 많은 한민족의 후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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