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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발전에 실향민들 애국심과 성실한 땀방울 깃들어 있어”
[인터뷰] 이 명 우 이북5도위원회 위원장/평남도지사
 
통일신문 기사입력  2020/01/29 [15:29]

남한 국민이 북한을 방문하려면 통일부의 방북승인을 받아야 한다. 남북교류협력법 시행령 제122항에 따르면 방북승인을 위해서는 북한 당국이나 단체 등의 초청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가 있어야 한다. 대북 접촉채널이 없는 일반 국민의 경우 북측에 초청장을 요청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 이산가족이 중국 여행사를 통해 북한의 고향을 방문하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통일부는 지난 10북한이 (우리 국민에게)비자를 발급한다면 그 자체가 신변안전 보장과 같은 것이라며 “(국민들이)북측의 초청장이 없더라도 북한 비자만으로 방북을 승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한반도에서 사는 실향민들의 아픔은 해가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고령인 그들에게 헤어진 북한의 가족·친지를 만나고 고향 땅 한 번 밟고 죽는 것이 간절한 소원일 정도로 애타는 마음이다. 서울 구기동에 있는 이북5도청을 방문해 이명우 이북5도위원회 위원장 겸 평남도지사를 만났다.

이북도민회는 어떤 기관인가.

1945815일 대한민국 행정구역상의 도()로서 수복되지 아니한 황해도,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를 포함한 이북5도와 경기도, 강원도의 미수복 시·군을 관할하는 행정안전부 산하의 정부기관이다. 서울 구기동에 소재한 이북5도위원회(이북5도청이라고도 함)는 실향민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특히 설날이나 추석이면 북녘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주요 업무에 대해 소개해 달라.

실향민과 함께 열어가는 평화번영의 시대에 남북교류협력 지원으로 이북도민 소통과 화합으로 따뜻한 도민사회 구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실향민들의 고향방문 등 도민들의 숙원사업 추진을 지원한다.

북한의 무형문화재 발굴 및 육성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통일에 대비한 조사연구 업무도 특화하고 있다. 아울러 향토지 발간 및 문화 조사와 연구도 지원하는데 이는 통일을 대비해 아주 중요하다.

실향민과 탈북민 간의 가족결연을 통한

정서적인 안정감 주기 위한 행사 지속

실향민 기업체 연수통한 취업지원 강화

탈북대학생 희망캠프 등 정기적 운영

 

탈북민 관련 정책도 있던데.

하나원에서 정규교육 중인 탈북민들이 사회현장 탐방을 할 때 실생활 중심으로 안내해주고 있다. 또한 실향민들의 기업체 연수를 통한 취업지원을 강화하고 있으며 수요자 중심의 탈북대학생 희망캠프를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실향민과 탈북민 간의 가족결연을 통한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기 위한 행사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현재 실향민 1세대는 얼마나 되는가.

그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아직까지 없다. 1945년 분단 이후 1953년 휴전까지 모두 8년간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실향민은 대략 180만 정도로 추산된다. 당시 20~30대 사람들은 지금 나이로 모두 90~100세이다. 해마다 고향을 그리다가 유명을 달리하시는 분들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1945년에 태어난 아이가 80세를, 1953년에 태어난 아이가 70세이다. 당시 갓난아기가 현재 백발의 노인이 된 것이다. 해마다 다양한 실향민 관련 행사장에서 느끼는 것은 어르신들이 많이 하늘나라로 갔음을 짐작한다.

초기 실향민 180만 명이면 현재는.

공산정권 북한에서 해방 후부터 6·25전쟁 발발 전까지 5년간 자유세상 남으로 내려온 실향민은 약 100만 명이고 전쟁 3년간에는 80만 명으로 추정한다. 1960~70년대에는 수만 명의 실향민들이 분단에 실망을 느껴 해외로 이민을 갔다.

워낙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 많은 실향민들이 질병과 사고,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현재 남은 실향민 1세대는 대략 35~45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 그러나 1세대 어르신들의 후계세대가 현재 4세대까지 출생하여 실향민사회에서는 이북도민의 숫자를 대략 85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매년 5월 해외이북도민 초청 고국방문 행사

고국의 발전상 보여주고 통일정책을 알려줘

해외에서 민간외교로 고국의 위상 높이는데

기여한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표하는 자리

해외거주 실향민들 조국에 긍지 갖고 참석

 

실향민 관련 이북5도위원회 행사는.

해마다 5월이면 해외이북도민 초청 고국방문 행사가 있다. 고국의 발전에 기여한 해외동포들에게 고국의 발전상을 보여주고 정부의 통일정책을 알려준다. 해외에서 민간외교를 잘하여 고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한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표하는 자리이다. 해외거주 실향민들이 조국에 대한 긍지감을 갖고 참석한다.

또한 각 도(,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의 체육대회가 있다. 매년 6월에는 강원 속초 아바이마을서 실향민문화축제를 한다. 일명 아바이축제라고도 한다. 10월에는 서울 효창운동장서 대통령기 이북5도민 전체 체육대회가 열린다. 4개의 축제가 가장 대표적인 실향민 행사다.

대표적인 행사 한두 개 소개해준다면.

5월에 있는 해외이북교민 초청행사와 10월에 있는 대통령기 이북도민체육대회이다. 특히 올해 5회째로 열리는 속초 실향민문화축제는 정부지원예산이 큰 폭으로 증액되어 기대되는 연례행사이다. 여기에는 옛 사진전시회, 지도서 이북고향 찾아보기, 문화·음식체험, 탈북예술인들의 예술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아바이마을의 실향민축제는 속초시 지역의 독특한 문화행사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2016년 여름에 있은 제1속초 실향민문화축제당시 평안남도 준비위원장 직무를 맡았다. 도민회에서 지원해주는 예산 갖고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어서 도내 유지들의 협찬도 받고 나도 추진위원장으로서 일조하기도 했다.

내가 다년간 체험으로 행사를 치르다보면 여기저기 돈이 많이 들어간다. 실향민 관련 여러 가지 행사에는 국가 보조금도 일부 들어가지만 넉넉하지 못하다. 그래서 일부 도민 후원자로부터 기부나 찬조를 받는 것이 현실이다.

실향민들의 애환은 이산가족 상봉이겠다.

이북도민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만은 않는 것 같다. 과거 이산가족상봉 현황을 살펴보면 북에 있는 가족상봉 신청을 한 사람보다 안 한 사람이 더 많다. 물론 남북양측이 각각 100 명인 한계도 있지만 다른데도 이유가 있다.

다시 말해북의 가족친척을 일회성으로 한 번 만나면 이후에는 마음만 더 아프지. 차라리 안 만나는 것이 더 났다며 한사코 고사하는 실향민들이 많다는 소리이다. 틀린 소리가 아니며 충분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차라리 그것보다는 남북관계가 호전되면 1세 어르신만이라도 고향방문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고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에서도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탈북민들과 어떤 연계를 하려 하나.

우선 각 도별로 지역 출신의 탈북민들에 대한 도민회 활동참여에 적극 동참해줄 것을 당부하는 협조를 할 예정이다. 이는 실향민과 탈북민이 하나가 되는 좋은 자리이기에 적극 장려해야 한다. 그리고 해마다 가을 서울효창운동장에서 열리는 대통령기 체육대회에 더 많은 탈북민들이 참가해서 함께 어울려야 한다. 한 고향사람이니까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함께 나누는 것이 당연지사라고 본다.

 

작년 평안남도에서만도 200가정 가족결연

단순한 가족결연 아닌 양부모 양아들·딸로

가족 같이 지내는 사업 통해 탈북민들에게

남한사회에 조기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과

정서적 안정감 줄 수 있어실향민과 탈북민

고향이 같다는 점에서 동질성과 일체감 느껴

 

더 구체적으로 말해 준다면.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매해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 이북5도위원회에서 주최하고 진행하는 글짓기대회, 그림그리기, 퀴즈경연 등에 실향민 3,4세 뿐만 아니라 탈북민 2,3세들의 참여도 적극적으로 권장하겠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가족결연 사업이다. 작년 한 해 우리 평안남도에서만도 200가정(탈북민 100명과 실향민 100)에게 가족결연을 시켜주었다. 단순한 가족결연이 아닌 양부모 양아들·딸로 가족 같이 화목하게 지내는 관계이다.

이 사업을 통하여 탈북민들에게 남한사회에 조기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과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실향민과 탈북민은 고향이 같다는 점에서 동질성과 일체감을 느끼며 탈북민들이 쉽게 실향민들에게 마음을 열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작년에는 탈북여성 한성옥 모자 아사 사건으로 실향민사회도 다소 충격이었다. 선배인 우리가 미처 그늘 속의 후배를 찾아보지 못한 자책감을 느꼈다. 하여 올해는 이북5도위원회 산하 전국 16개 시·도사무소에 주변의 탈북민들을 잘 살펴볼 것을 당부하는 업무지침을 내려 보내려 한다. 특히 위기상황의 탈북민에 대한 신속구호체계를 각 시·도 광역지자체에 있는 하나센터와 연계해 올해 안에 구축하려 한다.

탈북민 호칭에 대해 관심이 많던데.

현재 탈북민을 지칭하여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는 정확히 북한이탈주민이다. 다소 긴 이 이름 외에도 귀순용사(군인), 귀순자(민간인), 귀순동포, 탈북자, 자유이주민, 하나인, 북향민 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린다.

통일부는 20051월부터 새로운 터전에 온 사람이란 뜻으로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으나 단순하게 먹을 것을 찾아 남한사회에 터를 잡은 이주민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당사자들의 거부감이 큰 줄 안다.

똑같이 이북이 고향인 실향민은 단 하나의 이름으로 불린다. 거기에 비하면 똑같이 이북이 고향인 탈북민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다소 국민들에게 혼잡성을 준다. 나는 실향민이어서 그런지 탈북민은 같은 형제로 느껴진다. 그래서 실향민과 영원히 함께 간다는 의미에서 탈북도민이라고 불렀으면 한다.

 

부모님 고향이 평남 양덕군으로 실향2

2014년부터 평안남도중앙도민회 부회장

직무 2019년까지행정자문위원 등 역임

기억에 남는 일은 군민회 깃발과 조기를

군민들 아이디어로 교체는 잘했다 생각

자신을 소개해 달라.

19477월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양덕군청과 금융조합에서 근무하셨는데 해방 후 들어선 김일성 공산정권에 크게 실망을 느꼈다고 한다. 김일성 우상화, 종교탄압, 재산몰수 등 공산체제에는 마음이 없었다고 하였다.

이듬해 12월 부모님은 형님과 나를 데리고 남하했다. 아버지가 서울 을지로 6가에서 잡화장사로 자리를 잡을 무렵 6·25전쟁이 터졌고 다시 우리 가족은 충남 논산으로 내려갔다. 1959년 서울 금호동으로 올라와 정착했다.

학력과 경력을 말해준다면.

경기공업전문학교를 3년 중퇴하고 대학을 가려고 이듬해에 검정고시에 합격하였다. 1971년 연세대학교 상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산업은행(지금의 우리은행 전신)에 입행했다.

이후 3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1974년부터 한국산업리스에서 근무했다. 그 후 국민리스 이사로 재직하다가 IMF 이후 퇴직하여 2001년부터 한미기초개발건설회사를 인수하여 2019년까지 전문건설업체로 경영하였다.

2005년에는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고 명지전문대학교 경영과 교수로도 재직했다. 금융인, 대학교수, 기업인으로 다양한 사회경험을 했다. 그런 경험이 도지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과거 실향민 관련 어떤 일을 했나.

2014년부터 평안남도중앙도민회 부회장 직무를 2019년까지, 행정자문위원을 2회 연임하였다. 작년 5월부터 양덕군민회장을 역임했다. 기억에 남는 일은 군민회 깃발과 조기(애도깃발)를 군민들의 아이디어로 교체한 것이다.

내 사비로 교체할 수도 있었으나 군민들의 성금으로 하는 방식을 택했다. 1인당 1만원씩의 성금으로 교체한 군기와 조기를 보며 군민들이 고향사랑을 가슴에 새기자는 취지에서다. 그것이 곧 애향심이고 애국심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뭔가.

실향민과 탈북도민은 하나로 뭉쳐 통일로 힘차게 나가자는 것을 호소하고 싶다. 우리는 이래도 저래도 같은 고향사람들인 실향민이고 탈북민이다. 대한민국이 오늘 이렇게 발전한데는 실향민들의 애국심과 성실한 땀방울도 깃들어 있다. 우리가 하나로 똘똘 뭉쳐 나라와 고향을 사랑하며 대한민국 안보를 튼튼히 지켜나갈 때 국민들이 우리를 진정성 있게 바라본다. 그것은 우리 후세들에게도 좋은 모습이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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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29 [15:29]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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