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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탐구-3] 봉래호…열 받은 김일성이 물줄기를 돌리다
철원군과 경기 포천일부도 적셔 줄만큼 넉넉한 양의 ‘인공저수지’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08/14 [16:19]

철원 평화전망대 앞의 DMZ에 있는

물웅덩이…봉래호에서 내려온다

 

봉래호(蓬萊湖)는 일제 때인 1922년 남북한 통틀어 최대의 토목공사를 벌여 축조된 농업시설물이다.

1910년 일제의 수탈 계획에 따라 전국에서 5번째 규모인 철원평야의 용수원 확보를 위해 철원군 북면 회산리에 역곡천 상류를 막아 저수지를 만드는 봉래호 축조공사가 발주됐다.

이 공사는 착공 10년 만에 완공됐는데 저수량 4500만톤, 관개면적 1만2,000정보로 당시로는 전국에서 가장 큰 인공 저수지였다. 철원군과 경기도 포천일부도 적셔 줄만큼 넉넉한 양이었다.

 

철원 평화전망대에서 본 낙타고지

뒷쪽 봉래호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도 6.25라는 슬픔이 깃들어 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열 받은 김일성이 철원평야의 젖줄이었던 봉래호의 물줄기를 황해도 연백평야 쪽으로 돌리자 물길이 끊긴 남쪽에서는 용수혜택을 받지 못해 농업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원래 봉래호의 모습은 평강군이 역삼각형, 철원군은 삼각형 모양이었고 양 저수지 사이에 도수로(물이 흐르도록 설치한 구조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북한에서 이 도수로를 막아 봉래산에서 궁예성터에 이르는 옛 철원군 북면 쪽의 저수지가 사라지게 됐다.

 

겨울철 금학산이나 고대산 정상에서

보면 봉래호가 또렷이 보인다

 

일설에 의하면 배 아픈 김일성이 철원평야를 없애버리겠다는 생각에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한 해 두 해 갈수록 농사를 망치는 집이 많아지자 이래선 안 되겠다는 판단 하에 1960년대 작은 저수지들이 생겼다.

1976년 1500여만 톤의 저수량을 자랑하는 토교저수지와 일명 강산저수지라 불리는 동송저수지를 1977년 준공했다.

동송저수지는 봉래호와 가곡(佳谷 월정리 다음역) 등지에서 유입되는 수자원을 저수하기 위해 1977년 흙으로 쌓았고, 제방 길이 2㎞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 저수지 면적은 74.9㏊, 저수량은 4만2367톤이며, 유역면적 1827㏊, 몽리면적 802.3㏊로 강산리, 하갈리, 양지리 등지의 농토를 적셔준다.

평화전망대 가는 길 왼쪽의 저수지가 동송저수지고, 전망대에서 보면 북한의 낙타고지 뒷쪽으로 봉래호가 있다는데 보이지는 않는다. 겨울철 금학산이나 고대산 정상에서 보면 봉래호가 또렷이 보인다.

현재 봉래호의 크기를 구글로 보면 동송저수지와 비슷한 규모다.

글·사진= 양승진 통일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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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8/14 [16:19]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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