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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탈북민들 ‘창업’신중히 고민하고 냉정하게 결정해야”
[인터뷰] 강원도 원주 ‘금강산막국수’ 이순복 사장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05/30 [13:43]

강원도는 남과 북에 똑같이 있는 행정도(道)이다. 북한에서 강원도하면 원산과 금강산을, 남한에서 강원도 하면 속초와 설악산을 먼저 떠올리기도 한다. 한반도에서 강원도는 동해바닷가 지역의 빼어난 경관을 가진 공통점이 있다.

북한에서 고산지대는 백두산(2,750m)을 품고 있는 량강도(옛 함경북도 일부 지역) 지방이며 평균 높이는 해발 1,339m이다. 기후는 한반도에서 기온이 가장 낮고 강수량이 적은 지역에 속하며 대륙성기후의 특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연평균 기온 2∼3℃, 1월 평균기온 영하 7∼22℃, 8월 평균기온 18∼22℃이다.

남한의 고산지대 강원도는 전체 면적의 약 82%가 산지이다. 남한을 대표하는 큰 강인 한강과 북한강 그리고 낙동강이 이곳에서 시작된다.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치악산 등은 한국을 대표할 정도로 경치가 빼어나다.

자연이 아름다운 북한의 강원도에서 태어나 30여년 살았고 중국을 거쳐 남한의 강원도에 와서 10여 년을 보내고 있는 멋진 탈북여성이 있다. 얼마 전 경기도 파주에서 있은 탈북민 단체 행사에 참가해 강원도 원주에서 ‘금강산막국수’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탈북민 이순복 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을 소개해 달라.

1966년 9월 강원도(북한) 고성군에서 태어났다. 6형제의 셋째였다. 아버지는 강원도 고산군 서왕사리에 소재한 연결차공장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서왕사리 남새농장 작업반장이었다. 웬만한 공장·기업소 간부들도 어머니한데 공손히 인사를 하고 했는데 이유가 있다. 가을철이 되면 군(郡) 내 공장·기업소, 심지어 군부대들에 김장용 무·배추 공급권을 가진 어머니의 권세가 막강했다. 북한서는 김장이 겨울 식량이다.

▶학력과 경력을 소개해준다면…

1983년 8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강원도 고산군 설봉리에 소재한 보건부 산하 요양원(휴양소) 접대원으로 입직을 했다. 어머니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1년 뒤인 1984년 9월 강원도요리사학원을 입학하여 1년 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5급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요양원에서 전문요리사로 일을 하였다.

▶보건부 산하 요양원은 어떤 곳인가?

강원도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이지만 내각 보건부 소속이다. 한 달에 1500명가량의 입소생들이 들어온다. 모두 사회에서 모범생활을 하여 당의 배려로 오는 사람들이다. 이 중의 절반 정도가 가족 단위이다. 또한 전체의 60% 정도는 강원도 내 사람들이고 40%는 평양의 중앙기관에서 선택되어 내려온 사람들이다.

▶요양원에서 어떤 치료를 하는가?

요양원에서는 건강검진을 하여 위장병 환자에 한에서 여러 가지 치료를 해준다. 약수치료, 감탕치료가 있는데 이 치료는 건강한 사람이 받아도 좋은 효과를 본다. 요양원 프로그램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위장병 치료이다.

일과표에 따라 생활하는데 운동 및 독서시간, 영화감상, 산책 및 운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저녁 오락시간이다. 입소생들 중에는 예능 끼가 있는 사람들이 다소 있는데 그들의 공연을 보는 것이 재밌었다.

 

약수치료, 감탕치료가 있는데 이 치료는

건강한 사람이 받아도 효과 볼 수 있어

요양원 프로그램 중 기본은 위장병 치료

일과표에 따라 생활…운동 및 독서시간

영화감상, 산책·운동으로 이뤄져 있어

 

세끼 쌀밥을 충분히 공급했고 부식물로는

돼지고기 일주일 한 번, 생선은 매일 공급

간식으로는 과일과 사탕과자, 빵, 사이다

 

▶식생활 수준은 어느 정도였나?

당시는 인민들에게 식량공급을 정상적으로 하던 시기다. 세끼 쌀밥을 충분히 공급했고 부식물로는 돼지고기 일주일에 한 번, 생선은 거의 매일 공급하다 시피 하였다. 간식으로 과일과 사탕과자, 빵, 사이다 등이 공급되었다.

평양에서 온 입소생들은 대부분 간부이거나 그 가족이다. 일부 사람들은 자기의 직권을 이용하여 생활물자를 차에 싣고 가져오는데 식료품과 생활용품이다. 당과류, 소주, 통조림, 수건, 비누 등인데 뭐든 풍족하게 사용하였다.

▶이후 직장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면서…

1989년부터 조선인민군 806훈련소 식당 화식장(주방장)으로 일을 했다. 어머니가 806훈련소 정치부장에게 은밀히 부탁하여 이루어졌다. 806훈련소는 군단 급 요양병원이며 600여 개의 침대를 갖고 있는 제법 큰 병원이다. 환자들은 군인사병으로 대부분 20대 초반의 청년들이다. 모두 전방부대에서 군사훈련 중 사고나 급식섭취 부족으로 생긴 영양실조에 걸려 허약한 상태로 들어온 상태이다.

▶영양실조에 걸린 환자는 어떻게 다른가?

몸무게 40kg 이하면 영양실조로 본다. 눈에 황달이 끼어 간염으로 진단받는 환자들이 많으며 간염은 영양실조의 징표다. 얼굴이 백지처럼 하얗고 뼈에 가죽을 씌웠다고 할 정도로 몰골이 한심하다. 806훈련소는 산골짜기에 위치해 있는데 겨울에 강풍이 불 때면 영양실조 환자가 휘청거리며 쓸어 질 정도이다.

▶환자들에 대한 급식 환경은…

환자들의 일과는 온종일 침실에서 휴식하는 것이다. 하루 세끼 식사는 대략 쌀밥(간혹 찰밥), 미역국, 고기, 두부, 계란, 김치 등으로 되어있다. 영양실조가 심한 환자들에게는 매끼 밥 위에 콩기름(식용유) 한 숟가락씩 뿌려준다.

군인들이 입원해서 영양실조를 퇴치하는데 빠르면 15~20일, 늦으면 60~90일 걸린다. 빨리 회복되는 환자들은 체질의 특성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모나 친인척이 영양보충에 필요한 부식물을 싸갖고 자주 면회를 오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

많은 부모들이 영양실조에 걸린 자식들 앞에서 눈물을 훔치던 모습은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엄마이다. 나라를 지키라고 군대에 내보낸 자식이 영양실조에 걸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다.

806훈련소에 입소한 환자 중 90% 정도는 완쾌하여 부대로 돌아간다. 나머지 치료가 안 되는 10% 정도의 군인들에게는 감정진단서를 발급해준다. 그러면 소속 부대에서는 당사자에게 감정제대(의병제대) 명령을 내린다.

▶간부요양원과는 대조적인 환경이었겠다.

전에 다니던 직장(요양원)과 영양실조 치료병원(806훈련소)은 차이가 있었다.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간부들의 요양원과 일반 평민의 자식들이 치료받는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다. 또한 일반 주민들에게 정상적인 식량배급이 진행되던 1980년대와 배급이 전혀 없는 미공급시기(고난의 행군시기)는 흑백 차이였다.

▶이후 했던 생활이 궁금하다.

1998년 8월 함경북도 청진에 사는 언니네 집으로 휴가를 갔다. 당시는 고난의 행군시기이어서 많은 시민들이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던 때이다. 어느 날, 청진 교외 농촌지역을 갔었는데 안전원의 감시 속에 50~60명이 일하는 걸 보았다. 내가 의아해 하자 언니가 “저 사람들은 중국으로 불법월경을 했던 자들” 이라고 했다. 선뜻 이해가 안 갔다. ‘왜? 남의 나라까지 불법으로 갔었을까?’ 하고 말이다.

 

청진서 ‘중국 가면 큰돈 벌 수 있다’소문 들어

경제적으로 궁핍한 북한에서 살려면 돈이 필요

1998년 10월 두 여성과 무산에서 두만강 건너

 

4년간 두 번 북송…함북도 ‘청진도집결소’에서

수개월간 혹독한 무보수 강제노동…2001년 10월

세 번째로 탈북, 7년간 안도현서 두부식당 운영

하다가 2007년 8월 몽골을 거쳐 한국에 입국

 

▶탈북 경위는 어떻게 되는가?

청진에서 귀동냥으로 ‘중국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수십 년간 경제적으로 궁핍한 북한사회에서 살려면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다. 1998년 10월 30일 청진에서 만난 두 여성과 함께 무산에서 두만강을 건넜다.

이후 4년간 두 번 북송되어 함북도 ‘청진도(道)집결소’에서 수개월간 혹독한 무보수 강제노동을 하였다. 2001년 10월 말, 세 번째로 탈북하여 7년간 안도현에서 두부식당을 운영하다가 2007년 8월 몽골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

▶강원도(북한)가 고향이어서 강원도로 갔는가?

하나원에서 주거지 배치를 받은 곳이 강원도 원주다. 너무나 좋았다. 강원도(북한)는 내 고향이기 때문이다. 사회로 처음 나와서 고성군에 가보았는데 북한 강원도의 고성군 보다는 자연 환경이나 경치 등에서 많이 떨어지더라(웃음). 그래도 북에서도 남에서도 내 고향 강원도에서 산다는 자부심만은 분명히 있다.

▶사회생활 초기 무슨 일을 하였나?

나는 북한에서 사회생활을 요리사로 시작했다. 그 일을 10여 년간 하였고 또 중국에서 식당 일을 10년 가까이 하였다. 아마 전생에 ‘조선시대 어느 객주집 주인이나 왕궁의 식모가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음식 만들기에 애정이 많다. 사회 나오자마자 한국으로 올 때 진 브로커비용을 물어야 하기에 정신없이 식당일을 했다. 첫 일터가 원주 복집이었는데 몇 달 뒤 사장이 막국수 집으로 간판을 바꾸었다.

▶그것이 막국수 집을 하게 된 동기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 집에서 2년 일하고 또 다른 막국수 집에서 3년간 일하면서 기술적인 문제를 습득했다. 낮에는 근무를 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었고 밤이면 주방에서 내 돈으로 산 재료를 갖고 꾸준히 연구와 실습을 하였다.

그렇게 5년 일하고 나만의 막국수 비법을 만들었고 그동안 번 돈을 바탕으로 지난 2013년 1월 지금의 식당 ‘원주 금강산막국수’를 오픈하였다. 지금까지 7년간 지속적으로 영업을 해오고 있으며 식당은 35평 규모에 60석이다.

▶평균 월 매출은 어느 정도인가?

막국수는 기본적으로 여름 장사다. 4~8월을 기준으로 해서 월 3.500~4.000만원 매출을 올린다. 막국수와 함께 오리백숙과 닭백숙, 오리구이, 코다리찜을 하는데 이것은 주로 겨울계절이나 관광객 예약회식에 많이 나가는 음식이다. 3명의 직원월급, 건물임대료, 재료비 등을 제외하고 순수 이익은 월 500~600만 원 정도이다.

 

한국으로 올 때 진 브로커비용 갚으려

정신없이 식당일…막국수 집에서 일하며

5년 만에 비법 직접 만들어 2013년 1월

지금의 식당 ‘원주 금강산막국수’를 오픈

7년간 영업 중 식당은 35평 규모에 60석

3명의 직원월급, 건물임대료, 재료비 등을

제외하고 이익은 월 500~600만원 정도

 

▶특별한 영업 비밀이 있다면 뭔가?

고객들 중에는 생일 가족회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생일을 그해 달력에 표시해두었다가 새해 달력에 그대로 옮겨서 표시한다. 그걸 보면서 고객들이 감동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날 온 가족이 회식을 하러 오는 것이다.

생일에는 케이크도 준비해주고 또 막국수도 곱빼기로 서비스로 준다. 이런 소식이 지역주민들 속에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이제는 제법 많은 생일손님이 예약을 한다. 이것이 고객을 유지하고 유치하는 나만의 노하우다.

 

가게를 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남편과

지역 노인복지시설 자원봉사…잠깐이면

60, 70세가 될 것이고 우리가 잘해야

후손들이 우리를 잘 돌보지 않겠는가

 

▶봉사 기부 활동을 많이 하던데…

내가 북한에서 일했던 일터가 요양원이어서 인지 남한에 와서도 요양원 쪽으로 눈길이 자주 간다. 가게를 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남편과 함께 지역 노인복지시설로 자원봉사를 간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우리도 이제 잠깐이면 60, 70세가 될 것이고 우리가 잘해야 후손들이 우리를 잘 돌보지 않겠는가.

▶후배들에게 요리를 무료로 가르친다고 들었다.

지난 2월 경기도 안산에 있는 후배가 와서 일주일간 머물며 나에게서 음식 만드는 기술, 영업 방법 등을 배우고 돌아갔다. 일주일간 함께 일하면서 낮에는 주로 서빙, 영업 등을 배워주고 밤에는 주방에서 음식 제조법을 가르쳐주었다. 지난 3월에도 지방에 사는 모 탈북민 부부가 와서 3일간 배우고 돌아갔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하나원을 갓 나온 새내기 탈북민들 중에는 무턱대고 식당 창업을 하려는 희망자들이 적지 않게 있다. 일부 그들에게 일시적인 흥분에 못 이겨 ‘창업결정’을 빨리하지 말고 신중하게 고민하고 냉정하게 결정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 경우를 봐도 처음부터 창업하기 보다는 최소한 5년 정도는 남의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많이 배우라고 말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10평대에 좌석 10석 규모의 작은 식당부터 시작하는 것도 안전한 방법이라고 권하고 싶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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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30 [13:43]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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