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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봉] 노래는 남아도…드라마는 사라지고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05/09 [14:42]

<박신호 방송작가>

엊그제 신문을 펼치다가 화사하게 웃고 있는 낯익은 여인의 얼굴이 있었다. 모르는 이가 없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제목에는 “어느새 황혼 ‘열아홉 순정’이라고 달았다. 그리고 소제목으로 ‘시대의 절찬’ 이미자 노래 인생 60년…그의 노래 뒤로 시대상이 영화처럼 흐른다”고 쓰여 있었다.

60년 전 봄날이 떠올랐다. 남산 KBS 정원 한쪽 등나무 그늘에 가수와 성우들이 점심시간 사이에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방송국 출입 식구가 그리 많지 않아 친근하게 지냈다. 그날도 여니 때와 마찬가지로 한때를 얘기의 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그중 한 가냘픈 여인이 눈에 띄었다. 말도 없이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녀가 이미자였다.

이미자의 노래만 들어도 지난날 자신을 떠올릴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는 가슴 아픈 과거에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고 감격의 순간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기도 할 것이다. 그녀는 며칠씩 걸려 중동의 사막과 월남의 밀림, 독일 지하 탄광을 찾아가 젊은이들과 같이 웃고 울었다.

가족과 조국을 위해 피땀 흘리는 그들과 하나가 되어 위로와 자긍심을 한껏 높여 줬었다. 그들이 있어 조국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일깨워 준 지상의 천사였다.

이미자는 오로지 트로트만 부른 가수다. 60년간 2,100여 곡을 부르고 앨범 150여 장을 내기도 했다. ‘엘리제의 여왕’으로 한순간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시종 진지하게 노래를 불렀다. 그런 그녀가 가수 생활 60주년을 맞이해 얼마 콘서트를 열었다. 무대에 오르며 어느 때보다 감회가 깊었을 것이다. 나 역시 감회가 깊다. 방송 생활 60년을 보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방송 작가 60년의 자취를 어디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수의 수명은 왜 길며 방송 작가의 수명은 왜 짧은 것일까?

필자의 방송 생활은 60년이다. 그중 작가 생활은 50년이다. 원고지에 쓴 글이 내 키보다 갑절이 넘을 것이다. KBS 제1 방송으로 방송된 5분 드라마 ‘김삿갓 북한방랑기’는 30년 동안 10,000회가 나갔으며 그중 내가 쓴 것만 15년 동안 줄잡아 3,000회가 된다.

(1964년 5월 18일부터 1994년 4월 5일까지 1만 회 방송) 그러나 지금은 원고 한 편 없고 녹음한 테이프 하나 없다. 뿐만이 아니라 이젠 간혹 ‘김삿갓…’작가라고 하면 50대쯤이나 된 이나 반긴다. ‘동백 아가씨’ 정도 인기가 있었던 ‘김삿갓’인데 어찌 이리도 모를까? 노래는 이어지며 부르기 때문이고 방송 드라마는 제목만이 기억에 남아서일까? 아무래도 태생적 운명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가요에 빗대 방송 드라마에 대해 서운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걸어온 길은 달라도 인생살이야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는가. 거기서 거길 일 것이다. 다만 후회의 삶을 살았느냐 아니냐 일 것이다. 내 직업에 만족하며 살았는지, 즐겼는지 차이가 아닌가 한다.

방송 길 60년을 되돌아보면 부모에게도, 아내에게도, 자식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얼마 전에 뜻밖에도 아내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전에는 좀 부끄러울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방송 작가를 아무나 해요? 당시 고등 고시보다 더 합격하기 어려운 공보부 현상 응모를 통해 등단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잘산다는 친구들 하나 부럽지 않아요. 요즘 걔들이 오히려 날 부러워해요”

왜 자랑스럽고 왜 남이 부러워하는지 묻지 않았다.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지금도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김삿갓 방랑기’를 방송 중단한 일이다. 북한 독재자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래는 남고 ‘김삿갓’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면 비극 중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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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09 [14:42]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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