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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20~30대 청년들이 ‘평화 통일’ 그 가치에 뜻을 걸다
[인터뷰] 탈북민단체 ‘새터민라운지’ 이웅길 대표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01/24 [14:39]

2018년 11월 7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국민주권연대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등 13개 단체 주도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백두칭송위원회’ 결성 선포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김정은의 서울방문을 적극 지지하며 환영한다고 밝히고 특히 선언문에서 “통일을 위해 안위를 버리고 목숨을 걸겠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의지다.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응당 열렬히 환영해야 한다”고 했다.

다양성이 존재하는 민주주의사회인 서울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고 수령을 비판하면 3대멸족시키는 독재사회 평양서는 상상도 못 할 그림이다. 남한국민들도 놀랄 일이지만 북한에서 살았던 탈북민들에게는 기가 막힌 모습이다.

꼭 열흘 뒤, 같은 장소에서 ‘백두청산위원회’ 회원 10여명이 “독재자 김정은을 미화하는 ‘백두칭송위원회’를 한국에서 즉각 쫓아내라!”고 외쳤다. 여기에 참가했던 탈북민단체인 ‘새터민라운지’ 이웅길 대표를 서울서 만났다.

자신을 소개해준다면…

1981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여동생 1명 있고 아버지는 청진도법의감정원(한국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지방분원) 의사였고 어머니는 청진시인민병원 의사였다. 1997년 9월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한 날 한시 사망했다.

내가 16살 때인데 불행하게도 우리 남매는 졸지에 소년소녀 고아가 되었다. 청진외국어학원을 졸업하고 1998년 8월 조선인민군 11폭풍군단(경보·정찰 특수부대)에 입대했다.

▷어떤 부대인가?

유사시 남한에 침투하여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부대이다. 폭풍군단에는 6개의 여단이 있다. 그중 번개부대(여단)가 먼저 침투한다. 대상지는 수도권, 경기, 충청권까지다. 그 뒤를 따라 우뢰부대(여단)가 들어와 주요기지를 폭파한다.

번개와 우뢰가 철수하면 벼락부대(여단)가 침투한다. 전투임무는 여의도국회, 서울시청, 경기도청을 장악하고 정부요원들을 암살 및 생포하는 것이다. 모두 12만 병력이다. 11폭풍군단의 부대명칭은 630대연합부대이다.

 

청진출생…의사였던 부모 교통사고로 사망

청진외국어학원 졸업 후 11폭풍군단 입대

12만 병력으로 부대명칭은 630대연합부대

남한 정부기관 습격훈련은 실제 모형물을

만들어 놓고 실전의 분위기서 맹렬 연습

 

인민군대의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폭정신으로 무장시키는 군인사상교육

 

▷훈련강도는 어느 정도인가?

길이 15m, 너비 20cm, 무게 40kg 이상 통나무를 병사 두 명이 어깨에 메고 30분간 달려야 한다. 겨울철 강물에 뛰어들어 1시간 견디기 훈련도 만만치 않다. 남한 정부기관 습격훈련은 실제 모형물을 만들어 놓고 실전의 분위기에서 연습한다. 인민군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폭정신으로 무장시키는 군인사상교육이다.

▷여단장 연락병으로 근무했다던데…

함남도 리원군 주둔 87여단장 연락부관(연락병)으로 임명 받았다. 외삼촌이 여단장과의 옛 동지이었고 그 인연으로 좋은 자리에 발탁되었다. 북한사회도 그렇지만 군부서도 안면관계(학연, 지연, 혈연, 인맥)가 분명 존재한다. 어쩌면 폐쇄적인 북한사회에서 더 폐쇄적인 군부서는 부정부패가 더 만연하다고 봐야 한다.

▷여단장 저택(관사) 생활은 어떤가?

특수부대 여단장의 생활수준은 꼭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군당책임비서(남한의 군수) 정도는 될 것 같다. 일일 백미 1kg 식량을 배급받고 그에 따르는 부식물공급도 고기, 육류, 계란, 생선 등 고급술, 담배까지 풍족한 편이다.

당시 여단장 가족은 평양에서 살았고 여단장만 현지에서 근무했다. 매 주말이나 월말이면 여단장은 평양의 가족한데 가서 휴일을 보내고 내려왔다. 전용차가 따로 있는데 집에 갈 때면 부대용 부식물을 한가득 차에 싣고 갔다.

 

외삼촌이 여단장과의 옛 동지 인연으로

좋은 자리에 발탁…북한사회나 군부서도

안면관계(학연, 지연, 혈연, 인맥) 존재 해

특수부대 여단장 생활수준은 풍족한 편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후 남한에서 쌀이 들어왔다. 우리 여단에서도 4t용 화물자동차 12대를 동원하여 쌀을 받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사회의 시장(장마당)에 내다 팔았다. 당시 쌀1kg이 1000원, 옥수수1kg이 500원이었다.

우리가 가져간 쌀을 모두 kg당 800원에 팔고 그만한 량의 옥수수를 사와 부대 양식창고에 쌓았다. kg당 300원의 이익은 고스란히 간부들께 돌아갔다. 그 돈의 일부로 고기, 생선, 기름, 계란 등을 구매하여 간부들 저택으로 날랐다.

▷김정일이 부대를 방문했다는 소리는 뭔가?

2001년 1월부터 부대에서 환경문화 사업(관리)을 한다며 정초부터 부대원들을 들볶았다. 부대 주변의 도로정비, 병실(내부반) 청소, 연병장 보수 등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는 사업을 봄, 여름 내내 이어졌다. 그리고 그해 12월에 김정일이 부대에 내려왔는데 여단장은 2일 전날에 나는 하루 전날에 그 사실 알았다.

▷1호 행사인데 자세히 말해 달라

결국은 1월부터 1년 내내 들볶은 이유는 바로 김정일을 모시기 위해서다. 그렇게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북한의 1호 행사다. 김정일이 오기 3일 전에 부대 식량창고에는 백미가, 부식물창고에는 돼지고기·생선·닭고기 등이 가득 찼다.

재밌는 것은 사진을 찍는 것인데 김정일은 한 번만 찍고 그냥 자리를 뜬다. 이후 합성으로 2~3컷 장면을 더 찍어 부대 병사들에게 나누어준다. 나는 중국에 친인척이 있는 것이 문제가 되어 김정일 가까이에서 사진을 못 찍었다.

▷김정일 방문 이후에도 식생활 수준은 그대로인가?

김정일이 온 당일은 일일 800g 쌀밥에 닭고기 1인당 반 마리, 계란 1알, 콩나물, 두부, 김치, 생선 등이 차려졌다. 그런 식탁이 1주일간 계속 되다가 그 이후로는 다시 평상시 수준으로 돌아간다. 하루 3끼 옥수수밥이고 염장무나 혹은 염장배추 볶음 등이 전부다. 그래서 군인들은 장군님 오기를 학수고대한다.

 

남한에서 쌀이 들어왔을 때 여단에서도

4t용 화물자동차 12대 동원해 쌀 받아

사회의 장마당에 내다 팔아…쌀1kg이

1000원, 옥수수1kg이 500원이었는데

우리가 가져간 쌀 kg당 800원에 팔고

300원의 이익 고스란히 간부에 돌아가

 

▷특수부대의 특혜는 뭔가?

예전에는 인민군 제대군인 전체의 90%가 입당을 하고 제대하였다. 북한에서 남자가 당원인가? 아닌가는 중요하다. 1998년도 김정일의 “당의 질적 강화를 위해 인민군대에서 입당을 조절하라”는 명령이 하달되면서 50%로 급감하였다.

그러니 10년 군사복무를 마치고 입당도 못하고 사회로 나온 제대군인들은 억울한 심정이었다. 특수부대는 여전히 90%가 입당한다. 그리고 ‘공산대학졸업증’ ‘민족간부후비증명서’를 발급해준다. 일종의 보증수표인데 그것이 특혜다.

▷언제 제대하였는가?

2003년 10월 조선노동당원 후보당증을 받고 제대하여 청진자동화단과대학에 편입학하였다. 원래는 원산경제대학을 받았는데 개인사정으로 고사했다.

군사복무 5년 2개월 하고 입당하고 제대하기는 정말 초고속 승진과 같다. 솔직히 말해 특수부대장 연락병이라는 정말 좋은 자리에서 군사복무를 한 운도 분명 있었다.

 

특수부대는 90%가 입당 ‘공산대학졸업증’

‘민족간부후비증명서’발급해 주는 것 특혜

당증 받고 제대 청진자동화단과대 편입학

군사복무 5년 2개월, 입당은 초고속 승진

 

▷청진에서 사회생활을 말해 달라

제대하고 사회에 나와 보니 눈이 딱 감겼다. 내가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시작한 ‘고난의 행군’(1996년~)은 ‘고난의 강행군’(1999년~)으로 바뀌었고 그것이 다시 ‘최후승리의 강행군’(2003년~)으로 변했다. 식량배급이 전혀 안되었다.

하여 제대 이듬해 2월부터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드나들었다. 연길에 두 분의 고모가 있었다. 거기서 돈을 갖고 나와 해삼, 건어물, CD장사 등을 했다. 반대로 북한영화를 중국으로 가져다 팔기도 했다. 그렇데 수차례 중국을 넘나들었다.

▷또 다른 일이 있었다면 뭔가?

북한에 있는 남한국군포로를 중국으로 데려가는 일도 했다. 북한에서 국군포로 1명을 중국으로 넘기면 중국 돈 10만원을 받는다. 힘들게 5명을 찾았는데 그중 남한으로 가겠다는 함북·길주 거주 국군포로 1명과 접촉했다. 은밀하게 작전을 했는데 보위부에 발각되어 2004년 9월 체포되었다. 다행히 훈계처리로 끝났다.

▷탈북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국군포로를 탈북 시키려던 것이 발각되고 보위부에서 엄중경고를 받고서 자괴감이 들었다. 엄밀히 국군포로는 남쪽 사람이다. 그가 자기 살던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또한 인도적인 문제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도우려고 했던 것이 ‘반역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때 “내가 과거 군인으로써 목숨 바쳐 지킨 이 땅, 노동당, 공화국이 과연 무엇이었던가?”하는 자문에 아무런 답변도 할 수 없었다.

▷언제 탈출했는가?

2005년 9월 중순 중국-몽골 국경을 넘다가 중국군에 잡혀 북송되었다. 10월 온성보위부서 2개월 취조를 받고 청진집결소에 5개월간 수감되었다. 이듬해 6월 어느 날, 외부작업 현장서 탈출하여 다시 두만강을 건넜다. 7월 초 몽골에 입국하였으며 거기서 6개월 이후인 2007년 2월 꿈에도 그리던 대한민국으로 입국했다.

 

제대 후 남한국군포로 중국 보내는 일해

국군포로 1명을 넘기면 중국 돈 10만원

국군포로를 탈북 시키려던 것이 발각되고

보위부에서 엄중경고 받고서 자괴감 들어

남쪽사람 살던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

당연한 이치이고 인도적인 문제라고 생각

 

▷‘새터민라운지’는 어떤 단체인가?

지난 2018년 2월 초순에 우리 탈북민과 남한사람이 함께 어울리자는 취지에서 만든 단체이다. 우리 회원들은 주로 20~30대 청년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특징이다. 450명의 회원들은 탈북민 반, 남한사람 반으로 되어있다.

통일, 대북지원, 탈북민 정착문제에 대한 토론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하며 축구, 볼링, 산악회, MT 등 다양한 현장모임도 자주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회원들이 연애를 넘어 결혼까지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2018년 탈북민과 남한사람이 함께

어울리자는 취지에서 결성된 단체

450명 회원들 20~30대 청년들로

탈북민 반, 남한사람 반으로 구성돼

 

통일, 대북지원, 탈북민 정착문제에 대한

토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하고 있으며

축구, 볼링, 산악회, MT 현장모임도 진행

 

▷그동안 어떤 일을 하였는가?

선배 탈북민이 후배 탈북민을 돕는 행사를 연중 진행하고 있다. 정기 후원금과 회비를 모아 생필품을 구입하여 하나원을 갓 나온 새내기 가정을 방문하여 후원용품을 전달한다.

분기에 한 번씩 워크숍, 운동회를 갖고 회원들 간의 친목을 도모한다. 기억에 남는 일은 ‘아주대병원’으로 오청성 병사를 병문안 갔던 것이다.

▷작년 11월 ‘백두칭송위원회’ 규탄 멘트를 했다

발단은 작년 11월 7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좌파성향의 13개 단체 주도로 김정은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백두칭송위원회’ 결성 선포 기자회견이 열렸기 때문이다. 열흘 뒤 보수성향의 젊은 대학생들이 맞불 행사를 펼쳤던 것이다.

그 맞불 행사 즉 ‘백두청산위원회’의 성토 기자회견에는 10여 명의 청년들이 나왔다. 탈북민으로 유일하게 내가 참석하여 너무나 황당하고 기가 막힌 ‘백두칭송위원회’의 작태를 성토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에서 불이 난다.

아무리 남북평화가 소중하고 북핵문제 해결이 중요하다고 해도 우리는 냉정해야 한다. 자기 고모부를 기관총으로 사살한 것도 모자라 친형마저 외국국제공항서 그것도 백주대낮에 독살한 살인마, 2천만 인민의 피맺힌 독재자 김정은을 서울로 부르는 일은 없어야 하며 북한의 거짓 평화 쇼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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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1/24 [14:39]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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